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2-0329...목...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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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3-29 ㅣ No.1205

사순 5 주간 목요일

 

창세기 17,3-9 요한 8,51-59

 2012. 3. 29. 등촌3

주제 :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뜻

우리는 세상에서 아주 대단한 사람인양 생각하고 사는 때가 있습니다. 특히 오늘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국민들의 투표에 따른 선거를 앞두는 때가 되면 그런 소리와 얘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저 사람보다 내가 나서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내가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니, 어떤 사람을 택해야 어떤 일이 더 나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모르는 일에 대해서도 투자를 하고 도박을 걸지만, 희한하게도 신앙에 관련된 일들에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거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요즘 우리가 읽는 전례말씀에 대한 판단은 2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손에 죽으려고 그렇게 애쓰셨을까 하는 것 한 가지와 예수님은 어째서 유대인들을 상대로 하여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걸었으며, 때로는 치고 빠지는 일을 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질문은 하지만, 그 상황을 이해하려는 것일 뿐 정답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상대편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도통 얘기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저렇게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도대체 지금까지 내가 알아온 하느님은 누구일까하고 답답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삶이 답답하다는 것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나는 항상 옳은 입장에 있고, 너는 항상 그른 입장에 있다고 주장할 때 나오는 일입니다.

 

세상일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나중에 시간이 흐른 다음에 결정됩니다. 그런 걸 가리켜서 경험에 따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앙과 그 신앙을 세상에 적용하는 것은 경험적인 차원이 아닌, ‘선험적차원이라고 말합니다. 경험이전의 내용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자와 받아들이지 않는 자의 자세가 아주 극적인 대조를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과 유대인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거기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의미 없는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창세기 독서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을 따른 아브람의 삶에 하느님이 들어오셔서, 그를 인정하여 받아들이고 당신의 사랑을 듬뿍 부어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인의 삶과 비교하면, 세례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만, 이것 역시도 경험의 차원은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겠다는 선물의 선언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내가 당장 지불해야 할 것이 세상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 창세기말씀의 끝에 너와 네 후손들은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있습니다. 세상 삶에 바쁘고, 세상 삶을 1차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선험에 해당하는 하느님의 계약을 소홀히 여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산다고 해도, 하느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겠는지 우리가 잠시 생각할 시간입니다. 하느님 앞에는 어떻게 다가서는 것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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