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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23: 화해의 성사 - 고해성사를 고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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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6-01 ㅣ No.466

[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공동기획 -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 (23) 화해의 성사 - 고해성사를 고하다 1

‘화해 · 치유의 성사’ 뜻 퇴색 … 젊은 층 기피 심각


주일미사 10분 전, 신자들이 길게 늘어선 고해소 앞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미사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신자들은 시계와 고해소 줄을 번갈아 쳐다본다. 일부는 일찌감치 단념하기도 하고, 일부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앞사람이 빨리 나오길 기대한다. 하지만 사제가 있는 쪽의 고해소 문이 열림과 동시에 신자들은 아쉬움의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그리고는 이내 미련이 없다는 듯 등을 돌려 성당으로 들어간다. 이는 고해성사를 대하는 한국교회 신자들의 단면이다.

실제로 하느님과 공동체, 자신과의 화해를 청하는 고해성사는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그저 신자의 의무로만 여긴다. 최근에는 이러한 의식마저도 사라지고 있어 문제다. 주교회의가 발표한 ‘2012 한국 천주교회 통계’ 결과를 살펴보면, 고해성사 지표가 전년 대비 4.6% 감소해 이 같은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유럽교회에 비해 여전히 많은 신자들이 고해성사에 참여하고 있지만 위태로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교회 신자들의 고해성사 실태를 성찰(省察)해 본다.


성찰

고해성사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한 화해와 치유의 성사다. 일곱 성사 중 병자성사와 더불어 ‘치유의 성사’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고해성사에 대해 ‘신자들은 하느님께 끼친 모욕에 대해 그분의 자비로 용서를 받으며, 동시에 범죄로 상처를 입혔던 교회, 사랑과 모범과 기도로써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노력하는 교회와 화해한다’(「교회헌장」 제11항)고 언급했다.

2000년 교회의 역사 안에서 강조된 고해성사의 의미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빛이 바랬다. 신자들의 고해성사 참여율은 점점 감소하고 있는 추세며,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 역시 저조한 실태다. 지난해 서울대교구 사목국이 9개 본당을 대상으로 실시한 ‘본당 사목 활성화를 위한 기초자료 수집 설문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고해성사를 ‘판공성사 때만 한다’는 응답이 66.9%에 달했다. 본지가 서울대교구 구역반장을 상대로 진행한 ‘성사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관한 설문조사’에서는 32.9%가 같은 질문에 응답했지만 설문 대상자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봉사자들이라는 점에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결과다.

또한 ‘성사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성사생활에 대한 부담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성사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자주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바쁜 일상’과 ‘부담스럽다’는 응답이 각각 32.2%와 29.9%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설문 조사를 통해 신자들이 ‘고해성사’에 갖는 부담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분석했다.

오래 전부터 고해성사는 신자들에게 신앙의 은총이 아닌 장벽으로 여겨졌다. 수원교구 복음화국의 ‘쉬는 교우 대상 설문 분석 결과 보고서’(2007년)에 따르면 냉담교우 25.3%가 냉담의 첫 원인으로 ‘고해성사’를 꼽았다. 본지 창간 80주년을 맞아 조사 발표한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2007년)에서도 17.1%가 고해성사의 부담을 지적했다. 이 같은 결과는 현실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특히 젊은 층에서는 고해성사를 기피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 한국교회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본당에서 청년회 활동을 했지만 현재 2년째 성당을 나가지 않고 있는 권모(안젤라·30)씨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신앙을 소홀히 하다 보니 판공성사를 미루게 되고 자연스럽게 성당에 나가지 않고 있다”면서 “다시 성당에 나가고 싶어도 그동안의 죄를 고백하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통회

이러한 현상에 대해 교회 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해성사 활성화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고해성사의 참된 의미를 신자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올바른 이해가 동반되지 않을 때, 고해성사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이 증가한다는 이유에서다. 고해성사는 물론 일곱 성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서울대교구 사목국 교리전례사목부의 ‘성사학교’ 개설 배경도 그 맥을 같이한다. 이와 함께 성직자도 노력해야한다는 의견 또한 적지 않았다.

손희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는 “신자들이 좋은 분위기에서 고해성사를 볼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역에 상설고해소가 마련되고 평일에도 편하게 찾아올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면서 “또한 성사집전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명동성당 상설고해를 지원하고 있는 여경수 신부(글라렛선교수도회)는 “사제는 항상 화해와 치유의 손을 내밀고 있는 주님께 신자들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 최근 ‘화해 · 치유의 성사’인 고해성사의 참 의미를 잃은 채 부담감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늘어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교회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신자 역시 고해성사가 갖는 ‘부담’을 인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군자는 하루에 세 번 반성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처럼 스스로 성찰하고 뉘우치지 않고는 결코 성숙한 신앙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여경수 신부는 “고해성사는 주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라며 “우리의 죄를 통해 영광을 드러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해성사의 은총은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았지만,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자들의 몫인 셈이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요한 16,21) [가톨릭신문, 2013년 6월 2일, 이지연 기자]


성인들 명언으로 보는 고해성사


고해성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돌아보는 데 핵심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내고(성찰), 알아낸 것을 뉘우치고(통회), 알아낸 죄를 겸손되이 숨김없이 고백하고(고백), 죄의 사함을 위해 사제가 일러주는 보속을 한다(보속). 하지만 아무리 과정을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해성사의 참 의미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이에 성인들이 고해성사에 관해 남긴 명언들을 통해 고해성사의 가치와 기쁨을 되새겨본다.

‘오상(五傷)의 비오 신부’로 알려진 파드레 비오 성인(카푸친작은형제회·1887~1968)은 고해성사를 “영혼의 목욕”으로 비유했다.

비오 성인은 “깨끗하고 비어 있는 방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주일이 지나서 되돌아가보면 그 방은 먼지를 털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신자들에게 매주 고해성사를 볼 것을 권유했다. 그 역시도 일주일마다 고해성사를 실천했다. 뿐만 아니라 명상과 양심 성찰도 게을리 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살아갔다.

고해성사하면 빼놓을 수 없는 성인이 있다. 바로 ‘고해소의 성인’으로 불리는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1786~1859)다.

비안네 성인은 “고해성사를 받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첫째는 사제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믿음’이고, 둘째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용서의 은총을 주시리라는 ‘희망’, 셋째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인도해주며, 우리가 그분에게 잘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마음속에 심어주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고해성사의 참 의미를 깨달았던 비안네 신부는 그 기쁨을 신자들과 나누기 위해 성무일도와 식사, 상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18시간 정도 고해성사를 줬으며,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고해사제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

살레시오회의 창설자 요한 보스코(1815~1888) 성인은 예방교육과 함께 고해성사와 영성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솔직한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올바른 고해성사야말로 올바른 길을 걷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한 요한 보스코 성인은 기도서 또는 십계명을 순서대로 살펴 늘 성찰해야하며, 종이에 죄를 써서 고해사제께 읽는 것도 좋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가톨릭신문, 2013년 6월 2일,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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