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2-0412...목...내가 생각하는 부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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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4-12 ㅣ No.1215

부활 1 주간 목요일 사도행전 3,11-26                루카 24,35-48

 

2012. 4. 12. 등촌3.

주제 : 내가 생각하는 부활의 모습(?)

사람의 삶에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아주 큰일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다른 사람의 팔이 부러진 고통보다도 내 손톱 밑에 들어간 나무가시가 더 큰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개인이 느끼는 경험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이런 일에 대한 잘잘못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신앙은 부활을 말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살아있는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이 체험한 것과 같은 효과를 주면서 부활이 무엇인지 설명해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경험하기 전까지는 같은 체험을 갖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에서는 부활을 얘기합니다. 여러분은 이 낱말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받아들이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기들 사이에 발현하시자, 제자들은 기겁하고 놀랩니다. 자기들이 생각한 예수님 부활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부활을 기대했을까요? 어찌 생각하면, 부활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던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모습은 한 식탁에서 음식을 먹고 난 다음이었다는 참 묘한 모습입니다.

 

먹는 일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신앙인이거나, 신앙을 접고 사는 사람이거나 비신앙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먹는 일에서 자유롭거나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먹는 일에만 주된 관심을 갖다보면, 그 사람의 삶은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사정이나 상황에 신경 쓸 시간여유가 없다고 할 것이고, 그렇게 살아온 사람에게 다른 세상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신경 쓰겠습니까?

 

세상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질 때가 많습니다. 남들은 다 좋다고 말하는 세상, 나 혼자서 나쁘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내 생각과 행동의 출발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세상의 얼굴은 나에게 다른 모습으로 올 거라는 얘깁니다. 세상의 모습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신앙의 얼굴에도 그대로 다가올 것입니다. 살과 뼈를 보여주어도 믿지 못하던 제자들을 바라보실 때, 예수님은 과연 어떻게 느꼈을까요?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허탈하셨을 것입니다.

 

세상 삶에 능력 있는 사람은 그 능력을 드러내면 됩니다. 신앙에 관심이 있다는 말은 참 폐단이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세상일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은 신앙에서 올바른 자세를 가진 사람이 그 세상을 향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내 개인의 힘으로 왔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아주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인 부활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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