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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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2014-1130.....대림 제1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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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11-29 ㅣ No.1648

대림 제1주일(나해)

이사 63,16-17.19; 64,2-7      1코린 1,3-9       마르코 13,33-37

2014. 11. 30.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을 만나는 때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달력으로는 12, 한 달이 더 남았습니다만, 전례에서는 대림절미사를 봉헌하는 특전미사부터 새로운 한해의 시작이라고 구별합니다. 시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참으로 묘합니다. 한 해를 시작해서 한 달 동안은 시작하는 때라고 다짐을 세울 것을 말하고, 한 해를 마치기 한 달 전쯤부터는 송년(送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계획을 세우던 때와는 다른 것을 강조합니다.

 

신앙에서는 오늘부터 시작하는 한 해의 시간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고 말하지만, 세상에서는 그 시간을 대하는 자세에 사람이 들인 노력은 없이 저절로 생겼다는 판단도 말할 것입니다. 같은 것이면서도 평가하는 자세가 다르다면, 사람의 태도는 당연히 다를 것이고, 그에 따라서 사람의 삶에 생기게 될 결실도 그 모양이 다를 것입니다.

 

오늘 미사에 오신 여러분은 같은 시간에 대여 신앙의 해석을 따르겠습니까 아니면 저절로 생긴 것이니, 내 맘대로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좋다는 세상의 해석을 따르겠습니까? 한쪽 편을 강요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판단은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은 대림 제1주일입니다.

전례에서 성탄을 앞두고 지내는 대림절 기간은 날짜가 아니라, 주일로 계산해서 4주간입니다. 그 시간이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줄여서 반영했다며 4천년의 시간을 뜻한다고도 합니다만, 4번의 주일을 지내고 나서 우리는 성탄절을 기념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신 놀라운 일을 준비하는 대림절 시기는 우리에게 즐겁고 희망을 말하는 시기일까요? 아니면 두렵고 피하고 싶은 순간의 연속이겠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인 성탄절을 두렵고 피해야 할 때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쁜 성탄절을 준비하는 대림절시기도 똑같이 활기차고 희망을 말하는 때라고 말할 사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들이 기뻐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들어있지 않다면, 지금까지 감사드리며 즐거운 자세로 지내는 것이 대림절시기를 지내는 올바른 자세라는 것을 몰랐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때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저는 조금 전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했습니다만, 오늘 주일에 들은 복음말씀은 그렇게 희망을 담은 얘기만 전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이야기의 배경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무섭고도 두려운 것을 이야기하는 분위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외출을 나갔던 주인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문지기도 제자리에 없고 돌아오는 주인을 맞이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주인이라는 사람은 당연히 화를 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맞이할 시간이라고 예상하거나 만남을 기대하는 순간이 그런 때와 같은 모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이런 순간에 남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놀랍고도 다급한 순간에 행동하는 방법은 남들의 얘기를 듣고서 그 얘기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미리 예상하고 준비했던 대로 상식으로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이 복음서에서 들은 것처럼 두렵고 무서운 때가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질문을 했으니 답을 찾아야 할 일이겠지만, 그 질문을 들은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겠습니까? 그 이유의 하나라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처럼, ‘세상을 너무나 많이 사랑한 탓이고, 그 세상 안에 있는 것들에만 우리가 마음과 정신을 빼앗겨서 그렇다는 것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현실과 다른 자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예언자는 현실을 보면서 한탄했습니다. 사람들과 세상의 모습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져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들은 오늘 이사야예언서의 말씀에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이유와 책임을 하느님에게 돌리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17) 주님, 어찌하여 저희를 당신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희 마음이 굳어져 당신을 경외할 줄 모르게 만드십니까? 우리말은 이렇게 돼 있습니다만, 잘못 알아들으면, 우리가 잘못되는 탓이 모두 하느님에게 있는 것으로 해석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사람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헤매고 하느님을 두려워하여 우리의 마음이 딱딱해지는 것이 하느님의 탓일까요?

 

오늘 들은 독서에 나온 표현대로, 하느님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했을 때, 하느님이 얻을 이익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배반하고 돌아서는 일이 하느님에게 무슨 이익이 생기고 어떤 도움이 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사람이 자기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 하느님께 탓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허도 그 책임을 하느님의 책임으로 돌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오로사도는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코린토에 있던 교회공동체 사람들에게 내리기를 기원했습니다. 신앙에서 가르치는 대로 이러한 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하느님에 대해서도 바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무엇을 돌려받기를 원하시는지를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대림절,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누가 옳은 길을 알려주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겠다는 그 때가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 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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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3,17: Why, Yahweh, do you let us wander(헤매다) from your ways and let our hearts grow(자라다) too hard to fear(두려워하다)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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