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2-0704...수...하느님이 반기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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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7-03 ㅣ No.1258

연중 13 주간 수요일 - 짝수 해 아모스 5,14-15.21-24     마태오 8,28-34

 

2012. 7. 4. 등촌3

주제 : 하느님이 반기시는 일

세상에 살아있는 그 어떤 사람도 자기 눈으로 하느님을 뵌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지식을 받아들이거나 뭔가를 확인하는 과정에, 이 눈이 갖는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확인하지도 않은 하느님을 말하거나, 그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한때 유행하고, 요즘 또 다시 반복되는 무신론(無神論)자들의 주장 한 가지입니다.

 

이들에게 우리는 신앙을 어떻게 올바로 설명하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면, 이 무신론자들의 논리에 휘말려들지 않고, 우리 신앙을 올바로 드러내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 대답이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대답을 얻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을 향해서 자기의 주장을 당당히 드러내는 마귀들린 자의 얘기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의 한 가지는, ()은 선을 향하여 자기 목소리를 당당히 드러내는데, ()은 희한하게도 악의 길을 가는 자가 알아서 자기 삶을 돌이키고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악과 선이 싸울 일도 없겠지만, 그 두 가지가 서로 맞서 싸우면 무엇이 이길까요? 엉뚱한 질문을 하면, 대답은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악은 선에게 당당하게,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면서 도전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자기 꼬리를 내리고, 선에게서 도망칩니다. 그게 악이 가진 한계이고, 악의 숙명(宿命)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힘이 약하다는 핑계를 대고, 악과 적당히 타협하거나 악에게 먼저 무릎을 꿇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하느님의 축복에 참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삶에 반기시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정의를 외치는 예언자, 아모스는 소리칩니다. 우리들더러 악이 아니라 선을 찾으라고 말입니다. 정의를 바탕에 깔지 않는 축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이 말을 정말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 삶을 쉽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레짐작으로, 내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서, 그 일들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고, 그 일이 힘들 거라고 말하면서 미리 주저앉는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의 축복에 참여하기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가다라 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드러냈던 자세처럼, 예수님을 배척하는 마음이나 생각이 우리 삶의 어느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지 찾아내어, 몰아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혜와 용기를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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