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시복시성] 우리의 기도로 앞당기는 한국 순교자 시복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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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3 ㅣ No.1370

연중기획 시복시성 운동 (1) 우리의 기도로 앞당기는 한국 순교자 시복시성



평신도 유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자발적으로 수용한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그 자체로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독특하고도 특별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천주교 전파 이후 거의 100년 이상 한국 교회는 크고 작은 박해를 받았으며, 수많은 천주학쟁이들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 앞에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순교의 삶을 통해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들은 1831년 ‘조선 대목구 설정’과 함께 1836년에 입국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 의해 알려지게 됐다. 선교사들은 당시 순교자들의 순교 사실에 대해서 동료 평신도로 하여금 일기 형식의 기록으로 남기게 하였고, 이것들은 시복시성을 위한 준비작업의 발판이 되었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들은 ‘기해 및 병오 순교자 기록’으로 엮어져 1847년 로마 교황청에 보내어졌으며, 마침내 1857년 9월 23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한국 순교자 시복 조사를 접수하는 법령이 반포되었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 최초로 순교자 82위가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당시 분명한 것은 이러한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諡福)의 첫 단추는 당시 평신도들의 ‘헌신적인 기도’와 ‘자발적 노력’의 결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 순교 영성의 바탕이 되었다.

1886년 한불수호조약 이후 천주교에 관한 묵시적 종교의 자유는 시복시성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우선적으로 시복 대상자들에 대한 ‘유해 발굴 및 확인’ 작업이 자유롭게 진행되면서, 당시 수집된 문헌 및 사료들을 통해 순교자들의 유해들이 발굴되었고, 이렇게 확인된 순교자들의 유해는 당시 명동성당 지하실 혹은 그 밖의 교회 기관에서 지정한 장소로 옮기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에 대해서는 <경향잡지>나 <별> 등 당시 교회 잡지에서 주요 기사로 다룸으로써, 신앙 선조들의 역사적 순교 사실과 ‘순교자 공경의 중요성’이 평신도들에게 꾸준히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의 바탕 역시 당시 순교자들과 함께하는 ‘신자들의 기도’가 중심에 있었다.

시복 준비를 위한 ‘기도 운동’은 당시 한국 교회 지도자들도 솔선수범했다. 경성교구 드브레 부주교가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로 보낸 ‘1924년 보고서’를 보면 ‘기해 병인년 순교자 시복’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영광스런 순교자들의 전구(轉求)로써 일찍이 고난 중에 씨를 뿌리고, 피로써 물을 준 것으로부터, 기쁨 가운데 더 많은 수확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로 간청하였다. 또한 ‘1925년 보고서’에서는 “이 신앙의 순교자들이 하느님 앞에서 그들의 전구를 통해 일찍이 그들이 자신의 피로 적신 조선 땅에서 벌였던 투쟁을 모방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과 용기와 신뢰를 얻어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이러한 ‘시복을 위한 기도’는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다 절실했음을 알 수 있다.

시복시성을 위한‘기도 운동’의 간절한 열망은 마침내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시복식 참석을 위해 로마에 머물렀던 한국 교회 주교인 뮈텔과 드망즈 등은 ‘시복식’ 이후 ‘복자경문’, 즉 한국 순교자들을 위한 복자 기도문을 발표하고, 한국 교회 전 신자들의 보다 더 열렬한 기도 운동을 통해, 한국 교회 시복자들이 성인 품에 오를 수 있기를 당부하였다.

시복식 이후 순교자들에 대한 기도 운동은 다양하게 전개되어 나갔다. 우선 한국 교회는 해마다 9월 26일을 ‘복자 축일’로 정하여, 전례 안에서 한국 순교자들과 함께 기도 안에서 축일을 성대하게 지냈다. 특히 ‘복자 축일 대미사’와 ‘복자 유해 경배’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기도’ 안에서 순교신심을 굳건히 다져 나갔다. 또한 복자 축일 기념 ‘강연회’ 및 복자 축일 기념 성대한 ‘제등 행렬’을 거행하면서, 한국 순교자들의 정신을 전파하고자 노력하였다.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는 그 이후 교구 내 중대한 행사를 준비할 때에도 중심에 있었다. 예를 들어, 1931년 ‘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으로 한국 교회에 최초의 공의회 개최가 확정된 후, 조선 다섯 개 교구 주교들은 전체 교구 신자들에게 성공적인 회의 개최를 위해 맨 먼저 ‘한국 순교자들에게 특별히 전구하기’를 청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그 밖의 한국 교회 내 공식적인 큰 행사가 치러질 때면, 언제나 신자들에게 ‘한국 순교자들’에게 우선 기도하기를 당부하였다.

이러한 기도 운동의 결실은 곧 병인박해 순교 가경자 26위 중에서 ‘24위 시복식’이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되었다. 당시 시복식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있었고, 그중 500여 명의 한국 신자들과 2500여 명의 프랑스 신자들이 시복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시복 선언이 끝나자마자,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대주교의 주례로 장엄한 대례미사가 거행되었다.

1971년 한국 교회 주교회의에서는 한국 순교복자들에 대한 ‘시성 추진 안’을 접수하게 되었고, 1976년에는 ‘1925년 79위 복자’, ‘1968년 24위 복자’에 대한 시성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하였다. 이와 함께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에서는 ‘한국 순교자 시성 운동’을 한국천주교 창설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순교자들을 향한 기도 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갔으며, 그중 하나로 ‘순교자 유해 순회 기도회’를 장엄하게 거행하였다. 이러한 한국 교회 전 신자들의 자발적이며 열성적인 ‘기도’와 ‘시성’에 대한 꾸준한 노력은 마침내 한국천주교 창설 200주년인 1984년 5월 6일, 순교의 피가 얼룩져 있는 한국 땅에서, 천주교의 최고 수장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모시고, 한국 교회 ‘103위 순교 복자 시성식’ 미사가 거행되면서, 한국 순교자 시성이 엄숙하게 선포되었다.

이상으로 과거 ‘시복시성’의 약사를 간단히 언급하면서, 그 안에 ‘기도 운동’이 중심이었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 또다시, 모두의 ‘기도 운동’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교회는 ‘124위 하느님의 종과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이들 ‘124위 및 증거자’에 관한 ‘피의 순교’ 및 ‘땀의 순교’에 관한 세세하고도 탁월한 신앙 증거의 행적들은 우리 교회 측 기록뿐만 아니라, 당시 관변 기록을 통해서도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이들의 순교에 관한 기록을 들여다 볼 때, 모진 문초 앞에서도 당당하게 하느님 신앙을 증거했던 모습이 생생히 드러나고 있다. 이들 순교자들이 시복시성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지금은 단지 ‘시복시성’ 되는 그 시간만을 기다릴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교회의 ‘시복시성의 역사’는 평신도들의 ‘기도 운동’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 ‘기도 운동’의 전통은 103위 시복시성을 기다리며 근세기를 살았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 특히 일제 강점기에도 천주교 신앙을 잘 유지 발전시킨 신앙의 선배들, 6.25 전쟁의 와중에도 신앙을 놓지 않았던 신앙의 선배들이 온 몸으로 보여 준 생생한 전통이었다.

우리는 신앙 선조와 선배들이 보여준 ‘기도 운동’을 본받아 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도 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과거 ‘가경자’, ‘두 차례의 시복 및 시성식’은 한민족 안에서 천주교 신앙인의 자부심과 신앙의 우수성을 만방에 드러낼 수 있었던 외적으로 중차대한 사건이었다면, 이제 ‘124위 하느님의 종과 증거자 최양업 신부에 대한 시복시성 작업’은 좀더 내적으로 우리 각자가 신앙적으로 한층 성숙해지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순교’라는 단어가 과거 종교 박해 시절에만 사용된 신앙의 ‘사투리’가 아니라 일상의 친숙한 언어이자, 우리로 하여금 일상 안에서도 ‘순교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는 ‘순교 영성’의 토대를 마련해 줄 것이다.

[평신도, 제39호(2013년 봄), 강석진 요셉(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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