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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8: 허무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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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17 ㅣ No.636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8) 허무의 늪


‘생로병사’ 통한 삶의 고통들, 직시하지 않으면 무감각해져



이렇게 교정된 시각 즉 새로운 관점에서 우리 자신과 인생살이를 다시금 살펴봤으면 합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고통과 아픔과 슬픔 속에 쩔어 있는지, 하여 어떻게 독하디 독한 허무만을 맛볼 수밖에 없는지를 절실히 알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한 치열한 자각이 없이는 가짜 마음이 만들어 낸 허구의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일지 않을 것이며, 그냥 고통 속에서 이 덧없는 삶을 오랫동안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헬렛에서 말합니다. 모든 것은 허무라고. 태양 아래 새것은 없다고. 과연 그렇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면서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살아가는 방식이, 문명이, 조금 달라진 점은 있을지언정 인생이라는 화두의 근본적인 모습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조금 앉아 우리 인생이란 것을 찬찬히 한번 살펴봅시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인생의 한 주기를 넘어선 저같은 경우엔 삶의 허무 같은 것이 훨씬 더 실감 나게 피부에 와 닿습니다. 얼핏 외적으로 봐선 나름대로 의미 있고 가치 있고 꽤나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어려운 처지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온 사람도 숱하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함에도 이제 육신의 옷을 벗을 때가 다가온 지금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돌아볼 때 참으로 깊은 허무감에 빠져듭니다.

우리 대부분의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죽어가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과 불안과 두려움과 외로움과 슬픔과 아픔에 휩싸여 걸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태어나 몇 년은 거의 의식도 없는 가운데 생물학적인 삶을 영위하고, 철 들기 시작할 때부터 학교 공부와 입시 지옥을 둘러싼 성적 경쟁에 휘말려 들어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으며 살아가는 동안에 부딪히는 어려움과 고통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중병에 걸리기도 하고, 사랑이 식어가는 가운데 이혼과 별거를 하고, 부모 자식 간에도 많은 거리가 생겨 아픔이 자리 잡게 되고, 급기야 늙어 죽어가는 것입니다. 경제적 문제에 대해선 언급도 안 했습니다만, 경제 문제까지 고려하게 되면 인생 전체가 엄청난 괴로움과 아픔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물론 인생에 약간의 기쁨과 위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많이 배워서 나름대로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습니까? 인생이나 세상 전체를 생각하면 자기가 알고 있는 전문 분야 외에 숱한 분야들이 있고 그 점에 있어선 전혀 문외한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까? 안개처럼 사라질 것들입니다. 권력을 쥐고 흔들어대고 있습니까? 기껏해야 5년입니다. 모기 피보다 작은 걸 위해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죽고 나면 누가, 얼마나, 기억해 주겠습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여기서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은, 인생이 본래 그런 것 아니냐, 인간이 그런 거지 뭐, 라는 식의 말씀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고통 속에 젖어 있다 보면 무감각해지면서 그 고통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직시하고 온몸으로 제대로 느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고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벗어나기 위한 방도를 찾아 나서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겐 이러한 모험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느님께서 사랑 속에서 창조하신, 당신의 모습을 닮은 우리 인간이, 이토록 극심한 고통과 외로움과 허무에 젖어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그것이 당연한 사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뭔가 다른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 유
시찬 신부는 1997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수원 말씀의 집 원장, 서강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 예수회영성센터 피정지도 사제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2월 15일, 
유시찬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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