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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2012년 제27차 청소년주일 교황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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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5-12 ㅣ No.455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제27차 청소년 주일 담화문

(2012년 5월 27일)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필리 4,4)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제27차 청소년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해 8월 마드리드에서 가진 우리의 만남은 여전히 제 마음에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1년 세계 청년 대회는 주님께서 세계 각지에서 참석한 젊은이들에게 풍성한 복을 내려 주신 특별한 은총의 때였습니다. 이 대회의 모든 결실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이 결실은 젊은이들과 그 공동체들에서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2013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릴 다음 세계 청년 대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주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 참조)가 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필리 4,4). 올해 청소년 주일의 이 주제는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나오는 권고입니다. 사실, 기쁨은 그리스도인 경험의 핵심 요소입니다. 해마다 청소년 주일에 우리는 큰 기쁨을 누립니다. 친교의 기쁨, 그리스도인이라는 기쁨, 신앙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기쁨은 젊은이들의 만남이 지닌 특징입니다. 기쁨은 모든 사람을 이끌어 들이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슬픔과 불안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기쁨은 그리스도 신앙이 참으로 아름답고 의지할 만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기쁨을 전할 소명이 있습니다. 이는 참되고 영원한 기쁨,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날 밤에 천사들이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전해 준 그 기쁨입니다(루카 2,10 참조). 하느님께서는 그저 말씀만 하시거나 인류 역사에서 놀라운 기적들만 이루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똑같이 사셨습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여러분 주위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기쁨과 희망의 소식이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 기쁨에 관하여 그리고 이 기쁨을 찾는 길에 관하여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이 기쁨을 더 깊이 체험하고,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이와 이 기쁨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1. 우리 마음은 기뻐하도록 빚어졌습니다

 

기쁨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마음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즉각적이고 덧없는 만족감을 넘어서, 우리 마음은 삶에 참 ‘맛’을 줄 수 있는 충만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기쁨을 찾습니다. 이것은 특히 여러분에게 맞는 말입니다. 젊음은 끊임없이 인생과 세상, 자신과 타인을 발견해 나가는 시기입니다. 또한 젊음은 행복과 우정, 나눔과 진리를 갈망하며 커다란 포부를 안고 드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미래를 향해 열린 시기입니다. 

 

날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단순한 기쁨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살아있다는 기쁨,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주하는 기쁨, 잘된 일에 대한 기쁨, 다른 이들을 돕는 기쁨,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의 기쁨이 있습니다. 세심히 살펴보면, 우리가 기뻐할 이유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가정에서 누리는 행복한 시간들, 우정을 나누고, 저마다 재능을 발견하고 성공을 거두는 기쁨, 다른 이들의 칭찬을 받고, 자신을 표현하고 이해받았다는 기쁨,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느낌을 들 수 있겠습니다. 또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며, 여행과 만남으로 시야를 넓히고, 미래 계획을 위한 가능성을 찾는 기쁨도 있습니다. 또 문학 작품을 읽고, 예술품을 감상하며,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고, 영화를 보는 것, 이 모든 경험이 실제로 우리에게 참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날마다 많은 어려움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 우리가 갈망하는 충만하고 영원한 기쁨이 한낱 환상이나 현실 도피는 아닌지 의심스러워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자문합니다. ‘오늘날 완전한 기쁨이 실제로 가능한가?’ 기쁨을 찾는 길은 여러 갈래입니다. 때로는 잘못되거나 심지어 위험하기도 합니다. 영원한 참 기쁨과 즉각적이고 헛된 쾌락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삶 속에서 참 기쁨을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어려운 순간에도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 영원한 기쁨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2. 하느님은 참 기쁨의 원천이십니다

 

곧바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든 인생의 커다란 기쁨이든 참 기쁨은 하느님에게서 솟아납니다. 하느님은 영원한 사랑의 친교이십니다. 하느님은 무한한 기쁨이십니다. 이 기쁨은 자기 안에 닫혀 있지 않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를 그러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시어,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당신의 현존과 은총으로 우리를 채워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하고 영원한 기쁨을 우리와 함께 나누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사랑하신다는 데에 우리 삶의 가장 깊은 의미와 가치가 있음을 우리가 깨닫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무조건 받아들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세상과 역사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몸소 저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받아주시고 사랑하시며 제가 그 사실을 확신하게 되면, 저는 살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분명하고도 확실히 알게 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드러납니다. 우리가 찾는 기쁨은 바로 그분 안에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삶이 기쁨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동정 마리아에게 구원자의 어머니가 되리라고 예고할 때 그의 첫마디는 “기뻐하여라.”(루카 1,28)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주님의 천사는 목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0-11). 또한 그 아기를 찾던 동방 박사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습니다”(마태 2,10). 이 모든 기쁨의 연유는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이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한 말도 그러한 뜻이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필리 4,4-5). 우리 기쁨의 첫째 이유는 나를 따뜻이 맞이하시고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가까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커다란 내적 기쁨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복음서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정직한 세관장 자캐오를 방문하셨던 때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만인의 지탄을 받는 이 죄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자캐오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고 루카 성인이 전해 주고 있습니다(루카 19,5-6 참조). 이것이 주님을 만나는 기쁨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기쁨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의 온 삶을 바꾸고 구원을 가져다줍니다. 자캐오는 자신의 삶을 바꾸어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다는 결심합니다.

 

이 사랑은 예수님의 수난 때에 가장 힘차게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지상에서 당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제자들과 만찬을 드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9.11).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께서 아버지와 나누신 충만한 기쁨으로 이끌고자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요한 17,26 참조).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하느님의 사랑에 자신을 열고 하느님께 속하는 데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여자들이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을 찾았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천사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복음사가가 말한 대로, 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평안하냐?”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28,8-9 참조). 그들이 받은 것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살아계신 분으로 악과 죄와 죽음을 물리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분으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며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마태 28,20 참조). 악은 우리 삶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승리한다는 것을 압니다.

 

이 충만한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삼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선하심을 경험하고 맛보며 “아빠!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십니다(로마 8,15 참조). 기쁨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시며 활동하신다는 표징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마음 깊이 간직하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이 충만한 기쁨, 영적 기쁨의 선물을 어떻게 받고 간직할 수 있는가?”

 

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네 마음이 청하는 대로 그분이 주시리라”(시편 37[36],4).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영적 기쁨을 찾고 간직하는 것은 주님과의 만남이 맺는 열매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를 것을, 우리의 온 삶을 당신께 바치는 결정적인 선택을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위하여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마음의 평화와 참 행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하느님과 비슷하게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충실히 살아가는 길입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기쁨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이는 날마다 주님의 현존, 주님의 우정을 깨닫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십니다”(필리 4,5 참조). 주님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그분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곧 맞이할 ‘신앙의 해’는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돕고 힘을 북돋아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를 깨달으십시오, 여러분의 일상에서 겪는 일들 안에 숨어 계신 그분을 찾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세례 받던 날 여러분과 맺으신 약속에 늘 충실한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을 저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주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어 십자가 위에서 당신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이 위대한 사랑을 생각하면, 그 무엇도 깨뜨릴 수 없는 희망과 기쁨이 우리 마음에서 솟아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슬퍼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삶 속에서 주님을 찾고 만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마음의 기쁨이 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예레 15,16).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법을 익히십시오. 거기에서 진리에 관하여 여러분이 마음에 품고 생각해 오던 가장 심오한 물음에 대하여 답을 찾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드러내고 우리가 기쁨에 넘쳐 찬미와 흠숭을 드릴 수 있게 해 줍니다. “어서 와 주님께 노래 부르세. …… 어서 와 엎드려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시편 95[94],1.6). 

 

전례는 이 기쁨이 표현되는 탁월한 자리입니다. 교회는 주님께 받은 기쁨을 세상에 전달합니다. 주일마다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구원의 핵심 신비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합니다. 이 날은 주님의 사랑의 희생 제사가 재현되기에 주님의 모든 제자에게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또한 주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날입니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 118[117],24). 부활 성야에 교회는 죄와 죽음을 물리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기뻐하며 부활 찬송을 노래합니다. “용약하여라, 하늘나라 천사들 무리, …… 땅도 기뻐하여라, 찬란한 광채 너를 비춘다. …… 백성의 우렁찬 찬미 소리 여기 들려온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서 생겨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시고 악과 죽음을 물리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젊은 가르멜 수녀였던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저의 기쁨입니다!”(「시집」45, 1897.1.21.).

 

 

4. 사랑의 기쁨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기쁨은 사랑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기쁨과 사랑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성령의 두 열매입니다(갈라 5,23 참조). 사랑은 기쁨을 낳고 기쁨은 사랑의 한 모습입니다.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 복자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기쁨은 영혼들을 낚는 사랑의 그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기쁘게 주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줍니다.” 하느님의 종 바오로 6세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바로 하느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주는 것이기에, 모든 것이 기쁨입니다”(교황 권고「그리스도인의 기쁨」, 1975.5.9.). 

 

여러분 삶의 다양한 자리를 생각하며, 저는 사랑은 변함없고 성실하며 약속에 충실한 것임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우정에 해당됩니다. 우리 친구들은 우리가 진실하고 성실하고 충실하기를 기대합니다. 참 사랑은 어려울 때에도 한결같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일이나 학업, 봉사 활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충실하고 한결같은 선행은 그 즉시는 아니더라도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사랑의 기쁨을 누리려면 우리는 또한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최소한의 것을 주는 데 만족하지 말고,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공동선을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유능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여러분의 재능을 키우고, 지금부터 이웃에게 봉사하는 데에 그 재능을 쏟으십시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한층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으십시오. 여러분은 평생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권력과 물질적 성공, 돈을 쫓지 마십시오. 

 

너그러움과 관련하여 저는 아주 특별한 기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 자신의 온 삶을 봉헌하라는 부르심에 응답할 때 경험하는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수도 생활이나 선교 생활 또는 사제직으로 여러분을 초대하시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오롯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는 데 헌신하라는 초대입니다. 그분께서는 이러한 당신의 초대에 응답하는 모든 이들을 기쁨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이와 마찬가지로, 가정을 이루고 당신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 사랑의 징표가 되고자 혼인을 통하여 서로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어 주는 남녀들에게 주님께서 마련하신 기쁨도 참으로 큽니다.

 

이제 여러분을 사랑의 기쁨으로 이끄는 세 번째 요소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 공동체의 삶 안에서 형제적 친교를 키워가는 것입니다. 친교와 기쁨은 서로 밀접히 이어져 있습니다. 바오로 성인이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필리 4,4)라고 한 권고는 공동체의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말씀이라기보다는 공동체 전체를 향한 권고입니다. 형제적 친교를 나누며 더불어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이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첫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었다”(사도 2,46). 여러분 또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나눔과 관심과 배려의 탁월한 자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5. 회개의 기쁨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참 기쁨을 경험하려면 우리를 그 기쁨에서 멀어지게 하는 유혹들도 식별하여야 합니다. 지금의 문화는 종종 즉각적인 목표나 업적, 쾌락을 쫓도록 부추깁니다. 인내하고 노력하고 약속에 충실하기보다는 쉽게 마음을 바꾸도록 조장합니다. 이 문화가 주는 메시지는 소비 논리를 내세우고 거짓 행복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소유가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재물에 둘러 싸여 있으면서도 절망과 슬픔에 가득 차 허무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영원한 기쁨을 누리려면 사랑과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의 여정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계명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면 생명과 행복의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 계명이 금령의 목록으로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비추어 그 계명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그 계명들이 하느님의 계획에 맞갖은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본질적이고 소중한 삶의 지침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서 멀어진 삶을 살 때 실망과 슬픔, 좌절감에 빠지게 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고 하느님의 우정을 모욕하는 죄를 지었을 때 우리 마음에는 그늘이 드리워집니다.

 

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 길은 늘 쉽지만은 않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충실하다보면 장애물을 만나기도 하고 심지어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 되돌아와 당신과 화해하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환대하시는 그분 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고해성사를 자주 보십시오! 이 화해의 성사는 기쁨을 되찾는 성사입니다. 여러분의 죄를 깨닫게 해 주는 빛과 하느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힘을 성령께 청하십시오. 고요하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이 성사를 자주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두 팔 벌려 맞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정화시키시고 당신의 기쁨에 함께하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입니다(루카 15,7 참조).

 

 

6. 시련 속의 기쁨

 

그러나 결국 우리는 삶의 온갖 시련 속에서도, 특히 너무도 고통스럽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시련 속에서도 정말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 듭니다. 주님을 따르고 믿으면 언제나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여러분과 같은 젊은이들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힘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빛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였습니다. 피에르 조르지오 프라사티 복자(1901-1925)는 그의 짧은 생애 동안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실연도 경험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누이동생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내게 기쁘냐고 물어보았지? 내가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니? 믿음이 내게 힘을 주는 한 나는 언제나 기쁘단다.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기쁘지 않을 수 없단다. ……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위해서는 가시밭 길도 걸어야 하지만 결코 슬픈 길은 아니란다. 고통 속에서도 기쁨이 되는 길이란다”(누이동생 루치아나에게 보내는 편지, 토리노, 1925.2.14.). 요한 바오로 2세 복자는 그를 젊은이들의 본보기로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젊은이였습니다. 이 기쁨으로 그는 삶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젊은이들에게 한 연설, 토리노, 1980.4.13.).

 

우리와 더 가까운 때에 살았고 최근에 시복된 키아라 바다노(1971-1990년)는 어떻게 고통이 사랑으로 바뀌고, 고통 안에 기쁨이 신비롭게 깃들어 있는지를 체험하였습니다. 열여덟의 나이에 암으로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키아라는 자신이 속한 단체의 젊은이들을 위하여 성령께 기도 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치유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젊은이들을 모두 당신 성령의 빛으로 비추시어 그들에게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현존의 순간이었습니다. 제 몸은 고통에 시달렸지만 제 영혼은 노래하고 있었습니다”(키아라 루빅에게 보내는 서한, 사셀로, 1989.12.20.). 그의 평화와 기쁨의 비결은 주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자신의 병이 자신과 모든 이를 위한 주님 뜻의 신비로운 표현이라고 받아들인 데에 있었습니다. 키아라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바라시면 저도 바랍니다.”

 

이 두 증언 말고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아무리 어려운 시련에 맞닥뜨려도 결코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수많은 증언들이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이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하는 초자연적인 힘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며, 언제나 충실한 우리의 친구이심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고통에 동참할 때, 우리는 그분의 영광에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고통은 사랑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콜로 1,24 참조). 

 

 

7. 기쁨의 증인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끝으로 저는 여러분에게 기쁨의 사절이 되라고 권고하고 싶습니다. 다른 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기쁨은 나누어야 합니다. 가서 다른 젊은이들에게 바로 예수님이라는 이 소중한 보화를 찾은 기쁨을 전하십시오. 신앙의 기쁨을 우리만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쁨을 계속 누리려면 우리는 기쁨을 전해야 합니다. 요한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1요한 1,3-4). 

 

그리스도교는 때때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행복과 기쁨에 대한 인간적 욕망에 반하는 삶의 방식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항상 자신을 감싸 주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젊은 제자 여러분, 신앙이 참되고 충만하며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는 일은 특히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 삶의 방식이 진부하고 지루해 보일 수 있겠지만, 여러분은 신앙의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는 데에 앞장서야 합니다. 복음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분께 소중하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 진실을 세상에 보여주십시오!

 

새로운 복음화의 열정적인 증인이 되십시오! 고통 받는 이들과 기쁨을 찾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기쁨을 가져다주십시오. 여러분의 가정, 학교와 대학, 여러분의 일터에, 친구들에게, 여러분이 사는 곳 어디에서나 이 기쁨을 전하십시오. 여러분은 이 기쁨이 얼마나 잘 전달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수백 배의 기쁨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한 구원의 기쁨과 다른 이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보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님을 만나 뵙는 그 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21).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이 길을 걷는 여러분과 함께 해 주시기를 빕니다. 동정 마리아께서는 주님을 친히 자신 안에 맞아들이셨고 찬미와 기쁨의 노래인 마니피캇(Magnificat)으로 이를 선포하셨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 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노네”(루카 1,46-47). 마리아께서는 겸손하고 전적인 섬김으로 자기 봉헌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셨기에 마리아께서는 ‘기쁨의 연유’라 불리십니다. 마리아께서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을 그 기쁨으로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티칸에서

2012년 3월 15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원문 : Message of His Holiness Pope Benedict XVI for the Twenty-seventh World Youth Day 2012, "Rejoice in the Lord always" (Phil 4,4), 2012.3.15.,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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