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대구지역 순교자: 허인백 야고보의 순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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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17 ㅣ No.1346

[대구지역 순교자 20위의 삶을 묵상하며 -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아니 부르시면 어찌 하리오?


허인백 야고보(1822-1868)의 순교 이야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는가? 힘들고 어려울 때 조용히 성당으로 가서 십자가의 길을 바쳐보자. 그때마다 늘 위로를 받는 말씀이 생각난다. 12처에 있는 기도문이다. 장차 주님을 떠날 불행이 저에게 닥칠 양이면 차라리 지금 죽는 행복을 내려주소서…. 순교자 허인백 야고보는 혹시나 주님께서 불러주시지 않으면 어쩔까 염려하며 자주 순교의 바람을 주님께 드렸다.

1860년 경신박해 때 붙잡힌 그는 언양과 경주 감옥에서 8개월이 넘도록 잦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며 굳건히 신앙을 고백하던 중 박해를 중단하라는 임금의 명에 따라 뜻밖에 석방이 되었다. 그 후 가족을 데리고 교우촌이 있는 울산 죽령 산중으로 이주하였다. 낮에는 나무 그릇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고, 밤으로는 묵상 기도로 영혼을 돌보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치명하지 못한 것을 원통히 여기며 “나 같은 대죄인을 주님께서 부르시면 순명하련만 아니 부르시면 어찌 하리오.”하며 자주 순교의 원의를 드러내곤 하였다. 그의 기도와 수계생활은 그가 체포되기 훨씬 전에 이미 몸에 배어 있었다. 24세에 입교한 그는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정결을 지키기 위하여 아내와 각방을 쓰며 남매처럼 지냈으며, 고신 극기는 물론 겸손과 인내의 덕을 쌓는 데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를 많이 도와주었다.

그런 그에게 순교의 기회가 다시 왔다.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안전하였던 죽령 교우촌도 병인박해가 시작된 지 두 해가 지난 1868년에는 포졸에게 발각되었고, 그는 얼마 되지 않아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때 야고보는 가족들에게 “너희들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착실히 실천하여 훗날 천국에서 만나자”고 당부한 후 경주로 압송되었다. 경주 진영에서 참혹한 문초가 시작되었으나 그는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고백하였을 뿐 교회 서적이 있는 곳을 대거나 다른 신자들을 밀고하지 않았다. 그는 절도사가 있는 울산으로 이송되어 더 혹독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자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의 나이는 46세였다.

순교자 허인백 야고보님! 언제나 저희를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살다가 꼭 주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2014년 8월 17일 연중 제20주일 대구주보 4면, 글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그림 김효애 크리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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