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2-0618...월...내가 질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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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6-18 ㅣ No.1250

연중 11 주간 월요일 - 짝수 해

1열왕기 21,1-16            마태오 5,38-42

2012. 6. 18. 등촌3

주제 : 내가 질 책임내가 하지 않은 일

세상을 떠나 살 수 없는 우리는 세상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기도 하고 영향을 받기도 하면서 삽니다. 때로는 내가 직접 개입된 일이라서 책임을 져야 할 일도 있고, 내가 하지 않은 일이기에 내가 책임지지 않을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는 것도 있습니다.

 

오늘 독서내용은, 내가 직접 행동으로 하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책임을 져야하는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독서에서 들은 말씀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맥이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도 생각할 일입니다.

 

독서는 이민족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던 아합 임금의 추락에 관한 내용입니다. 돈이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 자기 정원(=garden)을 늘리고 재산을 늘리는 일을 탓할 수는 없다고 말하기 쉬운 것이 권력의 속성이요, 자본주의 세상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돈 중심으로 움직이는 일들의 한계를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면 참으로 큰일입니다.

 

이제벨은 자기 남편, 아합 임금의 이름으로 남편의 욕심을 채워주는 일을 저지릅니다. 그 자세한 과정에 아합 임금이 개입한 일은 없는 것처럼, 오늘 열왕기독서는 전합니다. 그렇다면, 아합임금은 정말로 그 일에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일의 앞뒤관계를 따지면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일이기는 했지만, 그 일의 결실을 누리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말을 우리 삶과 연결하면 어떤 말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런 얘기는 우리가 세상살이에 대한 공동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비록 세상살이에 공동책임이 있다고는 해도,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겉옷을 줄 수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어느 한쪽의 논리대로 살기는 해야 하는데, 신앙에서 말하는 논리가 현실성이 적어보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논리와 신앙의 논리는 부딪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세상에서 신앙의 논리대로만 살면, 우리 삶이 어떻게 될까요? 저도 아직 다 살아본 것은 아니라서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할 재간은 없습니다. 신앙에서 하는 얘기, 예수님이 알려주시는 얘기는 분명 세상의 시각으로는 어리석기도 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교회공동체는 그 이야기 안에 진리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2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그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정말로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얘긴데도, 세상이 너그러워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참아준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실천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그 말씀 안에 진리가 있기 때문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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