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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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복자 124위 열전52: 오종례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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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4 ㅣ No.1442

[복자 124위 열전] (52) 오종례 야고보


형의 배교에도 흔들리지 않은 복자



순교자 중 청소년 순교자는 그리 많지 않다. 손에 꼽을 정도다. 103위 중에도 14세에 순교한 유대철(베드로) 성인 등 4위가 있을 뿐이다. 124위 복자 가운데서도 12세를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봉금(아나스타시아) 을 제외하곤 청소년 순교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 복자 오종례.


오종례(야고보, 1821∼1840) 복자는 우리 나이로 20세지만, 1840년 1월 4일에 순교했으니 만으로 따지면 18세, 많아도 19세에 순교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때는 통상 남자가 16살이 되면 성인으로 인정해 호폐를 소지하고, 병역과 납세 부역의 의무를 졌지만 오늘날로 치면, 성년(19세)이 될까 말까 한 나이다. 이런 어린 나이에 오종례는 어떻게 순교의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을 안고 그의 삶으로 들어갔다.

오종례는 양반 출신이다. 1839년 기해박해 무렵이면, 조선 천주교회에서 양반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지는데, 그는 충청도 은진현, 지금의 충남 논산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에게서 교리를 배워 어려서부터 신앙을 실천했다고 전해진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기에 그는 한 천주교 교우의 집에서 자랐는데, 늘 순교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고 한다. 또한, 장성한 뒤로는 가족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이웃에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원래는 혼인에 대해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혼인하고 전라도 고산현, 지금의 전북 완주군에 살았다.

그의 삶은 이게 전부다. 다블뤼 주교의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이나 관변 기록이 없었다면 아마 시복도 어려웠을 터다. 124위 약전은 대부분 그가 박해자들에게 체포된 이후 문초와 형벌, 순교 사화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었기에 그의 성장기에 공백이 남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1839년 7월 전라도 진산현에 살고 있던 형을 만나러 갔다가 체포됐다. 형과 다른 교우 여럿과 함께였다. 전주 관아로 끌려간 그는 전주 영장에게 문초와 함께 혹독한 형벌을 받게 됐다. 하지만 그를 본 영장이 “너는 아직 어리니 다시는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 하면 풀어주겠다”고 하자 그는 “천주님을 섬기는 행복을 알고 있는데, 어찌 형벌이 두려워 천주님을 배반하겠냐?” 반문하며 배교를 거부한다.

이에 달콤한 말로는 그를 배교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영장은 즉시 포졸들에게 고문하라고 지시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두 번째 신문에선 배교한 뒤 석방된 형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으나 형의 배교에 슬퍼하면서도 그는 그것에 동요되지 않았다. 또 수차례 매를 맞고 주뢰형과 곤장형을 당하며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그는 하느님 은총에 힘입어 끝까지 고통을 견뎌내고 신앙을 고백했으며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의 수감 기간은 5개월이 좀 넘는데, 그는 굶주림으로 큰 고통을 받았고 마침내는 전주 형장으로 끌려가 홍재영(프로타시오)과 이 막달레나, 최조이(바르바라) 등과 함께 참수를 당했다.

「일성록」에 남겨진 그의 결안(結案), 곧 사형선고문에는 이같이 적혀 있다. “그는 아주 어려서부터 천주교에 빠져 가족들에게 교리를 가르쳤고 이웃에게도 전교했습니다. 또 입으로 십계를 외우며 조상의 가르침을 버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섯 차례에 걸쳐 문초를 받으면서도 마음에 아주 큰 기쁨이 있다고 했으니 이처럼 요망한 괴물을 청명한 세상에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이같은 사형선고문에서 드러나듯 오종례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1테살 5,16)라는 말씀을 삶으로 실천한 ‘기쁨의 복자’였다.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이었기에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기쁨에 찬 삶을 살 수 있었고, 끝내는 어린 나이에 참수라는 가혹한 형벌을 이겨내며 순교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인간이기에 인간적 기쁨이나 슬픔, 좌절 등에서 벗어날 수야 없겠지만, 그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중심으로 살았기에 순교조차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주님께 환호하며 구원의 바위 앞에서 환성을 지르는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었다.

[평화신문, 2015년 3월 15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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