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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죽음은 희망과 은총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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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1-01 ㅣ No.893

[생명의 문화]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1) 죽음은 희망과 은총의 때

구원 가능성 열린 희망의 시기


중세기에 ‘죽음의 춤’(dance of death)이란 그림이 유행했다. 이 그림은 죽음을 의인화해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면서 산 자들을 데리고 가는 ‘춤추는 죽음’을 묘사했다.

여기서 죽음은 인간에게 생의 종말을 맞이할 준비가 돼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불시에 찾아와 데려가기에 죽음을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는 인물로 묘사한다.

또한 죽음은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 생명을 거둬들일 권리를 가진다. 그래서 죽음의 춤은 인간들에게 그들 삶이 얼마나 허무하고 자신의 영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죽음의 춤에서 특징적인 것은 오로지 죽음만이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다. 산 자들은 뻣뻣하게, 혹은 몸을 돌린 채 조용히 서있거나 말과 행동으로 죽음을 따라가길 완강히 거부한다. 춤과 죽음이라는 이 두 가지 주제는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기시키면서 ‘언제나 죽음에 대해 준비하라’는 교육적 내용을 담고 있다.

죽음의 춤은 주로 성당이나 수도원 건물 그리고 교회 묘지 담장에 그려졌다. 그런데 여기서는 죽음이 예기치 않은 시간에 인간 생명을 앗아가는 폭군이나 난봉꾼으로만 묘사된 것이 아니다. 죽음은 오히려 하느님의 위탁으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 천상의 사자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죽음을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으로 연결지음으로써 죽음의 무의미성이 사라지고 죽음의 유의미성이 드러나며, 파괴자가 아닌 죽음 이후 세계를 전하는 하느님의 전령으로 죽음의 정체를 나타낸다.

초기 그림에서는 죽음의 춤이 죽음의 불가피성과 보편성을 드러낸다. 반면 후기 그림에서는 천사들이 구원받은 인간들과 함께 춤을 추며 천국으로 동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유한성을 지닌 인간이 죽음을 통해 영원성 안으로 들어가게 됨을 말한다. 즉 하느님과 인간의 내밀하며 긴밀한 관계를 나타냄으로써 이제 춤은 기쁨의 춤이요 생명의 표현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태어남(수태됨)이 인간 생명의 시작이라면 죽음은 한 인간이 살아온 삶의 마무리이며 완성이고 인간이 사는 동안 스스로 만든 결과를 실현하는 시간이다. 인간에게 죽음은 자기 완성을 성취할 수 있는 사건이기에 인간은 죽음을 무의하거나 무희망적이지 않은 사건으로 자신의 삶 속에서 인식할 수 있다.

비록 죽음의 법칙은 만인에게 보편적인 사건이지만 구체적인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특수한 종말이며 지상적 삶의 마무리이다. 그래서 죽음은 자연의 이치로서 지상적인 인간 삶을 마무리하는 사건인 동시에 인간의 유한성을 나타내는 사건이며, 인격적 사건인 동시에 희망적 사건이다. 이는 죽음이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현세적 희망이 있지만 죽음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은 현세적인 모든 희망을 초월하는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인 희망이다. 이 희망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속에서 나타나는 희망이다.

이 희망은 죽음이 모든 것의 최종의 실재가 아니며 만사가 끝난 듯이 보이는 곳에서도 구원 가득한 완성된 미래로 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사건이다. 때문에 죽음은 절망과 좌절이 아니라 희망과 구원의 가능성이 개방된 은총의 때가 된다.

죽음의 춤을 통해 인간 죽음이 보편적이고 불가피하다는 가르침과 그 죽음이 이제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서 하느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 안에서 이해되고 나아가 하느님 안에서 인간의 삶이 완성되는 사건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죽음이 구원에 대한 희망과 함께 이어진 은총의 시기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바로 나에게 다가올 그 희망의 때인 죽음을 깊이 묵상함 오늘이 바로 그 때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매일 매일의 삶이 희망과 은총의 때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평화신문, 2011년 11월 27일, 지영현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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