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강론자료

2013-0623...연중12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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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6-22 ㅣ No.1363

연중 제 12 주일 (다해)
즈가르야 12,10-11;13,1     갈라디아 3,26-29    루카 9,18-24
2013. 6. 23. 등촌3
주제 : 나는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아주 타당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의 뜻을 무어라고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사전에는, 백 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도 못하다는 것이니, ‘무엇이든지 실제로 경험해보아야 확실히 안다는 말로 설명하면서, 사람의 지식과 경험을 모든 것에 앞세우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이 말의 표현을 바꾸면,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을 듣는 것보다 낫다는 뜻일 겁니다. 이 시간이 우리말에 나오는 속담을 해설하는 시간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렇게 사용하는 말이 세상의 일만이 아니라, ‘신앙의 일에도 적용되는 말이겠는지 질문해볼 수는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정확하다고 말할 법한 세상의 일이, 사람의 삶에 일관성을 갖기란 힘든 일입니다. 그런 말이 표현하는 진리성(眞理性)이 변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같은 일이라도 대하는 사람의 정성에 따라 영향이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12주일입니다.
부활시기를 마치고 나면, 성탄절을 앞둔 대림절에 이르기까지, 몇 개의 대축일 전례들을 빼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주일들은 연중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연중이라는 낱말의 뜻이 우리말에는 한 해 동안이라는 뜻으로서그 의미나 한계가 애매하지만, 같은 표현을 영어에서 읽으면, ‘보통의/일반적인시기라는 뜻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중시기란 우리가 삶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일은 없는 때라고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말 표현은 그렇게 해석하지만, 이렇게 특별한 일이 없다고 말하는 이 시기를 우리가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라는 나무에 달리는 열매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니, 표현과는 다르게 아주 중요한 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들은, 루카복음에는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삶의 신원의식을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질문과 대답이 나왔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질문은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말로 대답해도 충분할 수도 있지만, 행동으로 대답하고 싶다면, ‘내 삶에 따라오는 십자가를 나는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베드로사도의 경우처럼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대답하는 신앙고백을 큰소리로 말하지 않거나 대답하기를 우물쭈물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올바른 신앙고백이 내 삶에 찾아오는 십자가를 대하는 자세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하는 대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베드로사도처럼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삶에 다가오는 삶의 십자가를 잘못된 방법이나, 하느님의 뜻과는 다른 방법으로 대하지는 않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말로 하는 대답을 통해서 삶의 자세를 드러내고, 삶의 모양은 말로 했거나 다짐한 대로 드러나는 법이며, 그렇게 드러나는 행동은 다시금 말로 하는 소리에 영향을 주는 것이니, 말과 행동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말씀드리는 이 소리도 항상 정해진 원칙은 아닐 수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 가운데는, ‘말과 행동을 아무런 상관없이 따로따로 대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말과 행동에 차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세상에 드러내는 목소리가 크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심이 강하며, 자신은 언제나 의인이거나 옳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고, 자기 뜻과 다른 사람은 악인이거나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올바른 것일수록, 우리는 삶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만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내가 하느님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인간인 내 기준만을 따른다면, 우리는 삶에서 하느님을 만나기도 어렵고 그분의 자비를 체험하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고 한다면, 실제 삶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즈카르야예언자가 알려준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내가 삶을 새롭게 하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이라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부정을 씻어주신다는 체험을 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사정을 바오로사도의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은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으로 들은 말씀에, 내 삶을 비추어보면, 과연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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