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2-0627...수...하느님의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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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6-26 ㅣ No.1255

연중 제 12 주간 수요일 - 짝수 해 2열왕기 22,8-13; 23,1-3      마태 7,15-20

 

2012. 6. 26.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법을 대하는 자세

우리 신앙인들이 제게 가끔 묻는 소리들 가운데, 무척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신부님, 이런 일하면 죄가 되나요?’하는 소리입니다. 저에게 묻는 소리가 이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소리를 들을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신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저도 비슷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겠구나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살이의 힘겨움 때문에 사람은 그저 죄를 피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사는구나....하는 거죠.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는 제 욕심 같으면 똑같은 질문을 해도, 죄보다는 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악을 피하는 것보다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말이나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그래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순서는 있는 법입니다. 오늘 미사에 오신 여러분 중에서 제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소리를 들을 때 참 궁금한 것이 그 자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겠지만, 성전을 수리하던 대사제가 어느 곳에선가 율법서를 발견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어떻게 실현돼야 하는지 모세가 규정한 것이 율법서인데, 이 율법서를 대하는 임금의 자세가 서글픕니다. 현실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겠지만, 임금은 하느님의 법을 대하면서 하느님의 진노를 먼저 생각합니다. 이래서는 하느님의 법이라는 것이 우리 삶을 억압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어른이나 책임자가 이렇게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아직 전체 세계를 볼 줄 모르는 젊은이나 아이들은 어떤 자세와 태도로 하느님의 법과 규정을 대하겠습니까?

 

이런 안타까움은 아주 오래전의 일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대로 반복되는 일들입니다. 하느님은 가까이하고 그분의 뜻을 찾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멀리하고 혼쭐나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떨어지면 좋다고 생각하는 탓입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는 일에 죄는 없을 테니까, 하느님은 내가 하는 일들이 성공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아닐까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렇게 행동한다면 하느님이 그렇게 손해 보는 일을 우리에게 하실까요? 참 궁금한 문제이고, 질문입니다.

 

내 귀에 좋은 소리가 들려와야 내가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생각을 결정하면, 그 사람은 자신이 세상에서 저지르는 나쁜 일들의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유아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다른 판단이 가능하겠습니까?

 

삶의 결과는 내 뒤에 생기는 법입니다.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한번 생긴 열매나 결실은 바꿀 수 없습니다. 새로 맺을 열매의 모양을 바꿀 수는 있어도, 묵은 것은 그 순간까지 내가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좋은 결실을 맺지 않은 나무의 가지는 잘려서 불에 던져진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내가 얼마나 받아들이고 삶에서 드러내느냐에 따라 우리 삶도 달라질 것입니다. 잠시 우리의 태도를 살필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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