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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11: 생명의 복음, 예수님 인격 선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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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7-27 ㅣ No.1081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 (11) 생명의 복음, 예수님 인격 선포하는 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그리스도가 생명의 복음임을 입증

천상의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지상의 생명 봉사자들에게 주신 편지

♂♀생명봉사자 : '생명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그 핵심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앞선 호(7월 7일자, 1223호)에서 이미 소개한 <<죽음의 문화>>의 경향들을 기억해내야 하겠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처럼 그 경향들은 우리가 무력감을 고백해야 할 만큼 거대한 위협이기에(29항 §1 참조) 그래서 <<생명의 복음>>이 요청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로 그 경향들은 엄청난 낙태약 개발비 투입, 무차별적 피임으로 인한 성과 출산의 의도적 분리, 인공수정과 태아진단 기술의 왜곡된 사용, 소위 '앞서 가는 국가'라는 일부 선진국에서의 안락사 도입 등인데, 더 심각하게는 <<생명에 대한 음모>>에 있어서 호소력 있는 <<국제기구들>>과 <<매스미디어>>가 소위 <<진보>>라는 이름으로 이런 경향들의 <<정당화>>를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책임감 있으시고 그래서 낙태하지 않으신 마리아와 요셉의 모범에서, 그리고 그 가정에서 탄생하신 예수님 생애 전체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원천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르치듯이 "예수께서는 자신의 전 현존과 출현으로 말씀과 업적, 표시와 기적으로, 특별히 당신의 죽음과 죽은 이들 가운데로부터의 영광스러운 부활로, 마침내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죄악과 죽음의 암흑에서 구원하시며 영원한 삶으로 부활시키시기">> 때문입니다(29항 §3). 그래서 교황님께서는 단언하십니다. <<생명의 복음은… 예수님의 인격 그 자체를 선포하는 것입니다>>(29항 §2).
 

♂♀생명봉사자 : 지구상에 다녀간 수십억만 명 중에 왜 하필 나자렛 예수님의 인격에만 집중해야 할까요?

그분의 <<말씀과 업적>> 특히 <<당신의 죽음과 죽은 이들 가운데로부터의 영광스러운 부활>> 그리고 <<진리의 성령을 보내심>>이 그 이유입니다. 이 모두는 나자렛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만 가능한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말할 수 있고, 또 동서고금을 통해서 그렇게 흉내를 낸 인류의 많은 스승과 교사가 있었지만, 그분의 <<업적>>까지 흉내 낼 수는 없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요한 11,25)이신 분은 오직 나자렛 예수님 그 인격뿐이십니다.


♂♀생명봉사자 : 그런데 왜 예배당-교회에 가면 '경직'되고 사찰에 가면 '평안'을 느끼곤 할까요? 일부는 뉴에이지 운동에서도 위안을 얻는데요?

우선 공격적 예배당 설교와 경쟁적 이단 논쟁이 주는 '이질감' 때문이겠지요. 반면 사찰-암자는 도시와 떨어진 자연 속에서 그 혜택을 누립니다. 자연의 숲과 맑은 공기가 일단은 편안하게 하지요. 게다가 내적으로는 자기의 이해(利害)와 무관함이 주는 평화도 있습니다. 비록 일시적이겠지만요. 사찰을 방문해 스님께 "왜 절밥은 이렇게 맛있을까요? 천연 양념의 맛이겠지요?" 했더니, 그 스님 왈 "중에게는 절밥이 모래밥입니다!"

'썰렁 개그' 같지요? 수도생활 30년의 성과가 없다는 자책감이 주는 스트레스로 자살한 '고참' 승려도 있고, 뉴에이지 계열인 '단월드'(단학선원) 조직을 떠나는 어느 '최우수' 단사의 양심고백은 차마 애절합니다.

오랜 만에 시골에 가면 평화와 위로를 느낍니다. 그러나 그곳도 소득을 더 올리기 위한 농부들의 '이웃과의 전쟁터'랍니다. 전통 있는 자연종교나 뉴에이지 계열의 새로운 영성 운동들도 나-살아 있음, 나-부부됨, 나-부모됨, 나-자녀됨의 '거룩한 소명'을 대신(代身)해 주지도 면제해 주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직접 '십자가상에서의 인격적인 죽음'이라는 승부수를 띄우셨고 그 결과 당신이 '생명의 복음'이심을 입증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의 계시를 독점적으로 간직해온 유다교인들조차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생명의 선(善)성'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는 「생명의 복음」 본문.

[평화신문, 2013년 7월 28일, 이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교육분과장, 가톨릭대 윤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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