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2-0122...주일...우리를 부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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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1-21 ㅣ No.1164

연중 3 주일(나해)

요나 3,1-5.10             1코린토 7,29-31             마르코 1,14-20

2011. 1. 22. 등촌3

주제 : 우리를 부르는 소리

설 준비 잘 하고 계시나요? 내일은 설날입니다. 설날에는 고향을 찾아서 왜 그렇게도 힘든 길을 떠나는 것일까요? 많은 분들이 고향을 향하여,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리며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 오늘 미사에 오신 분들 가운데는 다른 곳에서 명절 때가 되어 찾아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명절이 되면,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곳에 가는 것도 아니기는 합니다만, 고향에 가신 분들에게나 이곳을 찾아오신 분들에게나 모두 하느님의 축복 가운데 한 해를 시작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듣는 소리는 여러 가지입니다. 부르거나 찾는 소리, 나를 칭찬하거나 원망하는 소리를 포함하여, 우리가 듣는 소리는 다양합니다. 그런 소리들 가운데, 내가 좋은 반응을 보이는 소리는 어떤 것일까요? 어떤 소리를 들으면, 우리 마음에 기쁨이 생기고, 내 발걸음이 가벼워지며, 그렇게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될까요?

  오늘 복음에는 자기 일상생활에서 전문가 기질을 발휘하고 있던, 4명의 어부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어부로 만드시겠다고 부르시는 소리가 나옵니다. ‘그 어부의 그물을 내려놓고 나를 따르라, 그러면, 너희가 지금은 물고기를 잡느라고 애쓰는 사람이지만, 내가 사람을 낚는 사람이 되게 해 주마하는 의미로 4명의 제자를 부르십니다. 제가 해석한 것처럼 길게, 설명을 담아서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예수님만의 특별한 힘으로, 4명의 제자를 선택하시는 이야기를 우리는 들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과감하게 접어두고, 그렇게 들려오는 소리에 이론의 여지없이 따르겠습니까? 오늘 복음말씀에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만, 어부를 불렀고, 그들을 쫓아오게 한 예수님의 부르심과 가르침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은 보통 자기의 생각을 우선으로 해서 삽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참조하는 경우는 있어도, 소리를 들은 뒤, 내 삶을 접어두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초대한 대로 산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이런 사실이 있다거나 없다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신앙인으로 나선 삶은 어디까지나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 참 신기한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인으로 산다고 하면서, 개인의 생각을 고집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1독서에는 하느님의 말씀과 초대를 듣고도 자기 생각을 먼저 앞세웠던 사람, 요나의 얘기가 나옵니다. 오늘 요나예언서 3장의 말씀에는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살겠다고 돌아선 요나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1장과 2장에는 요나의 인간적인 갈등얘기가 나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도, 인간의 생각을 앞세웠던 요나가 겪었던 일은, 아주 큰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가 사흘 낮과 밤을 지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쨌는지는 우리가 알지는 못하지만, 예언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렇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놀라운 경험을 한 사람이 요나였지만, 그의 이름으로 된 예언서 4장을 읽어보면, 또 다시 사람의 생각에 빠지는 요나라는 사람의 삶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의 생각이 모두 다 잘못된 것이고, 모두 다 틀렸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것도 잘하는 일은 아닙니다. 다만 같은 시간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경험할 수는 없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이므로, 우리가 어느 쪽에 더 큰 중요성을 두고 행동하거나 어느 쪽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으로 사느냐는 것입니다. 이 소리는 내가 다른 사람의 경험을 얼마나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살겠느냐는 질문과 그에 따른 행동도 포함합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또 그 신앙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요나처럼 엄청나고도 곤란한(?) 일을 겪을 사람들이 될까요? 이 역시 질문은 하지만 대답이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세상을 한번쯤 다 살아본 다음에, 다시 그 삶을 살겠다는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 일이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 일이 가능하다면, 두 번째 삶은 실패도 하지 않을 것이고, 실망하는 결과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일은 이론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나 우리의 삶을 두 가지 서로 상대적인 것들 가운데서 선택일 것입니다. 코린토사람들에게 보낸 바오로사도의 편지에 나오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나와는 한 걸음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것처럼 그렇게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은 어떤 방법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설날을 앞두고, 가족과 친지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진정한 삶의 방법이 무엇이겠는지 한번 쯤 더 생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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