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2014-1125.....연중 제3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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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11-25 ㅣ No.1644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 짝수 해

묵시록 14,14-19        루카 21,5-11

2014. 11. 25. 이태원

주제 : 사람이 말하는 두려움이란?

사람들은 두려움을 말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환경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왜 두려워하느냐?’고 물으면 그 대답이 어떨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범위가 큰 것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개인의 답을 하는 질문으로 바꾸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느 때에 두려움을 느끼는가?’하고 말입니다. 사람은 언제 두려움을 느낄까요?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다고 느낄 사람은 잃어버릴 것을 걱정할 두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또 가진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대하는 사람이라는 그 사람 또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만 말해놓고 공통점을 찾는다면, 결국 사람이 말하는 두려움이란 가진 것을 잃는데서 생기는 것이거나,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내 것이라고 우기거나 생각하는데서 생기는 것일 겁니다. 아니라면, 또 다른 대답이 있을까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성전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에게 그 성전이 지금 보는 것과 다른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데서 생기는 두려움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서 감탄하고 있는데, 그것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예수님이 곱게 보였을 리 없습니다. 당연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인데, 그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그들과는 더 이상 아무런 얘기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하는 예수님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면 그럴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고, 내 삶에는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을 그들이 잘못된 것일까요?

 

두려움이란 언제 생기겠습니까? 내 삶에는 당연히 좋은 일과 내가 만족할 일만 생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 또한 두려움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진실을 말하자면, 잘못될 가능성이 생기지 않게 살면 되는데,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거나 이론에서만 가능한 얘기일까요?

 

하느님의 심판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날은 두려운 날일까요? 우리가 세상에 사람으로 살고 있으니, 즐겁고 반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 일을 무조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자세라면 내게 생길 수 있는 좋은 일이 과연 무엇인지도 살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날, 과연 그 순간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겠습니까? 두려운 마음일까요?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까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날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하겠는지, 지금부터라도 좋은 마음과 생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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