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2011-1027...목...우리가 갖는 자세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10-27 ㅣ No.1103

연중 30 주간 목요일 - 홀수 해

로마서 8,31-39 루카 13,31-35

2011. 10. 27. 등촌3

주제 : 우리가 갖는 자세

세상에서 우리는 긍정의 힘보다는 부정의 힘을 더 강하게 느낍니다. 그게 사람의 특성인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삶에 부정의 힘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도 삶의 끝,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긍정의 힘이 내 삶에 다가오기를 바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 바꾼다면, 내가 삶을 마치고 난 다음에는 벌의 장소라고 알고 있을 지옥에 가까이 가는 것보다는 하느님께서 축복을 준비하실 천국에 가까이 다가설 것을 기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제로 내 삶에 천국에 다가서기에는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그럴 것입니다.

 

삶에서 남들에게 칭찬을 하는 것보다는 아쉬운 소리와 비난의 소리를 하기가 훨씬 더 쉽습니다. 부정적인 소리가 더 하기 쉽다는 원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데, 제가 하는 생각이나 소리들을 가만히 생각해봐도 그런 비율이나 횟수가 더 많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는 소리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사람이라는 동물(!)은 죽어야 하는 존재이기의 천성이 그렇게 돼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은 요즘의 현실과 맞지 않는 소리라고 생각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교회의 전례력은 연중34주간까지 있는데, 독서와 복음의 내용을 보면, 이 끝에 다다를수록 세상 삶의 허무함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어떤 정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내용들을 주로 읽습니다. 그래서 드러난 표현은 연중시기 34주간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세상의 마지막이야기를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중에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헤로데가 죽이려고 하니, 목숨을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소리를 전달해주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 돌파를 시도합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어떨까요? 계란은 온전하고 바윗돌이 얼먹어서 깨질 날이 있을까요? 세상의 논리와 상식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고 믿고 덤비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 예수님을 바라보면 한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와는 다른 판단기준을 갖고 세상을 대했던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인이라면, 이 모습을 본보기로 삼는다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내가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내가 하느님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바오로사도의 주장이었습니다. 정말 가능한 소리일까요? 하느님은 사람처럼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받아들일만한 소리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굳세고 든든한 바윗돌이신 하느님을 내가 가진 계란으로 깨려고 시도하는 일이 옳은 일이겠는지 한번 쯤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떠나지 않으면, 하느님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거라는 바오로사도의 믿음을 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는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 이 자리에 머물러있는 바로 우리를 위해 도움이 될 말씀입니다.



76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