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2-0720...금...하느님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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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7-19 ㅣ No.1271

연중 제 15 주간 금요일 - 짝수 해 이사야 38,1-6.21-22          마태오 12,1-8

 

2012. 7. 20.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선언(!)

삶에서 나를 드러내는 자신감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흔히 듣는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자존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의미나 차원은 조금 다를 것입니다. 헌데 사람이 이 자신감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 오만이나 자만으로 가능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것이 오만이고, 어떤 것이 자만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사정을 조금 더 어렵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별해서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기준에 따라 그것이 갈라지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흔히 그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넓게 보면 이익과 손해라는 판단이 그것을 가르는 기준일 것이고, 작게 보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하는 것이 가르는 것의 기준일 테지만, 사실 이런 기준도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고, 누구나 긍정할 만큼 분명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밀 이삭을 잘라먹은 일이 잘한 일이었을까요? 제자들이 했다는 이런 행동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판단은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행동이 잘못이 아닌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생각하거나 바리사이들이 보기에 제자들은 분명히 잘못을 범했다고 본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요? 제가 예수님이 아니라서 그분의 판단기준을 알 수는 없지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서로 다른 세계관에서 똑같은 일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계관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바리사이들의 세계관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어떻게 이해하고, 내가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으며, 무엇을 하느냐에 대한 내용을 전제로 하고 같은 일이라도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법칙만 생각해서는 살지 못합니다.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쉬운 말로 하면, 모든 규칙에는 그대로 적용하지 못할 예외가 있다는 말이 될 터인데, 언제 어느 순간에 그 예외가 내가 하는 삶에 적용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예외상황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삶에는 누구나 간절한 것들이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면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아픈 사람이라면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옳게 산 사람이라면 하느님의 자비를 간절히 원할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문제가 생긴다면, 이렇게 말씀드린 것처럼, 필요조건을 생각하거나 준비하지 않고, 내 삶에 일어나야할 당연한 충분조건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실수를 얼마나 반복하고 살까요? 이왕이면 그런 실수가 없거나, 최대한 적은 것이 성공하는 삶이라고 하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얼마나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지는 모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우리가 오류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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