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전주교구 신앙문화유산 해설사회: 순교자들의 삶을 보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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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23 ㅣ No.963

[참 좋은 몫을 택했다] 전주교구 신앙문화유산 해설사회


순교자들의 삶을 보여드려요

 

 

일어나자마자 텔레비전을 켜고 고속 도로 교통 상황을 주시했다. 수도권에 비구름이 잠시 걷힌 지난 7월 30일, 주말이라 이른 아침부터 수도권을 벗어나려고 고속도로로 들어서는 차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오전 6시 30분, 서둘러 집을 나섰지만 고속도로는 시원스레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약속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차는 마냥 서있기만 하니 초조함과 답답함이 밀려온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휴대전화가 연방 울어댄다.

 

대구에서 성지순례 오는 중고등학생들을 호남교회의 발상지요 유항검의 생가 터가 있는 초남이성지에서 만나 성지 설명을 하기로 했다며 약속 장소를 바꾸자고 했고, 전주 IC를 나오면 다시 전화하란다.

 

약속 시간을 1시간 이상 넘겨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고, 땀범벅인 채로 학생들과 점심식사를 하려던 전주교구 신앙문화유산 해설사회 이병로 아브라함 회장을 만났다.

 

 

성지는 곧 문화유산

 

전주교구 관할 지역은 순교의 현장으로 유명하다. 1791년 한국교회 첫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을 비롯하여 많은 이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켰다. 이런 까닭으로 전주교구에는 성지와 사적지들을 찾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주교구 사목국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10여 명의 봉사자들을 두고 전라북도를 찾는 순례자들을 도왔다. 그러던 중에 전주시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전주를 찾는 외국인들을 위한 외국어 미사를 요청하는 등 천주교 순례자들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천주교 문화유산 해설사 양성을 제의하였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평신도들로 구성된 ‘신앙문화유산 해설사회’다. 전주교구를 찾아 성지순례를 하는 이들에게 ‘신앙문화유산’을 안내하고 ‘전통문화’를 알리면 좋겠다는 전주교구와 전주시의 의지가 만나 이루어진 것이다.

 

2006년 6월에 제2기 교육을 마치며 ‘전주교구 신앙문화유산 해설사회’를 창립하였다. 이 회의 목적은 “신앙선조들이 물려준 고귀한 신앙문화유산을 찾아내고 그 정신을 배워 익히며 들어 높이려고 ‘성지순례 안내 자원봉사’, ‘해설사 자격연수교육’, ‘해설사의 자질 함양을 위한 연수와 피정’ 등을 하는 것”이다.

 

 

신앙문화유산 해설사회

 

해설사 양성교육은 한국교회사, 간단한 외국어 회화, 특히 전주교구의 역사와 교구내 성지, 사적지에 관한 연수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현장 순례, 답사 그리고 안내와 해설 실무, 봉사자들의 자세에 대해서도 배운다.

 

2004년에 첫 번째 ‘신앙문화유산 해설사’ 양성교육을 실시하여 제1기 해설사 52명을 배출하였고, 2006년 제2기 19명, 2007년 제3기 18명, 2008년 제4기 39명을 배출하였다. 2011년 7월에는 1-4기 48명이 자격 갱신을 하였고, 제5기 11명이 교육을 마쳤다. 교육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해마다 재교육을 받는다.

 

제1기 수료생은 제2기생 교육 때, 제2기 수료생은 제3기생 교육 때 재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리고 해마다 주어진 과제(성지와 교회사 관련)에 대한 보고서가 통과되어야 봉사자 자격을 갱신할 수 있다. 또 다른 교구의 성지도 돌아보면서 공부하고 현장 감각도 익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신앙문화유산 해설사로 등록된 평신도들은 성지순례 안내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순례객이 해설 봉사를 청하는 시간이 주말이라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단다.

 

 

‘길 찾기’가 어려운 순례 여정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타지에 가면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첫째는 ‘길 찾는 일’일 것이다. ‘순례를 나섰으니 그만한 어려움쯤 당연히 참아야지.’ 하겠지만, 길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다 보면 큰맘 먹고 집 떠난 성지순례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해설사회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다른 교구 성지순례에 나섰다가 성지 근처까지는 찾아갔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성지가 어딘지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동네 노인들에게 물어 목적지를 찾기는 했지만, 좁은 길에 대형버스가 들어가지 못해 애를 먹었다.

 

“성지에 대한 ‘해설 안내’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길 찾는 ‘교통 안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순례단과 연락이 되면 교통 안내를 최우선으로 여겨요.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은 고속도로 나들목까지 나가서 순례자들을 맞이합니다. 이 서비스가 반응이 꽤 좋아요.” 하고 말하는 이영훈 다미아노 해설사.

 

해설사의 설명을 들은 이들이 다시 찾아오기도 하고, 요즘은 개신교 신자들뿐 아니라 타종교에서도 성지 해설 도움을 많이 신청한다. 개신교 신자들이 많이 부러워하는 것이 ‘가톨릭은 성지가 있다는 것’과 매우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는 것이란다.

 

또 해외에서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 성지 해설 봉사를 부탁한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간 이들은 감사의 인사를 주교님에게 전한단다.

 

 

순교지 따라 1박 2일

 

“쉬었다 가면 안 돼요?” “이 더운 날 굳이 올라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밑에서 시원한 음료수 마시면 좋을 텐데….”

 

유항검 일가의 유해를 합장한 무덤이 있는 치명자산, 그 오르막길을 걷는 해설사 뒤를 투덜거리면서 따르는 40여 명의 중고등학생들. 산길을 조금 더 올라가자 말은 없어지고 거친 숨소리만 들린다.

 

“순교자들은 피를 흘리며 이 길을 가셨지만 여러분들은 땀을 흘리며 갑니다. 순교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보세요.” 하며 힘겨워하는 발걸음에 힘을 보태주는 이동수 안드레아 씨.

 

“올라오는 데 힘들었죠? 땀은 뚝뚝 떨어지고 몸에서는 쉰내가 나고, 아무 생각 없죠? 머릿속에 빙빙 맴도는 건 에어컨과 아이스크림이지요. 그래도 지금은 아니지만 여러분들을 이곳에 데리고 온 선생님들의 마음을 언젠가는 알 수 있을 거예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 이런 학생들을 보며 김봉희 신부(치명자산 전담신부)는 순교자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순교자들에 대한 신심과 순교자의 삶을 세세히 설명해 주고 순례자들이 순교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배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성지를 소개하는 신앙문화유산 해설사들.

 

“다른 교구도 성지가 많아요. 성지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은 성지해설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순교자들의 삶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되고, 또 많은 이에게 전해졌으면 하네요. 그리고 성지순례보다 더 좋은 예비신자 교육은 없을 거예요.” 하고 이병로 회장은 힘주어 말한다.

 

학생들은 편하지 않은 한여름의 1박 2일 성지순례를 마쳤지만, 학생들을 위한 해설사들의 수고와 자신들이 흘린 땀으로 먼 훗날 순교자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5.37). 연중 제18주일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 말씀이 쉬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 전주교구 신앙문화유산 해설사회

☎ 063)230-1004 사목국

010-6844- 0204 이병로 아브라함 회장

 

[경향잡지, 2011년 9월호, 글 · 사진 장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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