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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제18대 대선에 즈음하여: 신자이며 시민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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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1-28 ㅣ No.987

[경향 돋보기 - 제18대 대선에 즈음하여] 신자이며 시민으로서


올해는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신자인 우리에게는 구원의 길로 올바로 가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는 신앙의 해가 시작되고, 동시에 시민이기도 한 우리에게는 장차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통령 선거가 곧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교령 가운데 평신도의 고유한 사도직을 설명하는 제7항을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영적 질서와 현세적 질서 측면에서 묵상하면서, 여러분을 올바른 정치적 선택으로 안내하고자 합니다. 이 나라의 시민이며 동시에 신자인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양심으로 지배되고’(평신도교령, 5항 참조) 거듭나서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현세 질서 쇄신의 헌법인 평신도교령 제7항

‘그리스도의 양심으로 지배되고 거듭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머리에 새기고 가슴에 품고 실현시키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영적 질서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합하여 현세 질서를 개선하고 끊임없이 완성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현세 질서는 가정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언론 등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진보와 발전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온 교회는 사람들이 현세 질서를 바로 세우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힘껏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목자는 현세적인 것들의 창조 목적과 이용에 관한 원칙을 분명하게 밝혀주어 현세 질서가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르게 세워지도록 도덕적 영성적 도움을 주어야 하고, 평신도는 현세 질서의 개선을 자기 고유 임무로 받아들여 그 질서 안에서 복음의 빛과 교회정신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곧바로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이런 사도직 활동 중에서 사회운동이 가장 중요합니다(평신도교령, 7항 참조).


시민으로서 진실한 역사 과정에 비추어 선택하기

도대체 역사란 무엇일까요? 역사란 하느님의 뜻인 우리의 이상이 현실화되는 과정입니다. 신자인 우리에겐 참된 복음화의 과정이요, 시민이기도 한 우리에겐 참된 민주화의 과정입니다.

18세기 중엽에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천진암에서 강학회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강학회운동으로 만고의 절대적 진리에 눈을 떠 참된 신앙인이 되었고, 그 후 평신도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는 여섯 개의 조직적인 공동체가 생겨났습니다. 이른바 도(신앙의 진리, 곧 교리)를 명확히 깨닫게 해주는 ‘명도회’입니다.

강학회와 명도회의 교재는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와 정약종의 「주교요지」였습니다. 「천주실의」는 트리엔트 공의회 신학사상에 입각한 동양의 지성인을 위한 교리서였고, 「주교요지」는 한문으로 된 「천주실의」 내용의 골자를 서민들까지도 볼 수 있도록 한글로 저술한 예비신자 교리서였습니다.

그 당시에 이 교리서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그 내용대로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조선시대 사회체제, 곧 구한말의 현세 질서를 바로 세우는 개혁운동이었습니다. 천주교 신앙 교리 내용이 하느님 앞에서는 양반도 천민도 모두 한 형제자매라는 급진적 사고 전환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그 당시 기득권 세력에게 매우 위험한 존재로 온갖 종류의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전하시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당한 박해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순교정신을 본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또 그분들을 박해한 세력의 후예들은 누구일까요? 우리가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그 후예들이 만든 정당이나 그 정당의 후보자들을 우리는 선택할 수도 그냥 침묵으로 일관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유명한 교회사학자는, “이 역사과정의 진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결코 그들을 지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을 박해한 세력들은 노론과 그에 빌붙은 남인 벽파 정치세력입니다. 이 세력들은 1801년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조선사회를 바로 세우려고 한 선한 지식인들을 마구 잡아들였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자기 가문과 집단들의 안위와 잇속 챙기기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백성의 주류였던 농어민과 가난한 지식인들의 마지막 남은 양식마저 착취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라와 백성들을 일본에 팔아넘겼습니다. 일제 식민시대에는 부귀영화를 누렸고 해방 후에는 미국의 이익과 이승만의 대권야욕에 편승하여 반공을 주장하며 분단 조국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기득권을 유지해오다가 오늘날에는 이 나라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는 공고한 세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재일동포 사학자인 강재언은 “1801년 신유박해로 조선은 망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든 병폐는 그 원인을 이런 역사적 과정 속에서 찾아야 한다.”(「서양과 조선: 그 이문화 격투의 역사」, 이규수 옮김, 학고재, 1998년, 196-197쪽 참조)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종은 1885년에 「여유당 전서」를 진상하도록 명하면서 국운이 다한 것을 깨닫고 우리 선조들 중에 한 사람인 “정약용(요한)과 동시대에 살지 못한 것을 개탄했다.”(「한국 근대사 산책 1」,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7년, 44쪽 참조)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 교리를 정약종은 죽음의 순교로 고백했고, 그의 동생 정약용은 사상의 순교로 고백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약용의 사상은 “천주교 신앙 교리 정신을 기초로 한 사회개혁 사상입니다”(「한국의 유교」, 유승국,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9년, 283쪽 참조).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비교종교학자로 유명한 길희성 교수는 어느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한탄하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약용의 올바른 정치사상을 실현해 보고자 노력했던 마지막 사람이 죽었구나! 앞으로 이 나라가 걱정되는구나!” 그 교수에 따르면 정약용 정치사상의 계보는 이렇습니다.

정약용의 「경세유표」 사상으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은 사건이 바로 농민혁명 세력(서구식으로 표현하면 ‘시민혁명’) → 자주독립 세력 → 동서화합과 남북교류 세력 → 국토균형발전과 민주화 세력 → 열린 사유체계와 소통 세력입니다. 그 반대의 정치사상 계보는 그 농민혁명을 제압한 노론 세력 → 친일식민 세력 → 반공친미 세력 → 동서분열과 냉전분단 세력 → 닫힌 사유체계와 불통 세력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를 지배하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이들 지배세력의 속성은 민족을 위한 세력으로 가장하는 정체 위장과 사대주의,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통일 반대이고, 그 세력이 민족사회에 끼친 해악은 남북분단 획책과 적대의식 조장, 학문과 사상적 표현의 자유 박탈, 모나디즘(monadism, 닫힌 실체주의: 개인이든 계급이든 국가든 어느 하나를 일차적인 실체로 간주하고, 사회의 다른 요소들은 모두 주변화시키고 종속화시키는 일종의 환원주의 또는 결정론)에 따른 서민 노동자와 농민운동 탄압 등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 시민인 우리는 정약용의 가톨릭 정치사상을 오늘날에도 구현해 보려고 노력하는 정당과 그 후보자가 과연 누구인지를 현명하게 식별하고 깊이 생각해 본 뒤에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로서 교회 가르침에 비추어 선택하기

그러면 이 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신자인 우리는 순교정신을 본받고자 사회생활, 특히 정치 분야에서 어디까지 신앙고백을 해야만 할까요?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하여 이 잘못된 현세 질서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우리 청소년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회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대원칙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최후심판 기준에 있습니다. 이 가장 작은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가장 중요하고 큰 사건’으로 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적인 선택을 할 때마다 이 같은 판단의 대원칙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 판단의 내용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에서 정치적 선택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헌인 사목헌장에 들어있습니다. 또한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간직하고 읽었던 「천주실의」와 「주교요지」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사회교리서들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목헌장은 “모든 국민은 공동선의 증진을 위하여 자유 투표를 할 권리와 동시에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75항)며 올바른 정치적 선택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고, 선거를 소홀히 하는 이들에게 투표 참여를 권고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저녁기도와 미사 때마다 바치는 반성기도와 고백기도의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받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공동선을 위하여 노력한 흔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도 공동선에 대한 연대책임으로 투표권 행사를 들고 있습니다(2240항 참조). 특히 공권력이 “도덕이나 기본 인권이나 복음의 가르침 등에 어긋나는”(2242항 참조)명령을 내리는 오늘날에는 더욱더 올바른 선택으로 이것을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더 나아가 “통치 임무를 맡은 이들의 활동(정책시행)을 평가하고, 그들이 충분히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바꿈으로써 이러한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특권”(「간추린 사회교리」, 395항)을 행사하여야 합니다.

이제 교회 가르침에 더욱 가까운 정당과 그 후보자를 선택할 시간이 왔습니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농업이나 상업이나 공업이나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 가르침을 간단히 알아보고, 그 빛으로 이 나라에서 일어났던 비참한 사건들을 조명해 봅니다.

경제(oiko-nomia)라는 말은 본래 가계(house-managing)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니까 올바른 경제정책은 대다수의 노동자 가정, 마태오 복음서 25장에 따르면, 가장 작은 가정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는 정책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충분한 가족 임금을 정부와 기업이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노력한 만큼보다 보수가 적거나 잔인한 해고 행위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상상할 수 없는 불의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248-254항 참조).

불법 해고 실직자에게는 정부가 나서서 복직 명령을 내려 일터로 다시 돌아가게 해주어야 합니다. “실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피해자들은 거의 대부분 그 품위에 손상을 입고 균형 있는 생활에 위협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실업자가 받은 개인적인 피해 이외에도, 실업은 그의 가정에도 많은 위험을 안겨주기”(「가톨릭교회 교리서」, 2436항) 때문입니다. 부당한 실직해고는 또한 어떤 경우에도 죄악 그 자체이고,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실제로 비참한 ‘사회의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287항 참조).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이렇게 강제위협과 불법해고로 직장을 잃고, 마구잡이식 도시개발로 생활의 터전에서 쫓겨나 온갖 생존의 고통과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봅니다. 용산의 남일당 참사, 그리고 평택의 쌍용자동차와 부산의 한진중공업 해고 사태 등 비참한 현실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방송사 어용사장들은 이 모든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여 거짓 보도하려고 사건의 진실을 심층 보도하는 피디들을 정권 초에 내쫓고 지방 한직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인터넷 주요 방송인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국민들은 그 참혹한 진실을 정확히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서민들의 생활에, 특히 실직 노동자와 그 청소년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언론을 개혁할 수 있는, 상위 부자들과 기득권자들에게만 유리하게 보도하는 주류 신문과 방송들의 조직과 지배구조를 과감하게 뜯어고칠 수 있는 정당과 그 후보자를 뽑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매체 분야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이용하는 우리도 가난하고 억울한 형제들을 위하여 자기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용자들의 첫째 의무는 식별력과 선정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561-562항 참조).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경고를 가슴 깊이 명심하면서 서로 참된 말만 하고, 어떤 언론 내용이 거짓과 왜곡 보도인지 식별하여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거짓을 벗어버리고 저마다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지체입니다. …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에페 4,25.29).

앞으로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고 우리 귀여운 자녀들의 구원이 달린 대통령 선거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을 간절히 바라며 기도합니다.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 불쌍한 당신의 백성을 구해주소서. 당신은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 아멘.”

[경향잡지, 2012년 11월호, 조성학 라우렌시오(청주교구 교리연구모임 담당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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