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시복시성] 교황님 방한과 124위 순교자 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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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25 ㅣ No.1456

[특별 연재] 이 시대, 순교신심에서 길을 찾다


교황님 방한과 124위 순교자 시복



삶의 푯대를 상실한 현대인들은 인문학, 심리학, 과학의 문을 서성이며 길을 찾고 있다. 여기, 한평생 순교신심을 연구해온 손골성지 윤민구 신부는 신앙의 유산이 담긴 순교신심에서 삶의 방향키를 찾아 우리에게 들려준다. 올해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이 이뤄진 기쁨의 해이다. 오는 8월 교황 방한과 함께 뜻깊은 124위의 시복식이 이뤄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우리나라 방문은 천주교 신자들에게뿐 아니라 한민족 모두에게 매우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방문기간 중 8월 16일에 한국천주교회가 요청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諡福)식을 거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격스럽고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천주교회는 1997년 주교회의 추계 총회에서 박해시대 순교자 중 103위 성인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순교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지역에서 현양되던 분들을 포함하여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통합 추진하기로 하였다. 2001년 주교회의는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국내 예비 심사를 마무리한 뒤, 2009년 5월 20일 시복 조사 문서를 교황청 시성성에 정식 접수하였다. 그리고 교황청은 이 서류를 검토한 후 시복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124위 순교자 중에는 신유박해 순교자가 53위로 가장 많고, 기해박해 전후 순교자 37위, 병인박해 순교자 20위, 신유박해 이전 순교자 14위가 포함되어 있다.

금년은 103위 우리나라 성인들이 탄생한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84년 5월 6일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울 여의도에서 한국의 103위 순교자들을 시성하였다. 이런 뜻깊은 해에 한국천주교회는 124위 시복이라는 순교자 현양에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게 되었다. 더욱이 순교자들의 시복수속과정을 한국인 스스로 담당하여 이런 결과를 얻었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 그 자체로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거행될 시복식을 앞두고 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먼저 “모든 성인의 통공”과 “성인공경”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천주교회에서는 성인들을 공경한다. 그래서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개신교 신자들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인공경은 개신교 신자들도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나오는 “모든 성인의 통공”에 근거를 두고 있다.

모든 성인의 통공이란 하느님을 믿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서로 하나를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각 구성원들은 서로 영적인 선물을 나누게 된다는 뜻이다. 구성원들 중에는 지상에 살고 있는 이들도 있고 천국에 있는 이들도 있으며 연옥에 있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어디에 있든 그리스도와 함께 한 몸을 이룰 때 서로 영적인 교류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신교에서는 살아있을 때는 일치를 이루지만 숨이 끊어지면 일치가 끊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개신교에서는 성인들도 공경하지 않고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천주교회에서는 육체적으로 살아 숨을 쉬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에 가서 살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일치를 이룬다고 믿는다. 그래서 천상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을 흠숭하고 찬미하면서 그들과 결합하고, 성인들을 공경하며 전구를 청한다. 또한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희생을 봉헌하며 그들을 대신하여 선행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천주교의 성인공경의 근거는 바로 이러한 모든 성인의 통공에 있다.

천주교회에서는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상호간의 통공”이나 “죽은 이들에 대한 공경”에 대해서는 어떤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나 동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도를 부탁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기도를 부탁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누가 자신의 부모가 훌륭한 신앙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 지금은 천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리라 믿으면서 부모에게 자신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해 달라고 청하는 것을 교회가 뭐라 하지 않는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어도 하느님 안에서는 살아있기 때문에 부모가 살아있을 때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공적인 차원일 때는 다르다. 교회가 누군가를 공적으로 공경할 때는 대상에 대한 조사를 하여 공경할 자와 아닌 자를 구별한다. 신자들이 순교자나 신앙적으로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하였던 증거자들을 공경하고 본받으려고 할 때 그것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를 조사하고 심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옳고 타당하다고 확인되면 그들을 공적으로 공경하고 본받을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선포하게 된다. 이것을 일반적인 의미에서 시복시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천주교회 초기에는 시복시성이라는 제도가 없었다. 성모님과 사도들을 자연스레 공경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성모님과 사도들 외에도 순교자들을 공경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성인공경의 시작이다. 순교자들은 그리스도를 가장 가깝게 닮은 삶을 살았고 또한 죽음까지도 그리스도를 닮았기 때문에 그들을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모범이 된다고 생각하여 존경하며 본받으려 하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 순교자들이 가장 강력한 전구자(轉求者)가 되리라고 믿고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시작하여 공적으로도 자연스럽게 공경하였다.

그러다 로마시대 박해가 끝나자 신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고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國敎)로 공인받게 되었다. 박해가 없으니 더 이상의 순교자는 없게 되었다. 그런데 원래 순교는 참된 신앙생활의 결실이다. 그리고 박해가 끝나 순교자는 없더라도 교회 안에 순교자들과 버금가는 훌륭한 신앙인들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살아있을 때도 많은 존경과 사랑을 보냈지만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들을 따르고 공경하며 본받으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때로는 이들의 행적이 과장되거나 변질되어 소개되는 위험이 뒤따르게 되었다. 그래서 주교가 그들에 대한 평판의 진위 여부를 가리게 되었고 주교는 조사 결과에 따라 공적으로 그들을 공경해도 좋다는 선언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시복시성이라는 제도가 생긴 이유이며 그 첫 과정이었다. 즉 일종의 관행상의 통일을 이룬 것이다.

처음에는 시성을 지역주교가 맡아서 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교황에게 승인을 구하기도 하였고 또한 교황을 초청하여 시성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교황청에서 시성을 담당하게 되었고 시성과 관련된 절차가 제도화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시복이 생겨났고 시성 전에 먼저 시복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시복시성이 되어 복자나 성인이 되어야 비로소 공적으로 공경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시복된 복자는 해당 지역교회에서 공경하고 성인은 전체 교회에서 공경하게 되었다.

원래 시복과 시성은 복자나 성인이 되는 당사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분들은 이 세상을 떠나 이미 하느님의 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계신 분들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분들에게 복자나 성인이라는 칭호를 수여한다고 하여 그분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단지 살아있는 사람들이 복자나 성인들을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척도라고 생각하여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본받으려할 때 그 사람의 생각과 삶이 바뀌어 결국 하느님이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이기에 교회가 순교자나 훌륭한 증거자를 뽑아 시복시성을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시복시성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시복을 추진하면서 교구를 따지지 않고 통합해서 하기로 하였다. 원래 법적으로는 후보자가 죽은 지역을 담당하는 교구장이 시복을 추진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순교자들이 박해를 피해 여러 곳을 다니며 생활하고 활동하였다. 그러니 순교한 장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순교자 한 사람이 여러 교구와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복을 통합하여 추진한 것이다. 사실 복자가 되면 더 이상 교구가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공경하는 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수원교구와 관련이 있는 복자들뿐만 아니라 124위 모두에게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공경해야 할 것이다.

* 윤민구 도미니코 신부 - 1975년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탈리아 로마에 유학하여 1983년 라떼란대학교에서 사목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3년까지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하였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차장으로 일하였고 안성 대천동, 성남 수진동, 이천, 분당 야탑동성당 주임신부를 지낸 후 현재 손골성지 전담신부를 맡고 있다.

[외침, 2014년 5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윤민구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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