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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선거와 그리스도인: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선거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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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23 ㅣ No.913

[경향 돋보기 - 선거에 임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선거 참여


임진년이 밝았다. 충천하는 흑룡의 해인지라 큰 발전의 희망을 마음에 품고 2012년을 맞았다. 녹록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올 한 해 잘 살아보려는 다짐의 눈빛도 결연하다. 불안정한 세계 경제, 우리 경제 역시 순탄치 않을 것 같고, 김정은 북한 체제의 안착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4월 국회의원 선거, 12월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여야 정치권은 양대 선거를 승리로 이끌려고 쇄신과 통합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으나 이 또한 순조롭지 않아 보인다. 최근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후보자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 충격을 주었다. 정치권의 비리와 부패로 정치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가지만, 그래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정치 현실이다. 새로운 정치는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수많은 질곡의 현대 정치사의 중심에 항상 국민이 있었다. 식민지 경험과 분단, 전쟁 그리고 계속되는 정치적 파행 속에서 많은 희생과 투쟁의 결과 민주정치의 초석을 마련했으며, 군부 독재시절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다섯 차례의 민주적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치문화와 정치제도 그리고 정치 과정의 모든 면에서 극복해야 할 걸림돌이 산재해 있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우리의 대의기관을 꾸릴 국회의원을 선출해야 하는 올해, 모든 국민이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자세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특히 가톨릭 신자들은 성경 말씀과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따라 슬기롭게 대표들을 선출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선거 참여는 국민의 권리이며 동시에 민주시민의 의무다. 올해 두 차례의 선거를 맞아 민주정치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라는 기본원리를 되새겨 무한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국민은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라는 참여의식과 책임의식이다. 동시에 지금까지 성취한 우리나라 민주정치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정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책임감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민 각자가 민주화의 주체로 선거에 임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밝다.

선거에 임하는 가톨릭 신자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정치 공동체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실상을 우리의 신앙으로 판단하여, 우리의 대표를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선거는 단순히 투표장에 나가는 행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을 냉철하게 되돌아보고, 자성하고, 앞날을 다짐하는 총체적 정치적 행위를 의미한다.

우선 우리 사회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적 국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갈등 현상의 본질과 해결 방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 단계에서 냉철한 이성적 관찰이 필요하다. 정치적 갈등은 여러 양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각각의 갈등도 그 내부에 다양한 의제와 폭넓은 견해가 공존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정치 현상은 본질적으로 ‘갈등적’이라는 측면과 사회의 갈등은 그 사회 고유의 역사 속에서 태동된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곧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온 우리 사회가 이념적 갈등을 겪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3년의 전쟁과 60여 년의 분단을 통해 내재된 이념적 갈등은 어떠한 형태로든 분출될 수밖에 없으며, 분출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민주화를 통한 참여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사회 내의 분화와 분열, 갈등을 초래했으며,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과 자본의 이익 갈등은 내면적으로 증폭되어 왔다. 이러한 갈등은 분단의 상황과 권위주의 정권에 따라서 뒤틀려진 이념 갈등으로 재생산되면서, 서구 좌우파의 이데올로기와 친북반미, 민족의 이념적 정향이 중첩된 이념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념 갈등은 세대 갈등과 중첩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종종 계층적 갈등 또는 지역 갈등과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 세력들은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이념적 갈등을 부추기고 부풀려, 유권자들을 둘로 나누어 적과 동지로 삼으려 한다. 선거를 포함한 정치과정으로 이를 합리적으로 걸러내고, 순화시킬 수 있는 수준에 따라 그 정치 공동체의 민주화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데에 이견은 없다.


갈등을 걸러낼 수 있는 잣대 사회교리

다행스럽게도 선거를 통해 갈등을 걸러낼 수 있는 좋은 잣대가 가톨릭 신자들에게 주어졌다. 사회적 가르침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방법과 기준을 제공한다. 사회적 가르침은 인권존중과 공동선, 연대와 보조성의 원리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극단의 논리와 목소리를 잠재우고 연대와 공존의 목소리를 증폭시킬 수 있는 기반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근현대사를 통해 중간의 주장들은 무시되었고 그 결과 중도와 통합을 주장했던 세력들은 역사의 흐름에서 변두리의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좌우 대립과 분단 그리고 군사정부의 굴레에서 빚어진 아픈 역사다. 타협은 반동이고 투쟁만이 살 길이라는 의식과 함께, 중간에 서있는 개인과 집단을 백안시하는 태도가 이미 몸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중간에 서면 양쪽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그 중간의 입장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든지, 아니면 어느 한편으로 쉽게 휩쓸려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바라보면 풀지 못할 갈등도 없다. 갈등은 종종 구체적 정책의 대결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꼼꼼한 점검도 필요하다.

민주화의 첫 단계 진입을 위해서는 ‘독재타도’와 ‘호헌철폐’ 등의 구호로 족했고, 민주와 반민주의 정치 세력을 구분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나, 이제 구체적 정책의 실상과 허구를 파악하고, 대안의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 그렇다. 정치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매우 긍정적 조짐이다. 정치 발전의 계단을 한 단계 더 올라갈수록 유권자의 노력이 배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유권자의 삶과 정치의 연계가 두터워질수록 국민들은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 결정 과정 그리고 정책 사안에 대해 많은 정보를 숙지해야 한다. 조세정책과 주택정책, 자녀들의 교육과 관련된 정책, 환경과 소비자정책 등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축적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민주정치를 만끽하려면 감수해야 할 일이다. 똑똑하고 깨어있는 국민들만이 권력자들을 감시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정당의 정강과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에는 후보자의 도덕성, 능력 그리고 리더십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정당의 후보로 결정되는 공천 과정도 따져봐야 한다. 우선 신뢰할 수 있는 정직한 후보의 선택이 중요하다.

국내 한 연구기관의 신뢰 수준 조사에 따르면 직장, 학교 동료, 교육기관, 언론, 대기업, 경찰, 이웃 사람 등 14개 대상 가운데 정당, 국회가 13위, 14위를 차지하여, 국회를 포함한 정치권이 불신 대상의 선두에 있음을 확인했다. 국민은 정치인들의 말 뒤집기와 언행불일치 등 표리부동의 정치 행태를 수없이 목격했다. 군의 정치 개입과 민정 참여, 정계 은퇴와 복귀, 정당의 부단한 부침과 철새 국회의원들의 무분별한 이합집산은 정치를 불신의 어휘로 함몰시켜 버렸다.

또한 정경 유착을 통한 정치 부패로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고착되었다. 개발 독재, 급속한 경제 팽창, 파행적 정치 변동을 통해 정치 부패, 고비용 정치, 정경 유착의 부패 고리가 정치권으로부터 사회 저변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구조화되었다.

다행히 지난 십여 년간 선거공영제를 확대하고 정치자금의 수요를 축소한 결과 검은 정치자금의 규모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공천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는 금품수수와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철저한 소명의식과 역사 인식을 지닌 후보를 선별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나 국회의원 후보 공히 지난 60년 헌정사를 관통하는 역사성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며 우리의 헌정 질서와 정치제도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대통령제의 기반인 ‘권력분립’과 ‘상호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정치인이라야 현 권력 구조 안에서 각 정치 행위자의 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특히 국회의원 후보의 경우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견제와 분립의 중심적 위치에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러한 의식 하에 의정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행정부의 비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성을 확보한 국회의원이 필요하다. 입법 기능과 행정부 견제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고도의 전문적 식견을 가져야 한다. 과거 권위주의 통치 하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투지와 구호가 중요한 덕목이었지만 정치 과정이 안정화되고 제도화될수록 입법과 행정부 견제를 위해서는 구체적 정책 이슈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와 정당을 검증하기 위해 평소 정치 참여를 위한 채널을 확보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민들은 여러 채널을 이용하여 선거 과정과 정치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 과정과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양적 · 질적으로 성장한 사회집단과 이익집단들이 그동안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 하에서 표출하지 못했던 제반의 이익들을 정치 과정에 활발히 투입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사회 제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특정 집단의 우세와 일방적인 독주 대신 복수 사회단체의 존재와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의 균등한 참여가 확산되고 있다. 다원적 이익 표출 체계로의 전환기에서 집단 이익의 과도한 표출과 갈등도 나타나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 내의 민주화와 개혁은 다양한 시민단체의 활동 공간을 증대시켜 주고 있다.

선거 감시와 의정 활동 평가, 좀 더 포괄적인 정치 개혁을 위한 시민운동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시민단체, 공익 단체를 포함한 많은 집단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연대하여 공명 선거 운동과 의정 활동 평가, 그리고 구체적 정책과 제도의 개혁에 앞장서 왔다. 개별 집단들이 아직 규모나 조직 면에서 독자적인 활동이 어려운 경우, 유사한 집단들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연대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사회교리의 실천

한국교회는 지난해부터 대림 제2주간을 사회교리주간으로 제정하여, 신자들이 사회의 제반 문제를 복음적 시각으로 성찰하고, 이에 적합한 삶과 실천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회교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소중히 여겨야 하는 지상 여정의 ‘나침반’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지킬 교리’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사목헌장을 통해 인간의 존엄함과 공동선을 다루고, 혼인과 가정, 문화, 경제사회 생활, 정치 공동체 생활, 평화와 국제 공동체에 대한 교회의 공식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신자의 이해도는 참으로 낮은 편이다.

1995년 서울대교구가 사회교리학교를 처음 개설한 이후 현재 여러 교구에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전수하고 있으나, 교리 습득과 실천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사회교리주간의 제정은 한국교회와 신자들이 앞으로 제반 영역의 이슈를 복음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할 때 가톨릭 신자들은 사회교리를 하나의 규범으로 삼을 만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교리를 전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거와 정치 참여 등 자신의 사회적 삶에서 사회적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수년 간 이러한 운동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한국교회는 민주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미 아는 바대로 격동의 시기에는 복음화에도 많은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의 사회 운동, 사회 참여는 교회적인가 비교회적인가, 정치적인가 비정치적인가 등의 갈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시민으로서,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할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 것은 당위다. 군림하고 호령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봉사하고 품격 있는 대변자를 기대하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 발전은 혁명적 변화나 정치 엘리트의 특단의 조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의 공약과 경력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정의롭고 풍요로운 삶을 담보할 수 있는 정당과 후보자를 자신 있게 선택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선거 참여로 2012년 임진년을 새로운 정치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더 나은 세상 우리가 만들 수 있다.

* 이정희 베드로 -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현재 한국정치학회 회장, 사회정의시민행동 공동대표, 한국평신도단체협의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2월호, 이정희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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