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강론자료

2011-0316.....사순 1 주간 수요일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3-15 ㅣ No.1016

사순 제 1 주간 수요일
요나 3,1-10                    루카 11,29-32
2011. 3. 16.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선언(?)과 인간의 반응
사람이라면 자기보다 힘이 세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한 판단은 두 가지로 갈라질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나 뜻을 읽어서 잘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세상의 논리대로 한다면, 여당으로 살 것이냐, 야당으로 살 것이냐 하는 것인데, 이 표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일반적인 모습은 이렇습니다. 다시 하는 질문입니다만, 여당으로 사는 것은 항상 좋은 것이고, 야당으로 사는 것은 항상 비난받아야 하는 일일까요? 이에 대한 판단도 아마도 시간이 흐르는 일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힘을 넘는 대상이 하느님이라면, 그 하느님이 신앙에서 말하는 하느님이라면 사람의 태도는 여당이어야 할까요? 아니면 야당이어야 할까요? 여당으로 사는 사람은 야당으로 사는 사람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할 것이고, 야당으로 사는 사람은 여당의 자세야 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비교했습니다만, 혹시 다른 대답도 있을까요?
 
가정방문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언제부터 제대로 하겠습니까...하고 물은 일이 있습니다. 이제는 야당의 생활을 접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얘기였습니다. 그랬더니 왜 자신에게 두 가지 조건만 주면서, 대답을 강요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황당했지만, 이런 질문에는 선택할 수 있는 답안지가 () 아니면 부()’만 있는 것인지, 3의 답지는 없다고 얘기하고 나온 집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하느님께서 축복을 주신다면 기세좋게 받는다고는 하겠지요?
 
오늘 독서로 들은 요나예언서는, 하느님을 전혀 몰랐던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선언이었습니다. 그 하느님은 히브리인, 요즘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교만의 하느님이 아니었다는 것인데, 그런 선언을 들은 니네베 사람들은 히브리인들보다 더 진실한 자세로 돌아섭니다. 물론 그 결과에 따라 요나가 선포했던 하느님의 심판선언은 취소되었지만, 이것을 배 아파 한 사람은 없었을까요? 하느님을 그렇게 이용해도 되는 거구나....하고 생각할 사람은 없었을까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지만, 정답은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마음을 돌린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드러나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해서일 수도 있고, 하느님을 두려워해서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어떤 것이 나은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것입니다. 하느님은 심판으로 사람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우리 삶에 언젠가 다가올 심판은 하느님이 노려보고 있다고 우리에게 주는 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만들어내는 결과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느님보다 높고 강한 존재로 살 자격이 있다고 우기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산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세상에서는 그저 내 생각과 마음대로만 살아도 좋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83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