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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세계] 그림으로 읽는 교회사: 불안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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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29 ㅣ No.977

[그림으로 읽는 교회사] 불안한 풍경

 

 

사물의 감정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전임 교구장의 유품을 정리해야했다. 응접실 탁자위에 스케치북 한 권이 주인이 다시 펼쳐들 것 같은 모양으로 놓여있다. 기껏해야 두어 해 개인 지도를 받으며 틈틈이 그려왔을 그림들. 선긋기부터 삼각뿔 소묘, 연필과 목탄을 사용한 습작들이 전부다. 짐작하긴 어렵지만 직책의 중압감에 어떻게든 여백을 만들고 싶었을 테다. 수채화 한 장이 낱장으로 끼어있다. 진녹빛 나무 그늘이 낸 좁다란 길 끝에 한여름 오후 햇살을 뒤집어쓴 시골집 지붕이 반짝인다. 끄트머리가 닳아버린 오래된 개인 앨범 속 봄날 같던 사제가 세월을 한참 가로질러 이 자리에 앉아 도화지 위에 물감을 칠했을 핏기 없는 그 밤이 생각났다. 제 아무리 두터운 옷을 걸쳤어도, 높은 자리에 앉았어도 인간은 혼자만의 밤에는 모두 상처 받은 인간인 것이다. 주인 잃은 옷가지들과 먼지 앉은 책들, 창을 타고 들어온 가을 햇살, 그날, 그 방안 풍경 모두가 애잔했다. 감정이 내려앉은 사물이랄까, 아니면 사물의 감정이랄까.

 

 

대상과 대상의 묘사

 

흔히 말하는 실체적 진실, 객관적 사실 따위가 과연 존재할까. 모든 것은 보는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물이나 풍경이어도 감정을 모두 말려버린 순결한 실체란 애초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이차원의 평면에 담겨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이미 작가라는 해석의 필터로 걸러진 것들이다. 선종한 교구장의 방 안에서 내가 담아온 그날의 화면들처럼 말이다. 빛과 그림자만으로 모든 계절을 오가며 바람에 흩날리다가도 언제라도 공허한 어둠에 관람자를 밀어 넣을 수 있는 것이 작가다. 역사적 사건의 묘사나 의도된 구성, 과거라는 저마다의 내력을 지닌 인간의 초상에서 이 ‘해석’은 극점에 도달한다. 나름의 견해가 있고 말하고자하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강한 내러티브에서 풍경화는 비교적 자유롭다. 있다손 치더라도 절제되거나 대개 진부한 패턴일 뿐이다. 작가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고 감상자에게 생각의 여백을 내주는 영역이다. 그러나 이런 통념에서 벗어난 화가가 있다. 아메리카 사실주의의 대표라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다.

 

 

말을 걸어오는 풍경

 

호퍼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난 이름도 몰랐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 선생은 그림에 재주가 있는 아이들을 방과 후에 따로 모아 모작을 시켰다. 대개는 도록의 유명 작가의 그림을 베꼈는데 호퍼의 작품만은 낱장인 채였다. 이름도 제목도 알 리 없었다. 한참 자란 후에야 그 그림이 1927년 작품, ‘등대가 있는 언덕’(Lighthouse Hill)이란 사실을 알았다. 어린 눈에도 무척 이상했다. 언덕과 하늘이 절반으로 나뉜 화면 한 가운데 건물이 놓여있다. 매끄러운 풀밭은 고사하고 거칠게 엇갈리며 올라가는 구릉에 가까운 언덕, 숨 막히는 구도, 과한 콘트라스트. ‘등대’라는 알 수 없는 향수를 뿜어내는 대상을 이토록 멋없게, 아니 불쾌하게 그릴 수 있다니. 그런데 호퍼의 거의 모든 풍경화가 그렇다. 호퍼를 유명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 ‘철로 옆의 집’(House by the Railroad, 1925)이 히치콕 감독의 저 유명한 공포영화 ‘새’에 영감을 주었다는 풍문은 결코 허튼 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고함도 눈물도 웃음도 없는 공간과 풍경이 그렇게 화면에서만은 말을 걸어온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

 

혹자는 호퍼가 그린 풍경이 ‘꿈을 위협할 것’같고, 인물은 하나같이 ‘정말로 버려진 것’ 같다고 평하지만 형태를 왜곡하거나 특이한 색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화면 속 대상들은 빛을 충분히 받아 맑고 분명한 색들이지만 생동감이 없고 분명 실재하는 공간들이지만 어딘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이다. 언뜻 보아선 일상을 아무렇게나 담아놓은 스냅사진처럼 무심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스럽지만 인공적이고, 익숙하지만 낯설고, 무심하지만 치밀하다. 실제로 호퍼는 어떤 화면이라도 수차례 습작을 통해 치밀하게 기획했다.

 

자신의 감정을 형태의 왜곡 같은 극적 장치로 최대한 충실히 화면에 옮겨놓아 보는 이에게 감흥을 주는 보통 작가와는 달리, 호퍼는 감상자와 그 사이를 오히려 멀찌감치 벌려둔다. 사진처럼 사실적인 공간들과 절제된 자연스런 색, 클로즈업되는 법 없이 무대장치처럼 항상 뒤로 물러나 있는 인물들이 그 둘 사이의 이격(離隔)이다. 그러나 그 빈 공간에 감상자는 돌연 갇히고 만다. 공감하든지 말든지 선택만 남은 다른 작품과는 달리 호퍼가 설정한 화면은 자신이 경험한 감정에 감상자를 옭아맨다. 불안과 공허, 고독을 불러오는 화면의 시선은 고스란히 나의 시선이 된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고 체험을 그린다’는 호퍼의 주장은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깃들지 못하는 인간

 

젊은 시절 두어 차례 유럽에 머물면서도 정식 미술학교를 뒤로한 채 방랑하듯 도심 곳곳을 화폭에 담았던 호퍼도 고국에선 어쩔 수 없는 생활인이었다. 잡지에 삽화를 그리는 일을 얻었지만 건축물의 구조에 심취한 화가에게 활동하는 사람을 그리길 요구하던 잡지사는 오래갈 수 없는 직장이었다. 후기 작품에서도 화면에 그려 넣은 인물들은 차가운 건축물처럼 하나같이 무미건조하다. 격정도 사랑도 모두 빠져나가 버린, 구조물 사이에서, 구조물의 일부처럼 무심하다. 큐비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같이 작가의 개성과 정신의 극대화로 치닫던 동시대 미술운동의 흐름과 비교하자면 호퍼는 분명 다른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풍경도 인물도, 그 어느 쪽도 중심에 두지 않는 이 모호함으로 오히려 당대 어떤 유파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어떤 것도 주인일 수 없는, 모두 떠나왔거나 떠나보낸, 정착하지 못하는 고독 말이다.

 

흰 테이블만큼 창백한 얼굴의 여자가 앉아있다. 한손에 여전히 장갑이 끼어있는 것으로 봐선 금세 어디론가 다시 떠날 사람이다. 뒤로는 사위를 분간할 수 없는 밤이 있다. 무한정 반복되며 소실되어가는 인공 불빛의 길이만큼 분명 깊은 어둠일 것이다. 마주한 자리가 흐트러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선 다시 홀로 저 어둠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무인가게’로 번역되어 소개된 1927년 작품, Automat이다. 미국에 가본 적 없으니 이것이 도로변에 늘어선 휴게소 같은 것인지, 번역대로 점원 없는 가게인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절묘한 제목이다. 누구나 홀로, 낯선 곳에 있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이 느낌을 전하는 것이었을 테다. 작품속의 인물들은 막 떠나왔거나 떠나보낸 듯 혼자이고, 함께 있더라도 마주하지 않는다. 시선은 자기 내면을 응시하듯 고요하거나 저 멀리, 아예 화면 밖 어디론가 던져져 아득하다.

 

 

호퍼와 과르디니

 

중세와 근대가 교차되는 시기를 강의할 때면 즐겨 거론하는 두 사람이 있다. 호퍼, 그리고 ‘근대의 종말’을 쓴 이탈리아계 독일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1968)다. 엉뚱 맞은 조합 같지만 이 격랑의 시기를 이해하는데 내게 이보다 더 적절한 영감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둘 모두 경제대공황, 일이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극단의 세기를 관통한 인물이다. 첨단 문명이 대량살상이라는 가장 야만적 행위에 사용된 인간 진보의 신화가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본 이들이다. 인간은 풍요로워졌지만 헛헛하고, 안전한 도시를 꾸렸어도 안락한 집을 얻은 것은 아니다. 혹자는 호퍼 작품의 중심 주제가 기다림과 고독이라지만 내게 그것은 ‘깃들지 못함’이다. 자연으로부터 단절되고 문명이라는 공간에 유폐된 인간은 과르디니의 표현대로 뿌리내릴 곳 없이 쉼 없이 부유할 뿐이다. 카페, 술집, 극장, 휴양지, 호텔 방, 모두 언젠간 떠나야만 하는 공간에 계류할 뿐인 호퍼의 인물들처럼 말이다.

 

과르디니에 따르면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과거 교회의 과할 정도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역시 새로운 우주관과 교리의 충돌이라는 흔하고 두루뭉술한 말을 반복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존 세계관의 붕괴 이후 벌어질 일들을 교회가 무의식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다. 창조의 중심에 땅이 있고 스스로를 그 동심원 한가운데의 존재라고 여겼던 인간에게 돌연 지구가 다른 별들과 다를 바 없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주관의 변화만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상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관의 왜곡이다. 동심원 한가운데의 인간은 땅에 대한 권리와 함께 그만큼의 책임도 느꼈지만 이제 그에게 땅은 있는 대로 쥐어짜도 상관없는 대상이자 자원이고, 그 스스로도 창조의 우연적 존재일 따름이다. 기원도 목적도 없이 부유하는, 그저 소비하고 생존하는 존재 말이다. 과르디니의 말은 언뜻 듣기엔 이미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옹호나 막연한 향수 같다. 실제로 그는 삶의 터전으로 삼기엔 이미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진, 모터보트의 진동을 언제까지 견뎌낼지 모른 채 관광거리로 쇠락해가는 베네치아와 같은 옛 도시들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아쉬움을 단순히 소멸해버린 과거 문명에 대한 그리움으로만 볼 순 없다. 기계문명의 도래는 자신만만히 ‘인간의 시대’를 열어젖혔지만 인간은 사실 호퍼의 군상처럼 더 고독하고 허무해졌기 때문이다.

 

 

다가올 문명에 대하여

 

만무한 일이지만 만일 내게 회칙 ‘찬미 받으소서’의 편집을 맡겼다면 겉표지는 분명 호퍼의 작품 중 하나였을 것이다. 회칙에 따라붙는 ‘생태회칙’이라는 부언 역시 탐탁지 않다. 문헌은 비단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에 대한 이야기 너머 근대에 대한, 아니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명, 인간 전체에 대한 재고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부터든, 기계과학의 출현부터든 근대라는 전혀 다른 시대를 맞이한 교회는 무척 당황했다. 가라앉는 세상에 대한 집착인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나선 인류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연일 단죄의 말을 쏟아냈고 스스로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길 원했다. 비오 9세의 ‘오류목록’(Syllabus, 1864년 회칙 Quanta cura의 부록)처럼 이 새로운 세상은 ‘오류’일 따름이었다.

 

세계대전이라는 근대의 몰락을 목도한 교회에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인류와 대화를 재개할 자신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옛 세상에 대한 복원이 교회의 역할일 순 없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역할이라면, 호퍼의 그림 속 군상들의 화면 밖 어디론가 뻗어나간 아득한 시선에 초점을 찾아주는 것이겠다. 그것을 전망, 영감, 또는 다른 무엇으로 부르든 제 손으로 건설한 문명의 구조물에 갇혀버린 인간이 그 다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7년 가을호(Vol. 39), 장동훈 빈첸시오 신부(인천 교구 중1동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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