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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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2011-1128...월...하느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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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11-27 ㅣ No.1126

대림 1 주간 월요일 이사야 2,1-5 (나해 평일)               마태오 8,5-11

 

2011. 11. 28.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힘

세상에 사람보다 힘이 센 존재는 무엇일까요? 질문하는 사람의 입장을 미리 생각하면,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아마도 하느님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원할 거야....하고 미리 짐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을 기본으로 할 때에, ‘하느님이라는 대답을 원한다고는 해도 세상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느님!’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자신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방법이나 자세에 따라 삶의 방향을 정합니다. 사람들 각자의 독특성이나 고유성을 인정해준다고 해도, 사람들의 대답에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들어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주 힘겨운 도박과도 같다고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내가 지금부터 미리 생각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좀 더 시간이 흐른 다음, 내가 내 몸으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 그때에 하느님을 생각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죽기 전에 하느님을 생각이라도 한다면 하느님은 나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껄 하고 주장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물론 저도 정확한 것은 모릅니다. 그와 비슷한 질문에 하느님이라는 대답을 하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일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문학을 강조하고, 무신론으로 흐른 세상의 이론은 하느님을 애써 무시합니다. 하느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낮추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지상 최고의 존재이고, 그 사람위에 다른 어떤 존재도 없다면, 흔히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답이 옳은 것이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태어난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지 그 간단한(?) 시험문제도 아직 풀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이사야예언서로 읽은 오늘 독서 말씀의 느낌은 어떠합니까? 그 말씀을 들으면서, 사람들이 모두 다 하느님의 존재를 느껴야 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의 길로 가도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참 좋은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감탄하신 믿음의 본보기는 대단한 것이었을까요? 예수님에게서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서 로마의 백인대장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대답을 했을까요?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사람의 마음까지도 읽으셨던 예수님께서 하신 감탄이라면,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일은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세상에 어떤 일을 할까요? 그 어떤 사람도 증거를 보여줄 수는 없지만,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하느님을 맞아들일 수도 있고, 내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의 맘에 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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