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2-0814...화...하느님의 말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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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8-14 ㅣ No.1288

연중 19 주간 화요일 - 짝수 해 에제키엘 2,8-3,4 마태오 18,1-5.10.12-14

 

2012. 8. 14.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말씀은 순수한 자에게 힘을 발휘한다(?)

세상 삶이 힘겹게 되고 복잡하게 되다보니, 사람이 처음에 정한 낱말의 뜻도 변합니다. 어려운 말로 하면, 언어의 사회성이라고 하지만, 그것까지 얘기는 하지 않더라도 그 모습을 쉽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품행이 단정하고 공부도 성실하게 하는 학생을 가리켜 모범생이라고 했습니다. 헌데, 앞에서 한 글자가 빠지고 범생이라고 쓰면, 앞뒤가 막히고 오로지 자기 할 일만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무엇일 잘못된 것일까요? 잘못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질문에, 어린이를 본보기로 세워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런 얘기를 듣다보면, 우리는 이상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범생이인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이해수준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처럼, 답답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대답을 확정하기는 아주 힘듭니다.

 

양을 백마리를 갖고 있다고 한 마리를 잃어버린 사람이, 그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것이 옳을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면 나머지 99마리의 안전은 누가 보장해줄까요? 과연 1마리를 찾아 나선 그 사람이 갖고 있다고 생각할 99마리의 양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생기지 않을까요? 같은 일에 대해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불안한 요소를 떠올리지만, 하느님은 적어도 우리 사람들처럼 같은 고민에 빠져계시는 분은 아닌 듯합니다. 99마리의 양 무리에는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지...그거야 하느님이 하시는 일인데.... 하면서 우리는 대답을 아주 간단하게 돌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다익선의 원칙에 따라서 세상에서는 크거나 많거나 중요한 것을 먼저 따진다고 하지만, 적어도 하느님의 시각에 그런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렇게 차이가 난다면, 같은 세상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닐까요?

 

에제키엘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이 담긴 두루마리를 먹습니다. 책 뭉치를 먹을 수 있는지 고민할 일은 아니고,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대할 때, 그 말씀은 우리의 입에 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론은 아닙니다. 실제로 같은 길을 걸어야 아는 일입니다. 똑같이 해봐야 하느님의 말씀이 단지, 쓴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흔히 경험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같은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체험하는 것이 다르고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내게 일러주는 느낌이 다른 법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쓰인 글의 내용은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었는데, 그게 내 입에 달게 느껴진다면, 그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대하는 사람이 되려면 이 차이를 올바로 해석할 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전파할 수 있는 힘은 우리가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습니까? 지혜를 간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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