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2-0906...목...하느님의 기준과 사람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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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9-06 ㅣ No.1301

연중 22 주간 목요일 - 짝수 해 1코린토 3,18-23 루카 5,1-11

 

2012. 9. 6. 등촌3

주제 : 세상의 기준과 하느님의 기준

세상에서는 서로 경쟁할 것이 많습니다. 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은 그보다 못하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돌보아야 한다고 말하기 쉽지만, 그런 말은 아무래도 그저 이론에 불과하기 쉽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있어야만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세상에서, 그렇게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남보다 돈을 더 가진 사람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이론이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네가 안다면 아마도 그런 말 쉽게 하지 못할 껄.....하는 식입니다.

 

세상에 통용되는 삶의 이론에는 사람의 생각만 통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하느님께서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다음에 그 관할권을 인간에게 맡기셨다는 성경말씀의 의도를 생각해봐도, 사람의 의지가 통용되는 부분은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를 따르려고 할 때라는 사실까지 고려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삶에 간섭하지 말라는 태도로 말입니다.

 

오늘 복음내용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배 주인의 허락도 없이, 배에 올라가 앉으셔서 가르치는 일에 사용하였고, 배의 주인에게 사용료를 내겠다는 생각으로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셨습니다. 헌데 배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대표자 베드로가 세상의 기준과 하느님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어난 일을 보면서 자기가 처한 현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죄 많은 사람에게서 스승님이 떠나시기를 간청합니다. 일반적으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실현되지도 않을 베드로의 마음자세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 순간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는 합니다만, 사람의 환경이 바뀌는 것은 이렇게 순간적일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생각은 언제나 더 옳은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존재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올바른 가르침을 주려면, 세상의 지혜로 살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로 살아야 한다고 바오로사도는 선언합니다. 주님이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을 모두 알고 계시니, 인간이 섣부른 자세로 나선다면, 인간은 자기 꾀에 빠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미리 알아듣고, 미리 생각하며, 이런 일에 미리 대비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존재를 인간이 느끼는 것은 그저 자기 몸에 아주 커다란 고통이 왔을 때라고 말한다는 서글픈 생각을 안다면, 사람이 갖는 삶의 자세가 얼마나 올바른 방법에서 부족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세상일에는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기준으로 세상을 대한다면 그런 마음자세나 태도는 또 달리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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