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4일 (금)
(녹)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

강론자료

2015-0114.....연중01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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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1-13 ㅣ No.1678

연중 제1주간 수요일 - 홀수 해

히브리서 2,14-18               마르코 1,29-39

2015. 1. 14. 이태원

주제 : 예수님의 본보기를 대하면서.......

내가 세상에 살면서 어떤 일을 하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질문을 하면, 그에 가장 알맞은 대답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이렇게 내 귀에 닿는 질문에 대답할 때, ‘완전히라는 표현은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하는 행동의 결과가 나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그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이었다고 말해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표현처럼,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을 먼저 생각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삶을 통해서 온전히 남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 한자로 표현해서 순수하게 이타적(利他的)인 삶을 드러내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애초에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가 말하는 것은 세상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굳이 세상의 입장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그에 상대적인 신앙의 입장에서는 그 모양새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몬의 장모를 열병에서 고쳐주신 것은, 당신이 선택한 4명의 제자들과 함께 그 부인의 시중을 받기 위해서였을까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이렇게 의도적으로 곡해(曲解,=사실과 어긋나게 잘못 이해함)해서는 안 되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의 사물을 대할 때, 나름대로 여러 가지 기준을 제시하면서 곡해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만 모를 뿐입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놀라운 결과를 맺었다고 하는 것은, 그분의 삶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거나 제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만이 하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신앙인이 아니거나 올바른 신앙인으로 살지 않거나, 예수님의 삶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만 해석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놀라운 결과에 합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만드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삶에 대하여, 히브리서도 같은 뜻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사제가 되신 분이라고 하면서, 그 대사제가 그저 제사만 드리고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아는 대사제는 당신의 몸과 피, 즉 생명을 바쳐 인류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얘기합니다. 말 그대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니, 우리가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결과로 인류는 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는 것이 신앙의 고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우리의 자세나 선택은 아주 중요하게 됩니다.

 

내가 하는 선택이 세상이나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할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그런 결과를 지향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찾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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