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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지구가 너무 더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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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8-23 ㅣ No.861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지구가 너무 더워요!

 

 

유학하던 시절 로마의 내 방을 생각 해 보면 지금 살고 있는 신학교의 사제관은 그야말로 호텔과 같다. 유학 시절 내가 쓰던 방에는 두 평 남짓한 공간에 책걸상 하나, 책장 하나, 옷장 하나가 전부였고, 화장실도 공동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여름이면 더위 때문에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가난한 유학생 신분에 에어컨 설치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작은 선풍기 하나를 침대 머리맡에 밤새 켜두고 잘 수밖에 없었다.

 

로마의 여름은 그야말로 푹푹 찌는 찜질방 같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7-8월이면 더운 여름 날씨를 피해 서늘한 지역으로 피서를 가기도 했지만 그것도 시간과 경비가 만만치 않아 여러 해 동안 로마에서 여름을 보내야만 했었다. 밤새 땀을 흘리며 자다 보면 베개가 다 흥건하게 젖어 새벽에 여러 차례 잠을 깨야 했지만 그래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8월이 되면 더위 때문에 정작 로마 시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휴가를 떠났는데, 내가 살던 수도원 역시 다르지 않았다. 수도원 식구들은 로마에 남아있지 않고 북쪽의 더 서늘한 지역으로 한 달간 여름휴가를 떠났다.

 

달리 갈 곳이 없었던 나는 원장신부님의 배려로 한 달간 혼자 수도원에서 자취를 하면서 수도원을 지켰다. 거리에는 더위를 피해 떠난 로마인들 대신 외국 관광객들만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나 역시 외국인으로서, 그렇지만 관광객이 아닌 유학생으로서 더위와 함께 살아야 했다.

 

 

온도가 많이 달랐던 신학교 안과 밖

 

돌아온 고향에서 내가 사는 환경은 훨씬 더 좋아졌다. 본당신부 시절 내가 살던 사제관은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거실과 침실 모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무리 더운 날씨라고 해도 에어컨을 틀어놓으면 긴 소매를 입어야 할 정도로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겉으로는 편리해지고 시원해졌지만 내 건강에는 그리 좋지 않은 것같아 에어컨을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다.

 

또한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이 일할 것 같았지만 실상은 로마에서 고생하던 시절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내 소임에 충실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과거에 고생하던 유학시절의 어려움을 점점 잊어버리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신학생 시절,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신학교에서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던 우리들은 교정의 온도가 학교 밖의 온도와 많이 다르다고 농담을 주고받곤 했었다.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대학로는 짧은 소매의 옷차림이 시작되지만 학교 안에서 우리들은 털실로 된 스웨터와 오리털 점퍼를 입고 있었다.

 

세상과 단절된 삶 속에서 살았던 우리들은 가끔씩 허락되던 외출시간이면 외출 복장이 기온과 맞지 않아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기도 했다. 사람들은 기온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지만 우리들은 세상의 따뜻함에 적응하지 못하고 신학교에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외출했던 것이다.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젊은이들 가운데 입고 있는 복장만 보더라도 신학생인 것이 너무 티 나던 그 시절에 우리들은 추위나 더위를 그냥 무작정 견디는 법을 배웠다. 그 방법은 추우면 옷을 껴입으면 되고, 더우면 찬물에 샤워하는 방법이었다. 더운 날씨에도 선풍기와 에어컨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그런 편리함을 알 수 없었다.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와도 집집마다 에어컨이 있는 집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은행이나 관공서 같은 곳에 볼일이 있어 가게 되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여름휴가는 돈 들여 다른 곳에 가기보다는 은행으로 가는 것이 최고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순번을 기다리며 앉아 있던 대기소파에서 내 순번이 조금 늦더라도 시원하니까 괜찮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는 한반도

 

날씨가 너무 더워졌다. 5월 말이면 벌써 여름을 느낄 수 있고 6월 중순이면 때 아닌 장마가 시작된다. 7월이면 푹푹 찌는 더위에 사람들이 에어컨과 선풍기를 찾기 시작하고 8월이면 무더위 때문에 외출을 꺼릴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 때문에 한반도의 기온이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동해안과 서해안에서 많이 잡히던 온대성 물고기들이 서서히 열대성 물고기들로 바뀌고 있고 제주도와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점점 열대성 과일들이 재배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한반도의 날씨가 더워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때 아닌 장맛비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나기도 하고, 이전에 비해 태풍이 더 자주 출몰하기도 한다. 언론에서도 지구 온난화 때문에 기상 이변이 자주 일어난다고 연일 보도한다. 국지성 호우가 자주 생겨나고 때 아닌 폭설이 내리기도 하여 교통체증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섬이라 그런지 비도 많고 바람도 많은 편이다. 강화도란 지리적 특색 때문에 도시에 비해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공기를 만날 수 있는 혜택도 있지만 이전에 비해 이곳의 날씨도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 방은 3층에 있고 서남향인데 한 여름이 되면 에어컨 없이는 거의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열대야 현상이 반복된다. 날아드는 풀벌레와 모기 때문에 창문도 제대로 열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에어컨을 밤새 틀고 잘 수도 없기 때문에 해마다 여름이면 잠 못 이루는 밤이 많다.

 

하루 종일 덥혀진 지붕에서 내려오는 복사열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고 더위를 참고 잠들기 힘들어 샤워를 하기도 하지만 더위를 이겨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도시에 비해 이곳 시골은 2-3도 가량 온도가 낮다고 말하는데 그야말로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에어컨이 없다면 과연 이 더운 여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한반도에서 사라져가는 봄 가을

 

지구의 온도가 너무 더워졌다고 말들 하지만 몸으로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의 기후를 보면 4계절이 뚜렷한 한반도란 사실이 무색해질 정도가 되었다. 가장 좋은 계절로 표현되는 봄과 풍성한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점점 줄어들고 그야말로 여름과 겨울밖에 없는 날씨로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인가 자연에 큰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국립기상연구소가 발간한 “기후변화 이해하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기후는 이전에 비해 많이 변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 책자에 따르면 한반도의 기후는 1910년대와 비교하여 2000년대에 이르러 여름이 19일 길어지고 겨울은 17일 짧아진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1910년대에 비하여 2000년대 봄과 여름의 시작일은 각각 11일 정도 빨라진 것으로 나타난 반면 가을과 겨울 시작일은 각각 8일과 6일 가량 늦춰짐으로써 여름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고 겨울이 짧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1912년부터 1921년까지의 봄은 평균 3월 17일에, 여름은 6월 9일에 시작됐으나 2000년부터 2010년에는 봄의 시작은 3월 6일로, 여름은 5월 29일로 각각 당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을과 겨울의 시작일 역시 1912년부터 1920년에는 각각 9월 20일과 11월 29일이었지만 2000년부터 2010년은 9월 28일과 12월 5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결국 한반도가 더 길고 무더운 여름 날씨와 짧지만 더 추운 겨울 날씨로 변화되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기상청의 조사에 따르면 기온 역시 해마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지난 99년 간(1912-2010년)의 기간 동안 10년마다 한반도의 기온은 0.18도 상승했으며 강수량 역시 10년마다 21.7mm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2000년대 이후 한반도는 관측 기록상 기온이 가장 높았고 강수량 증가 현상도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평상 위 할머니의 부채 바람을 기대하며

 

왜 이렇게 한반도의 기후가 변화되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후 변화가 인간들의 무분별한 자연 착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경제구조 안에서 환경의 보호는 그야말로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생태계의 보고인 아마존 열대우림은 전세계 동식물이 30% 가량 서식하고 있으며 세계 산소의 1/3을 공급해 주는 곳으로서 지구의 허파라 불리고 있지만, 인간의 이기적이고 개발 지향적인 밀림파괴로 일년에 약 1만 5천여㎢ 의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있다. 이러한 아마존 밀림의 벌채에 따라 세계 평균기온이 21세기 중반에는3-4도나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이 있고, 이러한 기후 변화 때문에 지구에 위기의 순간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더 편리한 삶을 위해 인간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인간은 경제적인 발전을 위해 전기를 요구하게 되고, 그러한 전기 에너지를 얻으려고 사용하는 여러 가지 제반 시설들(핵발전소, 수력발전소, 화력발전소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편리성에만 시선을 고정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삶에 이익이 되고 편리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그릇된 생각이 인간들로 하여금 정작 소중한 가치들을 잃게 한 것이다. 이처럼 상실된 인간의 가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류의 공동유산인 환경에 대한 관심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러한 환경을 보호하려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건전하고 건강한 환경을 보존할 인간의 책임을 강조”(“간추린 사회교리”, 465항) 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인간의 과학능력이 무분별하게 사용되어 인류 전체의 공동선을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는다면 결국 인간은 인류의 공동유산의 하나인 환경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 될 것이며 그 결과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날씨가 더우면 선풍기를 켜거나 에어컨을 틀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숨 쉬고 살아가는 이 지구를 식혀줄 만한 선풍기나 에어컨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과거의 불편했던 삶이 더 나은 것이라고 정의하기란 쉽지 않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갔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야말로 더 환경 친화적인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무더워진 여름,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 아래 평상 위에서 할머니의 부채 바람을 쐬며 낮잠을 청하던 어린 시절의 평화로움을 꿈꾸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인 것일까!

 

* 황창희 알베르토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1997년에 사제품을 받고, 로마 알폰소신학원에서 석사,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에서 사회교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 인천가톨릭대학교 교학처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8월호, 황창희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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