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2011-1016.....하느님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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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10-15 ㅣ No.1098

연중 29 주일 (가해)

이사야 45,1.4-6              1테살로니카 1,1-5ㄴ             마태 22,15-21

2011. 10. 16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선언

열 길(=24m~30m) 물속은 알아도 한 길(=2.4M~3.0M/사람의 키)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길이를 계산하여 비교하면,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사람의 속이 그 열배나 되는 물 속 깊이보다 더 복잡하고 그 속을 알아보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할 표현입니다.

  저는 학생시기에 한때는 단순한 사람보다는 복잡하고도 신중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지금 말씀드린 속담의 진짜 의미를 몸으로 알아듣기 이전이었는데, 학생의 객기(客氣)로 드러낸 말이요 태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를 좀 더 먹고 속담의 의미를 새기면서, 속담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복잡하게 드러난다거나 알아듣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하면서,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을 대했습니다. 질문입니다만, 사람의 마음속은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할 물속의 상황보다 복잡해야 정상일까요?

  세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의 마음씀씀이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칭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내가 남을 나쁘게 말하면서 좋은 것을 얻을 수는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보고, 영어문자를 써서 포지티브 액티브라고 해서, 긍정적인 힘이 더 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부정적인 것보다 더 많으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정말 그렇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렇게 말씀드리는 포지티브 액티브라는 말의 의미가 아주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이런 포지티브보다는 네거티브방식을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선호한다는데 안타까움이 더 큽니다.

  사람이 일부러 하는 것이든, 장난으로 하는 것이든, 별 생각 없이 하는 것이든 네거티브 방식을 좋아하면, 그의 삶도 부정적인 것으로 변합니다. 사람이 입에 발린 소리로는 긍정의 힘이 강하다고 아무리 말한다고 해도, 그 안에 담겨있는 마음이 네거티브라면, 자기의 삶을 긍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은 첩첩산중을 헤매듯이 아주 힘든 일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네거티브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은 삶에서 그렇게 부정적인 태도가 삶에서 좋은 결실을 보기 전에 그의 인생은 황혼기에 도달할 것이고, 그런 사람의 삶은 긍정적인 것의 힘을 체험하지도 못하고 맙니다.

오늘 복음말씀에는 로마민족의 통치에 협력하면서, 자기들의 지혜를 자랑했을 바리사이 사람들이 잔머리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의 의미를 새기는 자리에서 잔머리라는 말을 해석하자니, 듣는 사람이나 말을 하는 사람이나 좋아할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남들 앞에서 잔머리를 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그 상황을 알아챌 거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합니다. 세상에 잔머리를 쓰는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진실하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지 않는 분이시고, 사람을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 분이시라고 저희가 압니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바리사이들은 그들의 천성이나 태생과는 아주 다르게, 예수님을 한없이 높은 자리에 올라앉으신 분으로 무척이나 존경하는 분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그들의 입을 통해서 나온 세금에 대한 문제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자기들이 예수님을 한껏 칭찬한 것은 그분을 옭아매기 위한 것이었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별하여 제대로 드러내는 사람들일까요?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사람을 구별하여 칭찬하자거나 욕하자는 의도로 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칭찬이나 욕은 이 세상의 일들에게서나 의미가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일부러 혼동해서 대하는 사람들에게나, 그 중요성을 구별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탓을 하든지 꾸중을 하든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드러내야 할 가식적(假飾的)인 행동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잔머리를 쓰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겉포장은 아주 잘하면서 거짓된 행동을 할 때, 하느님이 그것을 구별하지 못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도 어리석은 자가 가는 길입니다. 사람이 가야할 올바른 길은 착각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입니다.

  이사야예언자가 선포하는 말씀에 등장하는 키루스 임금은 하느님의 훌륭한 선택을 받기 위해서 가식적인 행동을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는 민족의 임금이었습니다. 이 키루스 임금이 하느님에게서 축복을 받으려고 히브리민족의 해방을 선포했던 것도 아닌데, 하느님께서는 키루스 임금이 드러낸 정성을 보시고 그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가 선한 일을 했다는 권리주장에 따른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하느님만이 보실 수 있는 특별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그때 우리가 드러내는 행동은 하느님의 선택에 감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둘도 없는 스승님이라고 한껏 치켜세우면서, ‘세금에 관한 문제,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느냐?’를 물었던 바리사이와 그 제자들의 마음속을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겠습니까? 정답을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드러내는 마음씀씀이와 행동방식에 따라 이미 하느님의 선택은 우리 안에서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올바르게 구별하고, 올바른 결실을 맺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에 감사하는 자세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저희의 생각과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바른 길로 가도록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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