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강론자료

2011-0320.....사순 2 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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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3-20 ㅣ No.1020

사순 제 2 주일 (가해)
창세기 12,1-4ㄱ           2 티모테오 1,8-10      마태오 17,1-9
2011. 3. 20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축복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진지하게 묻고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말로 대답하시겠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렇게 나에게 질문하는 분이 가진 힘이 강한 분이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수 있는 분이 질문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과연 그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말을 시작했습니다만, 우리가 갖는 바람을 이루어줄 위대하고도 강력한 분을 찾는 것은 힘들다고 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정말로 힘들 수도 있는 일입니다. 철저하게 인간의 한계에서만 세상을 바라본다면 말입니다. 혹시 가능한 방법이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전혀 다른 세상이 따로 있지는 않을까요?
 
오늘은 우리 삶의 끝에 언젠가는 실현되기를 바라는 영광을 미리 생각할 수 있는 특별한 말씀을 들은 사순 2주일입니다. 우리가 복음과 창세기 독서에서, 아주 진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우리가 그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우리 삶에 실현될 현실의 일들은 아주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에서 이루는 성공, 내 명예가 높아지는 일,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고 큰소리로 내 뜻을 드러낼 수 있는 순간을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높은 꿈을 우리가 갖고 있다면, 나는 현실에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제대로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소가 뒷걸음질을 하다가 쥐 한 마리를 잡을 수는 있어도, 우리가 소를 키운다면 그 목적이 쥐를 잡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제자 3명을 데리고, 넓은 평야에 우뚝 선, 타볼산으로 오르십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선택된 제자들에게 영광스럽고도 아주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영광에 쌓인 예수님의 놀라운 모습과 구약시대의 위대한 예언자, 모세와 엘리야를 엉겁결에 보게 된 제자 베드로는 황당한 소리를 합니다만, 우리가 오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러한 베드로의 말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눈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때때로 사람은 자기 눈으로 보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확실하다고 받아들일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눈으로 본 것에 대한 확실성은 내 곁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할 사람이기에, 내가 본 것을 내 이웃에게 아무리 정확하게 말로 증명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내가 받은 감동과 놀라운 결심을 그 사람과 똑같은 자세로 나눌 수 없는 탓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그들이 눈으로 본 놀라운 사실을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실 때까지 말하지 말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우리는 눈으로 본다는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소리로 우리는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그렇게 내가 본 것이 나와 내 이웃의 삶을 어떻게 바꾸겠느냐는 것입니다.
 
창세기 독서에 나오는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난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부모와 함께 살던 고향, 하란(Harran, 터키 남동부 우르파주, 시리아와 경계를 이루는 국경마을, 동경39°02북위36°52)을 떠납니다. 함께 들은 창세기 말씀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아브람이 뭔가를 보기는 했겠지만, 그것도 눈앞에 드러난 현실을 보고나서 행동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고향을 떠나 아주 먼 동네로 발길을 돌렸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는 무슨 자신감으로 그는 그렇게 했을까요?
 
사람이 보는 것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서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일일까요? 그렇게 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아브람은 자신이 들은 그대로 행동했고, 그렇게 해서 그는 히브리민족의 첫 번째 조상이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에게서 오는 축복을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하느님의 축복은 우리 삶에 언제 찾아온다는 명시적인 말씀이나 드러나는 보장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성당에 들어와 있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축복은 함께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내가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을 뒤집어서 알아듣는다면, 내가 단 것을 체험하고 내 곁에 두기 위해서는 내 삶에 찾아오는 역경들을 잘 이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먼저 생각할 축복보다는 그 앞에 다른 일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그 앞에 있는 일들이란, 바오로사도께서 티모테오에게 보낸 편지 나오는 것처럼, ‘복음을 위한 고난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나에게 찾아오는 이것들을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내 앞에 다가올 미래는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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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잠시 후에는 지난 기간 동안,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준비한 분들의 세례식이 있습니다. 먼저 신앙의 길로 나선 사람들은 뒤늦게 나서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오늘 세례를 통하여 같은 공동체 들어오는 이들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안에서 살도록 정성을 모으면 더 좋겠습니다. 우리 안에 시작된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를 위한 훌륭한 증인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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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 3명의 선택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그 영광스러운 모습에 우리도 함께 할 수 있도록, 정성과 뜻을 모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청하고, 세상의 어려움들을 이겨내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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