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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해하기7: 사목헌장 (1) 인간의 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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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17 ㅣ No.460

[신앙의 해 특집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해하기] 7.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 (1) 인간의 존엄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이하 사목헌장, GS)은 ‘교회헌장’과 함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수(精髓)’를 담고 있는 대표 문헌으로, ‘현대 세계에 대한 교회의 이해와 현대인들의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답’의 원형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헌장’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문헌은 오늘날 ‘교회의 사목’을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대원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사목헌장’이라는 말이 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준비되고 계획되던 시점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또 실제로 초안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스스로가 이 문헌을 만들어 내었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공의회가 교회를 “현대화(Aggiornamento)”하고자 한 산고의 결과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공의회는 ‘교회헌장’을 통해 ‘구원의 성사’인 교회의 본연적 모습을 재발견하였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교회가 “모든 시대에 걸쳐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하여야 할 의무를 지고”(GS 4) 있음을 자각한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당신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시편 8,5-7〔4-6〕)


1. 인류 전체를 위한 교회의 의무 - 인간에서부터

이렇게 교회의 의무를 자각한 공의회는 이 점을 밝혀 주기 위한 출발점으로 먼저 “인간”에 대해서 주목을 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구세사의 장소인 인류 전체의 역사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며, 신앙인이건 비신앙인이건 “모든 인간이 진정 구원을 받아야 하고, 인간 사회 또한 쇄신 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공의회가 바라보는 사목의 대상이 예전과 달리 교회 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인류 전체로 확장되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공의회가 열렸던 시기는 서구 국가들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과연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인간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재발견하고자 발을 내딛은 시점이었으며, 그와 동시에 동서간의 냉전고조와 핵무기 확산으로 인간존재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한 때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현대인들”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사목헌장은, 교회가 현대에 대한 시대적 징표를 탐구하는 주체인 인간에 대해 또 그 인간이 살고 있는 시대의 여러 상황을 진단하고자 한, 더 나아가 그에 대한 해답을 장엄한 형식을 통해 제시해주고자 선포된 시대의 나침반이었습니다.


2. 현대인의 구체적인 상황과 계시의 연관성

사목헌장은 다른 것에 앞서 먼저 현대인들의 처한 구체적인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현대인들은 새로운 역사의 전환기적 특성인 변화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변화라는 말 이외에는 변하지 않은 것이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이런 지나칠 만큼 빠른 현대 세계의 외적 변화는 그 안에 있는 현대인들의 사물과 인간에 대한 사고방식과 행동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고, 특히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한 변화는 인간의 심리적, 도덕적 태도, 무엇보다도 종교적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에 이릅니다. 사목헌장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으며, 따라서 세상에 대해 접근하면서, 추상적이고 신학적인 어떤 것에서보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세상의 모습들에서 출발하는 ‘귀납적 방법’을 선택하는 획기적 결정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교회가 보인 이 모습은 이제껏 교회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보인 최대의 변화라는 점입니다.

한편, 사목헌장이 그 안에서 발견하는 바는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크게 확대하고 발전시키면서도 그 능력을 언제나 충분히 지배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종속되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어떤 변화들은 인간 정신의 가장 깊숙한 부분까지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정작 인간 스스로에 대해서는 어떤 확신도 주지 못하는 ‘위기’를 초래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많은 발전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 내부에서 심각한 분열을 겪게 되고, 그 분열은 결국에는 세상과 인간의 많은 불균형과 불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GS 4) 이에 따라 인간은 제 자신에 대해서 수만 가지 견해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아직도 그 주장들이 실제로 득세하고 있지만, 결국 이것은 의문과 불안만을 증폭시키고 있을 뿐입니다.(GS 12) 이러한 상황에서 공의회는 ‘계시를 통해’ 인간을 바라보고자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계시의 빛”에 힘입어 인간을 바라볼 때, 인간에 대한 참다운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계시의 빛으로 보는 인간 -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드러날 인간의 존엄

따라서 공의회는 성경적인 바탕에 따라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원문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계시적 사실로 부터 출발하여 인간에 대한 참다운 이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시작합니다. 계시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 행위를 통해 자기 창조주를 알고 사랑할 수 있으며, 창조주로부터 세상 만물의 주인공으로 세워져 만물을 다스리고 이용하며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는 존엄한 존재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 존엄성은 구체성을 띠는데, 이는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져 다른 사람들과 관계맺음을 통해 살아가는 하느님을 닮은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GS 12)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자유 남용에 따라 악의 유혹에 넘어가 역사의 시초로부터 하느님께 반항하며, 하느님을 떠나서 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이 자신 안에 분열됨을 알려주는 것으로,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앞에서 봤던 인간의 구체적인 경험들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하느님을 자기 자신의 근원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궁극 목적을 지향하는 질서마저 무너뜨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과 이루는 조화를 깨뜨려 버렸기에, 인간의 모든 삶이 극적인 투쟁 안에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경험하게 됩니다.(GS 13)

한편 이런 투쟁의 상황이 인간에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은 곤경 속에서 자신 내부에 있는 긍정성을 발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사목헌장 14항∼18항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창조를 포함하는 내밀한 연결점이 있기 때문에, 육체와 영혼의 단일체인 인간은 죄악의 결과로 인한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투쟁적 상황 속에서 여전히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내면성과 지성을 통해 진리와 지혜를 발견하고, 양심과 자유를 통해 인격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하느님의 창조물이자 존엄한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줍니다.(여기에는 인간의 모습들 - 지성, 양심, 자유 등 - 에 대한 주옥같은 묘사들이 많지만 지면상 생략합니다.) 인간 내부에 있는 이런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투쟁해야 하는 인간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주어진 운명, 그 수수께끼의 절정인 죽음으로 그 존엄성이 결정적으로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합니다. 세상 안에서 인간은 스스로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고전분투를 해보지만 안타깝게도 스스로에게서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없기에 이릅니다. 이런 과정을 겪은 인간은 그리스도교 계시 안에서 그 궁극적인 해답을 찾게 되는데, 바로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새롭게 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에서 그 해답을 찾게 됩니다.

이 같은 분석들은 공의회 이전까지 인간들이 경험했던 많은 끔찍한 체험들(세계대전, 홀로코스트)과 유물론적인 무신론의 영향들로 인해 마치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버려져 있다는 생각과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생각’을 불식시키고자 ‘은총의 존재론’(은총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을 피력하고자 했던 공의회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비로소 완전히 드러나게 되는 ‘사랑의 신비 - 파스카의 신비’ 앞에서 인간의 신비가 밝혀질 수 있다는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비로소 인간은 죄의 결과인 운명을 뛰어 넘어서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공의회는 시대적 징표 안에서 위협받고 있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해답을 ‘계시의 빛’으로 밝혀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목헌장 41항은 “하느님의 신비를 밝혀주는 것이 교회에 맡겨진 사명이므로, 교회는 … 인간에 대한 깊은 진리를 밝혀준다. 참으로 교회는 오로지 자신이 섬기는 하느님께서만 지상의 양식으로는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열망을 충족시켜 주심을 알고 있다. “… 인간을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신 하느님 홀로 이러한 문제에 완전한 해답을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당신 아들 안에서 계시를 통하여 그 해답을 주신다.”(GS 41)라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에게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도 인간을 이해하는 궁극적 열쇠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께서 …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11)

공의회는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불변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먼저 선포하고, 역사 안에서 인간과 교회가 구체적으로 사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월간빛, 2013년 5월호,
최석환 요셉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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