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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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새로운 복자: 한덕운 토마스 - 모범적인 연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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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13 ㅣ No.1387

[새로운 복자] 한덕운 토마스 - 모범적인 연령회장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난 한덕운(1752-1801) 토마스는 윤지충(바오로 : 새 복자)에게 교리를 배워 1790년 10월에 신자가 되었습니다. 윤지충이 제사문제로 체포되어 순교하자(신해박해 1791), 한 토마스는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교리를 실천해나갔습니다. 한 토마스는 주문모 신부가 입국(1795년)했다는 소식을 듣고 성사의 은총을 입기 위해 주 신부를 만나려고 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1800년 10월, 토마스는 좀 더 자유로운 신앙을 위하여 고향을 떠나 경기도 광주 의일리(현 경기도 의왕시 학의동)로 이주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성실하게 기도와 희생에 전념하고 신심서적을 읽으며, 복음전파를 위해 전교와 권면을 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한 토마스가 굳건하고 진중한 언어로 신자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신앙이 흔들리는 이들의 마음을 바로잡아줄 때에는 감동적이었다고 합니다.

1801년에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누구보다 용감했던 한 토마스는 교회와 교우들의 소식이 궁금하여 옹기 장사꾼으로 변장해 한양으로 올라갑니다. 가는 도중 청파동에 이르렀을 때에, 거적으로 덮여 방치되었던 홍낙민(루카 : 새 복자) 순교자의 시신을 보고 놀라, 비통한 마음으로 애도하고 장례를 치러줍니다. 이때 아버지의 순교를 무서워하며 숨어있던 그의 아들 홍재영(프로타시오 : 새 복자)을 크게 질책하며 그의 잘못을 바로잡아주어, 1839년에 순교하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리고 한 토마스는 서울 서소문 밖에서 최필제(베드로 : 새 복자)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러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신자들의 시신을 돌보아주다가 체포된 한 토마스는 포도청으로 끌려가 신자들의 이름을 대라는 혹독한 고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교우들을 보호하려고 결코 입을 열지 않습니다. 이에 박해자들은 한 토마스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이때 한 토마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천주교의 교리를 깊이 믿은 것은 이를 가장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비록 죽을지라도 저버릴 마음을 갖겠습니까? 오직 빨리 죽기를 바랄 뿐이오.” 한 토마스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남한산성(약 1천 400년 동안 산성과 도시의 기능을 한 곳으로 2014년 6월 22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1791년 신해박해,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300여 명의 교우가 순교한 곳)으로 옮겨져 참수형으로 순교합니다.

박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순교자의 시신을 찾아 돌보아 주고 그 가족들을 신앙으로 견고하게 하며 장례를 치러준 것은, 목숨을 내어놓는 것과 같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한덕운 토마스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배운 바를 그대로 실천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주며, 교회와 교우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지켜낸 신앙인이었고, 한국 최초의 연령회장 직분을 충실히 수행한 순교자라 할 수 있습니다.

[2014년 8월 17일 연중 제20주일 수원주보 4면, 최인각 바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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