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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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시성]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는 순교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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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3 ㅣ No.1371

연중기획 시복시성 운동 (2) 시복 · 시성을 위한 기도는 순교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



한국 천주교회는 1984년 5월 6일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103위 복자들을 성인 반열에 올리는 시성식을 거행하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가졌다. 이분들 중 79위는 기해 · 병오박해 순교자로 1925년에 그리고 24위는 병인박해 순교자로 1968년에 복자 반열에 오르신 분들이다. 이분들이 복자가 되는 데에는 당시 조선에 선교사들을 파견했던 프랑스의 노력이 컸다.

시복식이 거행될 때는 전세계의 신자들 특히 유럽 각국의 수많은 신자들이 참여하는데, 1968년 10월 6일 병인박해 순교자 24위의 시복식이 거행되었던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는 수많은 프랑스 신자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분 성인들의 순교 행적은 달레 신부의 ‘한국교회사’를 비롯하여 현석문 가롤로의 ‘기해일기’와 조선의 관변자료 등에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돼 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시복이 추진되었고, 복자품에 오른지 길게는 59년, 짧게는 16년만에 성인품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선교사들의 주도로 시복시성이 추진되면서 파리외방전교회가 조선 포교지를 담당하기 전, 즉 기해박해(1839년) 이전의 초기교회 순교자들이 누락된 점은 안타깝다. 하 지만 이제 순전히 우리 한국교회의 자체 추동력으로 교황청 시성성에 ‘하느님의 종(Servus Dei)’ 125위의 시복시성을 청원하게 되었다.

이들 순교자는 신유박해(1801년)를 비롯한 한국교회의 초기 선조 신앙인들로 103위 성인들의 부모들이자 스승들이다. 신해박해(1791년) 때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그리고 1793년 1월에 순교한 원시장 베드로가 포함되어 있어 이들이 시복된다면, 조선 최초 중국인 사제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1794년 12월 24일(음력 12월 3일) 조선에 입국하기 전에 선교사의 전교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순교한 것으로 드러나니 한국교회가 자생적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은 확연히 증명될 터다.

또한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조숙 베드로와 권 데레사가 시복된다면 세계 그 어느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2쌍의 동정부부 순교복자가 탄생하게 되어 한국교회의 자랑이 되고 전 세계의 신자들은 이들의 거룩한 성덕에 또 한 번 놀라고 감화될 것이다.

103위 성인에 들지 않은 초기교회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추진은 1982년에 시작되어 일부 순교자들을 선정하고 순교 행적을 조사하고 약전을 작성하다가 103위의 시성식이 늦어질 것을 염려하여 중단되었고 1984년 103위 시성식 이후 재개되었다.

전주교구가 독자적으로 ‘윤지충 등 5인 순교자’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하고 교구 차원의 시복시성 기도운동을 시작하였으며, 교황청에 시복시성 청원서를 제출하기 전 1989년 4월 시성성으로부터 이들의 시복시성 청원에 아무런 이의가 없다는 장애(障碍)없음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이후 청주교구, 수원교구, 대구대교구, 서울대교구 등이 시복시성운동을 독자적으로 추진하였으나 곧바로 주교회의 차원에서 통합 추진키로 결의하고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2004년 7월 5일 시복 조사 법정을 개정해 ‘하느님의 종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및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한 시복 재판과 현장 조사 등 한국교회 차원의 절차를 모두 마치고 방대한 약전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2009년 6월 3일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하고 시복을 청원했다. 이제는 시성성 신학위원회의 심사와 교황의 시복 교령이 내려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2008년 11월 복자품에 오른 일본교회 순교자 188위가 시복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한 편 ‘하느님의 종’ 순교자 124위에 대한 교황청 시성성 역사위원회 심사가 2013년 3월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큰 이변이 없는 한 올해 12월 전에 순교자 124위에 대한 교황청의 모든 법적 검토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한다.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본받아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신앙 쇄신을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이 시복시성 기도운동이다. 시복시성 기도운동은 단지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만이 아니다. 순 교자들을 현양하고 성지를 잘 가꾸고 보존하는 일, 순교자들에 대한 학술연구 등을 활발히 전개하거나 지원하는 것 역시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운동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를 내세워 성지를 마구잡이로 개발하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기념터라고 해도 될만한 자리를 성지라는 이름으로 경쟁적으로 개발하다보니 전국적으로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 200군데가 넘고, 버스나 전세 열차편으로 야유회를 가는 것인지 성지순례를 가는 것인지 모르는 소위 원족 성지순례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에 비해 정작 찾아야 할 성지는 방치되는 것을 왕왕 목격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서울 ‘서소문 순교성지’가 그렇다. 98위가 순교하고 이중 44위가 성인품에 오른 최대 피의 순교 현장이요 성지이지만 지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노숙자들의 놀이터가 된지 오래다.

이 중요한 성지를 최우선으로 개발하여 잘 보존하고 순례하며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그분들의 거룩한 삶을 본받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신자들의 과제이자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기도이지 않겠는가?

성인들에 대한 공경 태도도 그렇다. 본당 주보성인조차 잘 모르는 신자들도 많거니와 주보성인 상을 모신 본당도 별로 없다. 성인 공경이 생활화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또 개신교로부터 우상숭배라는 비난을 의식한 탓도 있는 듯하다.

성인들에 대한 공경과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를 생활화하는 운동이 절실하다.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은 ‘하느님의 종 시복시성 청원에서 중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이라고 권고하셨다.

한국평협은 2011년 7월 9일 배론 성지에서 염수정 대주교의 집전으로 ‘하느님의 종’ 125위의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운동 출범미사를 봉헌했고, 9월 4일에는 솔뫼 성지에서 기도운동 선포식과 함께 도보 성지순례를 하고 이 운동을 전국으로 확대해 진행해 오고 있다.

또한 한국평협 대표단은 2011년 12월 23일 바티칸 시성성을 방문해 한 해 동안 각 교구 평협과 함께 대대적으로 펼친 ‘하느님의 종’ 125위 시복시성기원 기도운동의 결과물을 제출하고 125억단의 묵주기도 봉헌을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서울평협은 지난 7월 1일 명동대성당에서 한국순교자 현양위원회와 공동 주최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대주교님과 함께 ‘하느님의 종’ 125위의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묵주기도의 밤’ 행사를 열었으며 이 같은 기도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순교자들의 거룩한 삶과 그들의 영웅적 성덕을 본받고 그 모범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 변화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순교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아니겠는가?

[평신도, 제40호(2013년 여름), 양두석 토마스(한국평협시복 · 시성특별위원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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