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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선조를 움직인 한 권의 책: 신앙생활의 입문을 위한 묵상서, 은총으로 가는 첫걸음 신명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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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05 ㅣ No.972

[신앙 선조를 움직인 한 권의 책] 신앙생활의 입문을 위한 묵상서, 은총으로 가는 첫걸음 《신명초행》

 

 

마리 다블뤼 주교의 생애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A. Daveluy, 1817-1866년)는 1817년 3월 26일 프랑스 아미앵(Amiens)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아버지는 공장을 경영하며 시의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프랑스의 전통적인 가정으로 가족 모두가 모범적인 신앙생활과 함께 덕행의 꽃을 피웠던 집안이었다. 그의 형제 중 2명이 사제가 되었고, 3명은 수녀가 되었다. 그는 어렸을 때 상냥한 성격이었으나, 억세고 침착하지 못한 성격을 고치려고 그의 부모는 특별히 교육에 힘썼다고 한다.

 

그는 1827년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생 아쉬르 기숙사에 입사하여 그 이듬해인 1828년 첫영성체를 하고 얼마 후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러나 기숙사가 곧 문을 닫게 되자 그는 생 리퀴에르(St. Riquier) 소신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사제직에 뜻을 두고 1834년 10월, 이시 레 몰리노(Issy-les-Moulineaux)에 있는 생 쉴피스(St. Sulpice)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 1840년 12월에 부제품을 받고, 이듬해인 1841년 12월 18일 사제로 서품되어 주교의 명에 따라 르와예(Roye) 본당의 보좌신부로 사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해,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전교 신부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고 예수회에 입회를 간청하였다. 하지만 그는 1843년 10월, 예수회가 아닌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함으로써 꿈을 이루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가 되어 1844년 2월 6일 해외선교를 위해 류큐(琉球) 지방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1844년 9월 마카오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정치와 종교의 마찰로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그때 마침 제3대 조선교구장에 임명되어 조선으로 입국을 시도하고 있던 페레올 주교의 권유를 받아들여 조선 선교사에 임명되었다. 이때 그는 부모님께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이제 저는 여러 해 동안 신부 없이 지내는 나라인 조선의 전교를 맡게 되었으니 큰 행복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그러한 곳으로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혹 슬픈 마음이 드시거든, 우리 하느님의 허락 없이는 사람의 털 하나도 뽑지 못할 것임을 깊이 생각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보낸 다블뤼는 고 페레올 주교와 함께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1845년 7월 상해에 도착했고, 같은 해 10월 12일에는 서품을 받은 지 몇 달 안 되는 김대건 신부와 함께 충청도 강경 황산포에 도착하였다. 이때부터 1866년 3월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그는 당시 조선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선교사가 되었고, 조선의 언어와 풍습에도 능통하게 되었다.

 

그는 조선에 들어와 자신의 조선 이름을 안돈이(安敦伊)로 지었다.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전교 활동을 하다가 1857년 부주교로 승품되었다. 이보다 앞서 1856년에는 충청도 제천의 배론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를 세웠으며, 1859년에는 조선교회의 순교자 150여 명의 자료를 수집 및 기록하여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로 보내 이것을 《다블뤼의 비망록》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했다.

 

1866년(고종3) 병인박해 때 베르뇌 주교가 체포되어 3월 8일에 참수되자 그의 뒤를 이어 제5대 조선교구장이 되었다. 하지만 교구장으로 임명된 지 3일 후인 11일 충청도 보령 갈매못에서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 끝에 3월 30일 참수되었다.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행사 때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의 저서에는 《신명초행(神命初行)》, 《회죄직지(悔罪直指)》, 《영세대의(領洗大義)》, 《성찰기략(省察記略)》 등이 있고, 역서에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 《천주성교예규(天主聖敎禮規)》, 《천당직로(天堂直路)》 등이 있다.

 

 

《신명초행》의 구성과 내용

 

1) 구성

 

다블뤼는 보좌주교 시절 불어로 된 신앙생활 묵상서인 《팡세이비엥(Pensez-y-bien, ‘그것을 잘 생각하라’)》이라는 책을 대본으로 하여 저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대본으로 삼았다는 그 책은 오늘날 파리외방전교회 도서관이나 그 밖의 프랑스 주요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은 베르뇌(Berneux, S. F. 張敬一) 주교가 감수하여 1864년 서울의 목판 인쇄소에서 상·하 2권으로 간행된 바 있다.

 

‘신명(神命)’이란 말은 ‘하느님이 우리 영혼을 위해 내려주시는 초성(超性)한 생명인 상존성총(常存聖寵, 생명의 은총)’을 뜻한다. 그리고 ‘초행(初行)’은 글자 그대로 ‘첫걸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을 풀어 보면 ‘상존성총을 얻는 첫걸음’이 된다. 이 책은 신도들에게 은총으로 가는 첫걸음으로 묵상기도를 가르쳐 주고자 했다. 물론 이 책이 간행되기 이전에도 《묵상지장(默想指掌)》이라는 묵상서가 있었으나, 묵상 제목이 없었으므로 이러한 결함을 보충하여 역술되었다.

 

《신명초행》은 서(序)를 포함하여 전체 3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권 19장은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죄를 짓지 말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 통회해야 하며, 그러기 위하여 항상 ‘죽음 · 심판 · 천당 · 지옥’의 사말(四末)을 생각하며 묵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하권 14장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 말고 소죄를 피하며 항상 애주애인하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영혼 구원의 길임을 밝히고 있다. 각 장의 초사(初辭)에서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묵상의 자료를 제시하고, 계사(繼辭)에서는 묵상의 주제를 해설하며, 종사(終辭)에서는 묵상을 마무리 짓고 있다.

 

이 책은 판을 거듭하면서 19세기 후반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책으로 널리 보급되었으며, 1938년 성서 활판소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2) 내용

 

《신명초행》은 박해 시대 신도들에게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심을 키워 주었고, 그리스도의 가난함을 본받아 스승이자 모범으로 삼아야 함을 설명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모든 이에게 본보기가 되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케 해 주었다.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되어 하느님의 본성에 상접하게 되었으니 하느님처럼 고귀한 존재’라고 말하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르침을 알기 쉽게 풀어 전하고 있다. 또한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주의 모상과 함께 ‘영혼과 자주장(자기주장대로 함)을 주었다’고 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깨우침을 주고 있다.

 

 

《신명초행》의 의의

 

“《신명초행》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읽히고 있었던 책들 가운데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강력하게 제시해 주고 있던 책이었다. 그것은 당시 양반들이 한문으로 저술했던 그 어떤 책에서도 언급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르침을 19세기 후반기를 살았던 민중에게 제시해주었다. 그것은 만인들의 새로운 철학서요 종교서였다. 또한 이 책은 박해시대 신도들의 영성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제외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명초행》은 한국사와 교회사에서 그리고 한국 사상사 분야에서 모두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사료인 것이다.”(조광)

 

 

참고 문헌

• 한국학중앙연구원, ‘신명초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10.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교회사 연구자료 제17집 《신명초행》, 태영사, 1986.

• 김옥희, 《103위 성인전》, 도서출판 순교의 맥, 2004, 316~319쪽.

• 조광, 「신앙 유산, 새 생명에의 초대 - 은총으로 가는 첫걸음, 신명초행(神命初行)」, 《경향잡지》 1993년 8월호, 80~83쪽.

 

[평신도, 2018년 여름호(VOL.60), 정리 이귀련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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