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2014-1224.....성탄전날.....밤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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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12-24 ㅣ No.1665

성탄대축일 전야[1224] - 성탄전날 밤미사

이사야 9,1-6       티토 2,11-14       루카 2,1-14

2014. 12. 24. (). 20:00. 이태원

주제 : 세상을 움직이시는 하느님의 의도

우리는 오늘밤, 예수님의 성탄을 기념하는 예절을 재현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기쁜 날이라고는 하는데, 우리가 정말로 기뻐해야 하는 날일까요? 아니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싫지만 남들이 하는 것이니까 똑같이 해야 할까요?

 

내가 기꺼운 마음으로 하거나 또는 즐겁지 않은 마음과 생각으로 이 시간을 맞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입니다. 나는 이 예절시간에 시큰둥하게 있는데 다른 사람은 이 예절에 함께 하면서 특별한 감흥이 있다면, 무인도의 어느 섬에 혼자 있는 것이 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즐거워하면서 함께 어울리는 섬에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림절 기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세상에 찾아오시기를 기다렸을 그 시간을 잘 지낸 사람이라야 심각해지지 않고, 기쁨을 준비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이 될 놀라운 소식이라고 해서, 개인의 삶에도 그 일이 놀랍고도 기쁜 일로 다가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만들어진 결과가 인류에게, 또 신앙인들에게 기쁨을 가져오는 일이 되기는 했지만, 시대를 거슬러서 생각해보면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 아버지 요셉에게도 우리가 지금 맞이하는 이 예절과 같은 기쁨의 일이었을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자세와 하느님의 의도가 다르다는 소리로만 알아듣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모르는 다른 요소가 내가 하는 일에도 함께 할 수 있다면, 내가 안다고 하는 내 생활도 항상 올바른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좀 어려운가요? 좀 더 쉬운 말로 고치면,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요소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토 황제의 칙령에 따라, 선조들의 본향인 베들레헴으로 올라갔던 요셉과 마리아의 눈앞에 펼쳐진 일은 당황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조상의 후손들이 이렇게 많았었나?’하고 놀라는 것은 다른 문제로 생각하더라도, 그들이 현실에서 부딪힌 문제에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고도 서글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배속에 든 아기, 하느님의 아드님이 태어날 상황을 이렇게 만든 하느님의 능력을 의심스럽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모든 것을 한 눈에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세상에 하실 때, 사람들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사람들의 동의(同意)를 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간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그저 순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도,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는 아주 놀라운 말로 포장하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으뜸으로 잘못 생각하기에 나타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감은 좋은 일이지만, 문제가 없을 때라야 진정으로 좋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또 그것을 안다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사람은 얼마나 협조하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가정으로 질문하면,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베들레헴이 보여준 현실에 놀랐고, 어렵사리 아기가 태어날 장소로 구한 곳이 동물들의 거주지였다는 것은 그 부모를 또 한 번 놀라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장소에 하느님께서 세상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놀라운 일이 또 한 가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동물들이 밤을 지내며 이슬을 피하던 곳의 바깥이었던 산 비탈길과 맑은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을 마구간 안에 있던 마리아와 요셉이 어떻게 깨달았을지는 모르지만, 밖에서는 놀라운 일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에 나타난 천사들이 목자들을 설득하여 새로 태어난 아기를 찾아가도록 했는가하면, 하늘에서는 천사들의 악대가 나타나 노래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사들이 불렀다는 노래를 우리는 앞서 대영광송으로 함께 노래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하시는 모든 일을 깨닫지 못하는 우리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몇 가지가 되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어, 우리가 모르는 일이라도 당신의 뜻을 따라 행하실 하느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방법이 첫 번째 일 것이고, 내가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는 일은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과감히 물리치고 오로지 사람인 내가 하는 생각과 결정이 옳다고 우기면서 하느님도 내 뜻을 따라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긍정이나 부정의 자세뿐입니다.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은 첫 번째 독서말씀으로 들은 이사야예언서에도 나옵니다. 도저히 현실이 될 것 같지 않은 얘기가 지금부터 3000년 가까운 시간 전에도 울렸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예언자가 외친 그 소리가 언제 실현됐는지, 그 소리가 언제 실현될 거라고 말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 내용을 이사야예언자도 말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굳이 얘기한다면, 그 언젠가가 정답일 것입니다. 저도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기 때문에 말씀드릴 내용은 없습니다. ‘그 언제라는 것은 바로 다음시간일 수도 있고, 여러분이 삶을 마치고 하느님을 만나게 될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시 찾아오신 의미,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시 찾아오셨다고 전례에서 기억하는 의미가 우리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시간입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으로서 당신의 고귀한 품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것이라고 고집피우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고 실행하셨습니다. 그 하느님께서 세우신 모든 계획을 우리가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알고 이해하는 바가 하느님의 계획에 일치하기를 바라면서, 또한 우리가 작은 힘이나마 거기에 보탬이 되는 자세를 갖추게 해주시라고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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