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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28: 6세기 (3)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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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11 ㅣ No.956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28) 6세기 ③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영성


전례 개혁 이끈 최초의 수도원 출신 교황

 

 

- 그레고리우스 1세.

 

 

고대에서 중세로의 전환기에 영성 생활을 포함하여 다방면에서 서방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PP. I, 540경~604)입니다. 역대 교황 중에서 교황 레오 1세(Leo PP. I, 4세기 말~461)와 교황 그레고리우스 두 분만이 대(大)교황으로 불립니다. 또한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39~397),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347/48~419/20),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와 함께 서방 교회 4대 교부로 꼽히는 서방 교회 마지막 교부였습니다. 젊은 시절에 수도 생활을 실천했던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교황 재임 시에도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졌으며, 수도자들을 북유럽 선교를 위한 선교사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첫 번째 수도자 출신 교황

 

부유한 로마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그레고리우스는 유년 시절에 잠시 시칠리아 섬에서 지낸 덕분에 동고트 왕국 말엽에 이탈리아 본토에서 발생했던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동로마 제국이 다시 이탈리아 지역을 통치하게 되자 그레고리우스는 로마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부친의 권유로 570년에 정계에 입문하고 573년경에 로마 지방 장관에 임명되었습니다. 575년쯤 그레고리우스는 세속 생활을 청산하고 로마 첼리오(Celio) 언덕에 있는 가문의 대저택을 수도원으로 개조하고 몇몇 지인들과 함께 평수사로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는 시칠리아 섬에도 6개의 수도원을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568년에 이탈리아에 설립된 랑고바르드 왕국에서 2대 왕이 죽은 574년부터 3대 왕이 즉위하는 584년까지 10여 년간 랑고바르드족 군주들이 왕국의 권력을 서로 나누어 가짐으로써 이탈리아 반도는 혼돈과 폭력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577년에 랑고바르드족이 몬테카시노 지역을 공격하자 베네딕투스회 몬테카시노 수도원이 파괴되고 수도자들은 그레고리우스의 수도원에서 불과 2㎞ 정도 떨어진 곳으로 피난 왔습니다. 이때 그레고리우스는 베네딕투스회 수도자들과 친분을 쌓았지만, 당장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578년에 교황 베네딕투스 1세(Benedictus PP. I, 재임 575~579)는 그레고리우스에게 부제품을 주었고, 579년에 교황 펠라기우스 2세(Pelagius PP. II, 재임 579~590)는 그레고리우스를 교황 대사로 임명해 동로마 제국으로 파견했습니다. 교황 대사 시절 그레고리우스의 임무 중에 하나는 랑고바르드족의 침략으로부터 서방 교회를 보호할 군대 파견 요청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도 540년부터 페르시아 사산 왕조와 계속된 전투 때문에 여력이 없어서, 584년에 동로마 황제 마우리키우스(Mauricius, 539경~602)는 교황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수도 생활을 실천했으며, 586년에 로마로 귀환하자 바로 자신의 수도원으로 돌아가 수도원장 직분을 맡았습니다. 590년에 로마에서 전염병이 돌아 교황 펠라기우스 2세가 선종하자, 서방 교회는 그레고리우스를 차기 교황으로 추대하여 선출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최초의 수도자 출신 교황이 되었습니다.

 

카를로 사라체니 작 ‘성령의 영감으로 저술하는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

 

 

활동 생활과 관상 생활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교황 즉위 전후에 했던 강의 및 강론 등을 591~594년 사이에 출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욥기 주해서인 「윤리서(Moralia Magna)」, 사목자의 자질을 다룬 「사목 규범(Liber Regulae Pastoralis)」, 미사 강론을 모은 「에제키엘서 강론집(Homilae in Hiezechielem)」 등이 있는데, 윤리적이고 사목적이며 영성적인 내용을 담았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출신 성인들의 행적을 기록한 「대화록(Dialogorum Libri)」이 있는데, 제2권에서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의 생애를 다루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교회 구성원들을 세 계층으로 구분했습니다. 첫 번째 계층은 ‘평신도’였습니다.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자녀’이기 때문에,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그들에게 윤리적인 행동 규범을 강조했으며 성경 말씀의 의미와 관상 기도 실천을 가르쳤습니다. 두 번째 계층은 ‘성직자’였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성직자들에게 신앙인들의 영혼을 잘 다스려 하느님께 이끌 수 있도록 사제다운 마음인 고행과 사랑과 겸손을 실천하는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세 번째 계층은 ‘수도자’였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멀리 물러나서 고요함에 머무는 사람으로서 모든 육체적 욕구를 포기하고 일상에서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거룩한 독서와 육체 노동을 실천하며 관상 생활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세 계층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영성 생활의 발전 여정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먼저 첫 여정에서 그리스도인이 악습을 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수덕 생활에서 나타나는 한 측면입니다. 다음 여정에서 교황은 수덕 생활의 또 다른 한 측면인 덕행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즉, 이 단계에서 초자연적 윤리덕을 성장시키고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 여정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성령의 활동과 성령의 은사를 통해 초자연적 신학덕을 완성하는 단계인 완덕의 삶을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윤리덕을 발전시키는 두 번째 영적 단계와 관련된 ‘활동 생활’과 신학덕을 발전시키는 세 번째 영적 단계와 관련된 ‘관상 생활’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삶을 제시했습니다. 활동 생활은 그리스도인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돌보는 모든 형태을 삶의 의미합니다. 관상 생활은 세상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과 이웃에게만 마음을 두는 형태의 삶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활동 생활은 수고로움을 통해 이웃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는 삶이고, 관상 생활은 기도 생활을 통해 자신의 구원을 위하는 삶인 것이었습니다. 물론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두 가지 형태의 삶에서 관상 생활이 우위에 있다고 여겼지만, 활동 생활이 관상 기도를 지향해야 하듯이 관상 생활도 덕행 실천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서방 교회 전례 개혁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동방 교회와 차별화된 미사 경문과 성사 예식을 마련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11세기에 완성된 「그레고리오 성사 예식서(Sacramentarium Gregorianum)」를 처음 집필하기 시작한 인물이 교황 그레고리우스였으며, 9세기경 로마 성가와 갈리아 성가를 집대성해 만든 단성 무반주 성가도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표준화 작업을 시작했다고 여겨 교황의 이름을 붙인 ‘그레고리오 성가(Cantus Gregorianus)’라고 명명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6월 11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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