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새로운 복자: 이성례 마리아 - 신학생과 사제들의 어머니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13 ㅣ No.1386

[새로운 복자] 이성례 마리아 - 신학생과 사제들의 어머니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아내이자, 하느님의 종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이신 순교자 이성례 마리아! 신앙적으로 보면 최고의 영광을 입은 아내이고 어머니이십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면, 수많은 삶의 질곡에 하느님의 손길이 함께 하셨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성례 마리아는 내포의 사도인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의 집안사람으로, 이존창이 순교한 1801년에 태어났습니다. 가성직자로 활동하였던 이존창에게 하느님께서는 성직자 가문을 허락하십니다. 그의 딸을 김대건 신부의 조모로, 그의 생질녀를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로 삼아 주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여장부다웠던 이 마리아는 17세 때 최경환과 혼인하여 충남 청양 다락골에 살면서 최양업을 낳았습니다. 이 마리아는 연하의 남편에게 순종하고 집안일을 지혜롭게 꾸려가며 집안사람을 화목하게 이끌었습니다. 이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다가 박해를 피해 강원도, 인천 부평을 거쳐 안양 수리산 뒤뜸이에 정착해 교우촌을 일구고 살았습니다. 잦은 이주와 굶주림으로 어린 자식들이 칭얼거리면 요셉과 성모 마리아의 이집트 피난 이야기나, 골고타 언덕의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에게 인내를 가르쳤습니다. 이때에 최양업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로 떠납니다.

기해박해(1839년) 때, 남편이 한양을 오가며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해주고 교우들을 돌보자, 마리아도 적극적으로 남편을 뒷바라지합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이 부부는 새벽녘에 급습한 포졸들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교우들과 함께 따라갈 테니, 잠시 쉬었다가 식사를 하고 떠납시다” 하며 밥상을 차려 주고, 장롱에서 옷을 꺼내 포졸들에게 입혀주고는, 교우 40여 명과 함께 행렬을 이루어 한양으로 향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에 감동한 포졸들은 오랏줄을 묶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마리아는 감옥에서 굶어 죽어가는 젖먹이 아들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어린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고문 끝에 옥사하자, ‘살아 내 아들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본능적인 ‘모성애’를 선택해 감옥에서 풀려납니다. 이후 아들이 신학생으로 유학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마리아는 다시 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한때 모성애에 이끌렸던 이 마리아는 신앙을 용감히 고백하는 여장부로 변해있었습니다. 감옥으로 음식을 갖고 오는 철부지 아들 최의정 야고보에게 “이제 그만 가거라. 절대로 천주님과 성모님을 잊지 마라. 서로 화목하게 살며, 어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서로 떨어지지 말고 형(최양업)이 돌아오기를 기다려라” 하며 끓어오르는 모정마저 끊고는 당고개(서울 용산 신계동)로 끌려가 용감히 참수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살아서 아들 사제를 보지 못했던 이성례 마리아가 천상에서 신학생과 사제들을 위해 당신의 모성애를 다하고 계심이 그려집니다.

[2014년 8월 3일 연중 제18주일 수원주보 4면, 최인각 바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1,39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