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2-0722...주일...노블레스 오블리제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7-21 ㅣ No.1272

연중 제 16 주일 (나해)

예레미야 23,1-6 에페소서 2,13-18 마르 6,30-34

2012. 7. 22. 등촌3

주제 : 노블레스 오블리제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서양의 말이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회의 변화속도가 아주 빠른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좋은 것을 표현하는 말도 한번 왔다가 사라지는 속도도 빠르지만, 정말 좋은 것이라면 우리가 잊어버리지는 말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서양말의 뜻은 귀족의 의무라는 뜻이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상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드러내야 하는 삶의 책임이라는 말로도 사용하는 낱말입니다.

 

사회의 입장에서 시작한 이 표현이, ‘신앙의 입장에 적용된다면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뜻이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고, 적용의 방법만 달라질 것입니다. 혹시 오늘 이 자리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런 입장에 들어가는 사람도 아니고, 나는 그런 사람의 하나로 생각한 적도 없으니, 당연히 나에게는 그런 의무 따위는 생각할 이유도 없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까요?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내가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의 삶은 나누는 일과 관련될 일이 많을 것이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나는 그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삶은 그 모습과 연결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60년 전쯤에 엄청난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100년 전쯤에는 나라도 사라진 상황에서 수많은 물자와 지혜의 보물들을 일본에 빼앗긴 민족입니다. 그랬던 우리나라의 무역경제규모가 세계에서 7위까지 성장했다는 소리가 지난해에는 나왔습니다. 말 그대로 세계경제규모에서 노블레스의 무리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렇다면 그 다음에 나오는 오블리제의 일은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지 살펴야 할 때입니다.

 

드러나는 세상 삶에 노블레스가 되려고 애쓰는 것은 일반적인 발전과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그저 노블레스만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아니었는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진정한 노블레스오블리제를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우리가 그 두 가지를 얼마나 잘 조화시키는 삶을 지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무역경제규모는 남이 부러워할 만큼 앞서나가게 됐는데,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금액은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24개 나라 중에서 23번째이고,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이 원조하는 평균금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라고 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현실을 보자면, 이제 도와줄 수 있는 나라에 이름을 올렸다는 얘긴데, 그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기사를 신문이나 방송에서 들을 때, 우리나라는 언제쯤 돼야 자랑하지 않고 묵묵히 그 일을 할까 하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나섰던 제자들이 돌아오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을 했으니 쉴 수 있는 권리를 주신 것이라고 알아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실제의 삶에서 일의 순서를 얼마나 그렇게 하고 있는지 참 궁금한 일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궁금하다고 말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그것 역시도 궁금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 순서를 바꾸어, 먼저 먹고 쉬고 힘을 잘 모은 다음에,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나서겠다고 하면 그것은 앞뒤를 바꾸는 태도입니다.

 

먹는 일에 지쳐서 그만 먹겠다고 하는 일은 목숨이 끝나기 전에는 없는 일이고, 쉬는 일에도 지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힘을 잘 모으기 위해서 먹는 일에 관심을 쏟다보면, 몸만 커지고 성인병만 생기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순서를 바꾸어놓고 난 다음에, 어떤 일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오늘 예레미야예언서에 나오는 사제나 지도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사제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저는 겁나기도 하고, 안타깝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그런 판단을 듣고도 지금 현재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은 그만두고 나 혼자라도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은 합니다만, 이것 역시도 혼자만 특별한 결심을 한다고 달라질 성경의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삶의 변화를 위한 시작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에게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지만, 개인의 힘만으로는 사회나 공동체가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라는 소리도 될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해주신 일은 무엇일까요? 사실은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버릇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그것을 지식으로 안다고 한들, 내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하느님께서 세상에 하신 일을 전해 듣고 배우면서,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이냐 하는 것이고 태도입니다. 사실은 말로 하는 대답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결심이 더 중요한 것이고, 우리의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정의와 공정으로 드러나는 하느님,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으로 우리 삶에 평화를 불러들이신 하느님, 성실하게 움직인 사람들의 노고를 잊지 않으시고 보상해주시는 하느님의 품안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힘을 넘어, 그 사랑을 세상에 적용할 수 있는 힘은 어떤 모양이어야 하겠습니까? 함께 하느님의 뜻을 구할 시간입니다.



59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