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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매주 읽는 단편 교리: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드려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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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22 ㅣ No.3867

[매주 읽는 단편 교리]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드려도 되나요?

 

 

한국 천주교회는 조상 제사 문제와 관련하여 큰 고통을 겪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주교가 조선에 전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1790년 말, 북경교구장 구베아(Gouvea, 중국명 湯士選) 주교는 조선교회에 조상 제사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윤유일 바오로가 전해온 이 지침에 따라, 전라도 진산에 살던 윤지충 바오로와 외종사촌 권상연 야고보는 1791년 조상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웠습니다. 바로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유명한 ‘진산사건’인데, 이를 계기로 1791년 조선 최초의 천주교 박해인 신해박해가 일어납니다. 이후, 약 100년간 우리 땅에서는 참혹한 박해가 이어졌습니다.

 

20세기에 들어 가톨릭교회에서는 조상 제사를 허용하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토착화에 대한 재인식과 비그리스도교 민족 안에 내재한 영적 요소들과 가톨릭과의 조화, 동방 민족들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이해와 통찰, 미신적 요소의 감소 등입니다. 1935년 교황 비오 11세는 공자 존경 의식을 허용하고, 이듬해 일본의 혼인과 장례 등 사회 풍습에 대해서도 폭넓은 조치를 하였습니다. 1939년 중국 예식에 대한 훈령에서는 시신이나 죽은 이의 상, 단순한 이름이 기록된 패에 존경 의식을 행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도 상례와 제례의 지침을 정하고, 시신이나 무덤 또는 고인의 이름이 적힌 패 앞에서 절과 분향, 음식을 차리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미신적 요소가 있는 예식은 금지하였는데, 혼령이 제물을 흠향하도록 잠시 문을 닫는 합문(闔門), 혼을 다시 불러들이는 고복(皐復), 사자(使者)가 죽은 이의 혼을 고이 모시고 가라고 차려 놓는 사잣밥이나 신발을 놓는 것입니다. 또한 위패는 신위(神位)라는 글자 없이 이름만 쓰도록 하였습니다(‘한국 천주교 가정제례 예식’과 ‘설·한가위 명절 미사 전이나 후에 거행하는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공동 의식에 관한 지침’ 참조).

 

가톨릭교회가 조상 제사를 허용한 건 그리스도교 신앙을 해치거나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교 문화와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해하는 유교의 조상 제사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축복을 대체하는 게 아니며, 자녀로서 생명을 전달받은 부모와 선조에게 보은의 효도를 계속 실천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미신적 요소를 빼고 드리는 그리스도인의 제사는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십계명을 실천하는 방법이 됩니다.

 

[2023년 1월 22일(가해) 설(하느님의 말씀 주일) 의정부주보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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