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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제역 재난의 문화적 토양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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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5-01 ㅣ No.828

[경향 돋보기 - 그리스도인의 시각으로 본 구제역 사태] 구제역 재난의 문화적 토양에 대한 성찰

 

 

구제역 재난의 실태와 사회문제

 

지난해 11월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해를 넘긴 지난 3월 초까지 맹위를 떨치면서 100일을 넘겼고, 이에 따라 한국 축산업은 거의 초토화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전국에서 350만 마리에 육박하는 소와 돼지가 살처분을 당했고, 이것을 매몰한 지역은 4,435곳에 이르렀으며, 피해 농장은 무려 6,116곳에 달했다. 2010년에 집계된 소와 돼지의 사육 두수가 1,323만 마리였는데, 이 가운데 지금까지 26% 이상이 죽게 된 것이므로 ‘축산농정의 초토화’ 또는 ‘전면적 실패’라는 말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아직 그 원인을 명확히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대책 또한 상반된 입장으로 엇갈리고 있어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가축 전염병을 전담하는 부서와 기구는 농수산식품부와 그 산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구제역의 상시 발생국인 베트남에 다녀온 안동의 한 농장주를 국내 바이러스 전파의 최초 원인 제공자로 지목했고 지금도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농장주와 베트남에 함께 다녀온 안동의 또 다른 농장주의 농장은 지금도 184마리의 소를 사육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정부의 원인 규명에 의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30일에 구제역의 국제표준연구소인 영국의 퍼브라이트 연구소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안동발 구제역 바이러스는 베트남의 유형보다 오히려 홍콩과 일본, 우리나라의 강화에서 발생한 것에 매우 가깝다. 퍼브라이트 연구소 발표에 따를 경우, 2010년 구제역 파동은 국내 바이러스의 변종에서 야기된 것이고, 이것은 가축을 사육하는 국내의 축산농정 방식이 구조적인 문제를 잉태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할 것이다.

 

구제역 재난으로 전국의 축산농가가 많은 수의 가축을 잃게 되었으니 실로 커다란 경제적 손해를 입었다. 가축 손실에 따른 보상과 방역을 위한 제반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이미 수조 원에 해당하는 재원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사태가 향후에도 반복해서 발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외적인 문제 역시 소홀히 여길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구제역 파동이 남긴 경제 이외의 문제로 환경재난을 꼽을 수 있다. 4천 곳이 넘는 매몰지에서 사체 부패에 따른 침출수가 지하수를 오염시킬 것이고, 또 하천 인근 지역도 포함되어 있어서 하천과 상수도 수원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천 인근 매몰지 주변에 콘크리트 장벽을 칠 예정이라고 하니 불필요한 환경 저해시설이 또 늘어나는 셈이다.

 

또 다른 문제로 집단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생명 학살을 행하거나 목격하면서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 장애를 들 수 있다. 한 번에 수백 마리 이상의 소와 돼지 등을 산 채로 묻게 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는데,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태 전개에 비추어볼 때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정상적으로는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행한 것이다.

 

동물은 종족 번식의 유전적 성향으로 새끼와 가족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야 말할 더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내 새끼를 애틋하게 여기는 정서 상태가 감정이입으로 다른 존재에게로 향하면서 동정심을 갖게 했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인(仁)의 단초임을 말한 바 있듯이 인간이 갖는 동정심은 좁게 인간 종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고통을 느끼거나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구태여 ‘불살생’을 외치는 불교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어떤 보편종교도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소의 눈가에 맺히는 눈물만으로도 애석해 하는 편인데 하물며 집단으로 울부짖는 가축의 소리를 아무 일도 아닌 듯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일에 종사하거나 연루된 공무원과 수의사 등은 물론 자식처럼 가축을 키운 농민들이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향후 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고통을 겪을 동물에 대한 헤아림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구제역 사태는 집단 살처분을 대규모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현대인에게 또 달리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로 입게 된 경제적 손실과 지하수 오염, 살처분에 동원된 사람들의 정신적 장애 등은 모두 인간사일 뿐이다. 이제는 인간 사회의 지평을 넘어 정작 영문도 모른 채 인간 때문에 산 채로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동물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줄 아는 도량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서양의 주류 세계관은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을 촉진했다. 예컨대 근세의 사상가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적 신체가 서로 별개의 존재론적 영역을 차지하는 실체이고, 물질로 구성된 자연에는 기계론적 법칙이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의 사상가 베이컨은 인간이 자연의 온갖 심술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할뿐만 아니라 자연에 영광스러운 인간의 제국을 구축하려면 그것에 기계장치를 들이대고 압박하여 그 비밀을 낱낱이 실토하게 하는 등 자연에 대한 지식이 힘이라고 역설하였다.

 

자연 정복의 세계관은 산업화 이후 축산농정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가축을 기업형 축산업으로 사육하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와 돼지 등은 컨베이어 벨트 위의 자동차 부품처럼 다루어졌다.

 

그런데 정말로 가축은 기계부품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분명히 아는 바다. 가령 우리가 이성을 중시하면서도 그것과 연루된 감성, 더 나아가 생태적 영성을 함께 수용할 자세를 갖추게 된다면, 기계론적 법칙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새로운 문화적 지평에서는 생명을 존중하고 동물의 복지에도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윤리의 영역에서 동물을 도덕적으로 고려하는 접근이 여러 갈래로 출현했다. 공리주의자 피터 싱어는 최대 다수에게 고통 대비 즐거움을 늘리도록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인데,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으므로 이것에서 벗어나도록 ‘동물 해방’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칸트적 의무론의 계열에 있는 레간은 고유한 생활을 가진 동물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을 도덕적 권리를 가지므로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여겼다. 가장 선명한 이들 접근에 따르면, 동물을 축사에서 해방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전면적 채식주의를 채택하는 문화적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생태주의 윤리나 동아시아 문화는 동물에 대해 다소 다른 접근을 취한다. 생태주의의 순환적 자연관에 따르면, 대지와 물 등의 물리적 여건과 녹색식물, 초식과 육식동물, 잡식하는 인간 그리고 박테리아 등 미생물은 수직 계열이 아니라 원형을 이루는 먹이사슬 체계의 구성부분으로서 각각 생명의 토양과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의 고유 기능을 수행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초식동물은 풀을 뜯어먹으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이들이 생애를 마감하면, 죽어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되어 토양으로 돌아가고, 다시 풀과 수목의 거름이 된다.

 

인간 역시 생존을 위해 곡식과 식물을 취하지만 필요할 경우 육식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현대인은 가능한 한 채식의 비중을 높일수록 좋다. 그러나 채식주의를 반드시 고집할 이유는 없다. 동아시아의 자연관은 기(氣)의 이합집산으로 만물이 탄생하고 소멸한다고 본다. 인간은 평소 공기를 호흡하면서 살지만 허기가 지면 곡기로 채우고, 부족할 경우 육기를 취하기도 한다. 물론 수명이 다하면 죽어서 신체를 자연으로 되돌려줌으로써 기의 순환에 기여한다.

 

생태주의와 동아시아의 자연관은 핵심 관건을 먹이사슬 체계의 유지와 생기의 원활한 흐름, 생명 에너지의 선순환에 둔다. 그런데 산업사회의 기업형 축산은 이를 깨뜨리는 처사이므로 다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본다. 이런 입장은 합리적 태도를 견지하지만 감성과 영성적 접근도 함께 취하기 때문에 가축의 복지를 관계 선상에서 알맞게 고려한다. 살처분을 당해야 하는 동물의 고통과 애환에 능동적으로 반응하여 그 여건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

 

 

구제역 파동의 근원적 토양과 축산농정의 성찰

 

이번 구제역 파동은 과거에 발생했고 또 향후에도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축산업의 문제이다. 산업사회의 축산업은 비용 대비 이익 분석을 강력하게 내세운다. 상품 경쟁력을 확보하고 순이익을 극대화하고자 기업형 축산의 대량 사육체계를 구축한다. 사육 두수가 최소 수백에서 수천에 이른다.

 

기업형 축산에서 동물은 컨베이어 시스템의 기계부품처럼 다루어진다. 질식할 정도의 열악한 여건에서 크는 탓에 온갖 질병에 취약하다. 이에 가축의 사료에 항생제를 배합하여 주게 되는데, 이것은 작은 질병에는 노출되지 않도록 하지만 자연적인 면역체계의 약화로 이어진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진화한다. 그래서 항생제 내성을 지닌 강인한 것으로 변신하여 가축과 인간에게 다가온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보통 수준에 불과하지만 가축에게는 다분히 위력적이다.

 

사람 역시 온갖 질병에 노출된다. 이때 도를 넘는 질환에 대해서는 현대의학에 의존하면 되지만, 감내 가능한 것은 자연적으로 이겨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몸이 으슬으슬하게 추운 초기 감기에는 차가운 한기가 침입하는 상태이므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생강에 대추를 넣어 끓인 탕을 마시면서 몸을 보하고 땀을 내주면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다. 그리고 감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열이 오르는 상황에서는 폐의 진액을 보충하고 열을 내려주는 찬 성질의 도라지나 금은화 등을 적절하게 다려 마시면 역시 이겨낼 수 있다. 비록 며칠을 앓게 되더라도 이렇게 조치하면 스스로의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 반면 감기약과 항생제를 번번이 복용하게 되면 빨리 낳을 수는 있지만, 점차 몸의 질병 대응 능력은 취약해진다.

 

동물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다. 소든 돼지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고 각 동물의 식성에 따른 먹이를 제공하면 튼튼하게 클 수 있고, 이에 따라 각종 병충해에도 상당히 이겨낼 수 있는 자연 면역력을 갖추게 된다. 불가피하게 특정 바이러스에 노출되어서 일부가 희생당하더라도 이를 이겨내는 것이 있고 그런 가축의 후세대는 획득 면역력도 구비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집단 살처분 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부가 감염되었다고 해서 그 지역 전체 가축을 집단 살처분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잃는 것은 잃되 남는 것은 이겨내도록 유도해야 한다.

 

축산업에 치명타를 날린 이번 구제역 사태는 가축의 건강한 생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삼고 있는 산업자본주의 축산업의 문화적 토양에서 발생한 재난이다. 따라서 가축을 대하는 방식에 구조적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비슷한 유형의 재난은 앞으로도 닥칠 것이다.

 

구제역 재난은 한국 농축산업 정책의 실패를 뜻한다. 이번의 경우 초기 대처를 잘못했고 또 대응 매뉴얼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살처분 정책 자체도 문제였다. 집단 살처분을 고집한 것은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목적에서다. 실제로는 구제역이 나도는데, 왜 그런 지위를 유지해야 할까? 한마디로 축산물을 외국으로 수출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소규모 축산농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 기업형 축산업계를 위한 것일 뿐이다. FTA 체결을 준비하던 노무현 정부가 소농 중심의 정책을 수출형 기업농 중심으로 바꾸면서 사태가 악화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고, 현 정부는 그것을 답습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값싼 축산물은 환경보건학적으로 건강에 나쁘다. 대부분은 유전자 조작 곡물을 먹인 것이거나 옥수수 사료로 키운 것들이다. 유전자 조작 작물은 잠재적으로 해로울 수 있고, 옥수수 사료는 몸에 나쁜 오메가-6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해서 심장병과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과 암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반해 전통적으로 해왔듯이 농가에서 작은 규모로 소와 돼지, 닭을 키우면서 가능한 한 목초를 먹이거나 아니면 발효 처리가 된 복합 사료를 준다면 가축은 어지간한 질병에는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생산된 육류는 인간의 건강에도 이롭고 수입산에 비해 다소 비싸더라도 좋은 품질로 호평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여건에서 자라는 가축은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 최소한의 복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작은 규모로 분산해서 펼치는 유기농 축산은 우리가 택해야 할 현명한 방도이다.

 

* 한면희 프란치스코 - 환경윤리 분야 철학박사로 H·C 자연학교 학장, 한국환경철학회 회장이다. 녹색대 교수와 대표, 전북대 교수, 그리고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초록문명론”, “미래세대와 생태윤리”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경향잡지, 2011년 4월호, 한면희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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