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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조상제사 문제와 신해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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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1 ㅣ No.22

[신유박해 200주년 특강] 조상제사문제와 신해박해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신유박해 200주년(2001년)을 앞두고 매달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신유박해 200주년 특강'을 마련하고 있다. 7일 세 번째로 열리는 '조상제사문제와 신해박해'에 관한 김진소(호남교회사연구소장) 신부의 특강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조선왕조는 송나라의 주자가 집대성한 주자학을 통치이념으로 선택한 유교국가다. 그래서 가정의례준칙인 주자가례를 사대부들에게 강요하고 일반인에게까지 생활관습으로 확립하고자 했다. 16세기 후반부터 주자학이 토착화됐고, 17세기에 와서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방법으로 주자가례의 실천을 강요했다.

 

그리하여 조선은 폐쇄적, 독선적, 배타적인 주자학 하나만을 신봉하는 사회가 되었으니 천주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상이며 종교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천주교도들은 천주교가 유교식 조상제례를 금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조상제사가 국가공권력으로 강제로 지내게 되어있고 또 오랜 인습으로 내려오고 있어 버리지 못했다.

 

한국교회는 조상제사 문제로 고민한 나머지 윤유일을 1790년 북경교회에 파견하면서 신주를 보존하고 조상제사를 계속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러나 한국신도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유항검의 이종사촌인 윤지충과 그의 외사촌 권상연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1791년 어머니 상을 당한 윤지충은 장례의식대로 예를 갖추었으나 신주는 모시지 않았고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이에 권상연도 동조해 신주를 소각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천주교도들을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반란세력으로 규정하던 노론의 홍낙안이 성토를 시작했고,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쳐 윤지충과 권상연은 갖은 고초와 심문을 당한 뒤 참형을 당했다.

 

그러면 윤지충, 권상연이 폐제분주한 것은 단순히 교황청의 결정에 따른 행위였는가. 그렇게 말하기에는 그들이 사리 분별력과 판단력을 가진 유교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그러면 당시 제사를 폐지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폐제분주는 유교에서 천주교로 완전히 개종한 천주교도의 행동이었다. 초대교회 때부터 신도들은 조상제사를 종교행위로 인식했고, 천주교로 개종한 이상 교회의 법을 따르는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둘째, 근본정신을 잃지 않는 제사의식의 형식은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윤지충은 주자가례가 지배체제를 강화하면서 국민의례로 정착하게 된 과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신주는 볼 수 없는 사자(死者)를 표상하는 신상과 사자의 신령이 거처하는 의빙처(依憑處)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윤지충은 신상의 의미로 해석해 신주를 폐기한 것이다. 넷째, 윤지충은 천주교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을 깨달았기에 신분제도를 옹호하기 위한 수단인 유교식 조상제례를 부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교식 조상제례를 폐지한 윤지충과 권상연의 근본적 이유는 신앙 때문이다.

 

유교식 조상제례를 거부함으로써 발생한 신해박해를 이 시대의 상식으로 반성하면 종교 다원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 독선주의가 근본 원인이었다. 사실 신해박해는 그 근원을 따져보면 유교와 천주교간의 우월감이 빚어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청나라의 강희제는 조상제사를 하나의 유교적 관습 또는 종교적 성격이 없는 국민적 관습으로 보았다. 그러나 조선후기의 조상제사의례는 종교화 내지는 신앙화되었기 때문에 유교적 관행이나 국민관습의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그래서 조선의 천주교 신도들은 제사를 종교적인 문제로 인식하였고, 그들은 천주교로 개종한 까닭에 천주교 의식을 선택했던 것이다.

 

[평화신문, 2000년 6월 11일, 김진소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장), 정리=박주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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