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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묵주기도의 교황, 성 비오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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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07 ㅣ No.971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묵주기도의 교황, 성 비오 5세

 

 

- 교황 비오 5세.

 

 

묵주기도의 전파

 

중세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은 새로운 대륙에까지 묵주기도 신심을 전하였고, 묵주기도는 동아시아 지역과 이교도들 사이에도 복음 선포의 효과적인 방법으로 적용되었습니다. 묵주기도는 묵상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와 결합될 때 교리교육의 중요한 기회가 됩니다. 묵주기도를 통해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며,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의 삶에 대한 신비 묵상을 설교하였습니다.

 

식스토 4세 교황(1414-1484)과 인노첸시오 8세 교황(1432-1492), 알렉산드로 6세 교황(1431-1503)은 묵주기도의 형성에 기여하고 보급에 공헌한 도미니코 성인을 따르는 수도자들의 활동을 적극 권장하며 묵주기도에 대사(大赦)를 부여하였습니다. 이단의 확산으로 교회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묵주기도를 어떻게 이용하였는지를 잘 보여 주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부터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은 “묵주기도를 어디든 설교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묵주기도 대헌장

 

16세기 중반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영향 아래 교회는 묵주기도 신비 묵상에 대한 15구절이 검토되어 일정한 통일성을 가지게 됩니다. 다양한 묵주기도 형식에 대해 이해하면서 복자 알라노가 정리한 묵주기도 형식을 기도의 기본으로 삼습니다. 이에 묵주기도 형식에 대해 공식적으로 교서를 통해 처음 언급하신 교황님은 성 비오 5세(1504-1572)이십니다. 교회의 위대한 교황 중에 한 분이신 비오 5세 교황님은 매일 묵주기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드 몽포르 성인) 교황님은 1569년 9월17일 ‘묵주기도의 대헌장’이라 불리는 칙서(勅書, Bulla) “Consueverunt Romani Pontifices”를 반포하십니다. 교황 칙서에는 묵주기도를 바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형식을 언급하고 있는 첫 번째 교황 문헌입니다. 칙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묵주기도의 주요한 방법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묵주기도’ 또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모 시편’이라 불리는 이 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신심 깊은 기도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쉽게 따라 바칠 수 있는 기도이며, 다윗의 시편처럼 150번 반복되는 ‘천사의 인사말’(성모송)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공경을 표하게 됩니다. 또한 매 단의 시작에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이러한 기도는 정해진 주제들을 통해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삶을 설명하며 묵상하게 됩니다.”(교황 비오 5세, ‘Consueverunt Romani Pontifices’, 1항)

 

-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교황 칙서에서 묵주기도 형식은 도미니코 수도회 방식의 묵주기도 방법에 기초하고 있으며, 도미니코회 소속이었던 비오 5세 교황은 그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교서를 통해 ① 묵주기도는 모든 이들이 쉽게 따라 바칠 수 있는 기도라는 것 ② 15번의 ‘주님의 기도’와 150번의 ‘성모송’을 바치는 일정한 구성 요소를 규정하고 있으며 ③ 정해진 기도문을 반복하는 ‘소리 기도’와 예수님 일생에 대한 ‘묵상 기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묵주기도에 대한 성 비오 5세 교황님의 공적인 선포는 묵주기도의 기도문을 반복하면서도 신비 구절에 대한 묵상이 꼭 이루어지도록 선언합니다. 교황 회칙에 신비 구절에 대한 목록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은 그리스도의 일생 전체에 대한 ‘신비 구절’과 결속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열렬한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는 신자들은 이러한 신비 묵상을 충실히 따라 기도하면 믿지 않는 이들을 변화시키며, 이단의 두려움들을 물리치고 가톨릭 신앙의 빛을 새롭게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의 선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 너무 많은 이단들로부터 위협 당하는 교회를 직면하게 되며, 잦은 전쟁에 고통당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또한 인간의 도덕적 타락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희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권고하면서 주님 안에 머무는 그리스도의 충실한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힘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알게 됩니다.”(‘Consueverunt Romani Pontifices’, 2항)

 

 

레판토 해전 - 승리의 모후 기념일

 

- 1571년 10월 7일 레판토 해전 '승리의 모후'.

 

 

성 비오 5세 교황님은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써 이단의 어둠은 사라지고, 믿음의 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한 사건이 실제 일어난 것은 교황 칙서 발표 2년이 지난 1571년입니다. 당시 그리스 서부 지역인 레판토 해안에서 서양 역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슬람교의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를 점령하고 유럽 국가들을 위협하였습니다. 심각한 위험에 빠진 유럽 국가들은 다가오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도미니코 성인의 축일인 8월8일, 성 비오 5세 교황의 주도로 ‘신성 동맹’을 맺습니다. 또한 교황님은 전쟁에 참전할 군인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칠 것은 간곡히 부탁하며, 신자들과 함께 도미니코 수도회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Santa Maria Sopra Minerva) 성당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 전쟁이 일어나고 레판토 해전에 대한 결과가 로마에 이르기 전에, 성모님께서는 비오 5세 교황에게 전쟁에 승리하였음을 알려주십니다. 오스만 제국의 우세에도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다섯 시간 만에 큰 승리를 거둡니다. 이듬해인 1572년 3월15일, 교황님은 ‘Salvatoris Domini’라는 칙서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성모님께 의탁한 묵주기도를 통하여 전쟁에 승리하였다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기 위해 매년 10월7일을 ‘승리의 모후 기념일’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묵주기도는 그 형식을 갖추어 왔으며, 성 비오 5세 교황은 묵주기도 형식 자체를 축성하여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그 모든 힘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으며, 지금도 훌륭한 모든 복음 전파자들이 활용해 온 사목 도구로서 커다란 힘과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깊이 알게 되는 방법이나 그 비결을 가르쳐주는 묵주기도는 이러한 목적에 이바지합니다.

 

+ 성 비오 5세 교황의 묵주기도 형식에 대한 축성은 오늘날의 묵주기도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서 이단의 어둠은 사라지고, 믿음의 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기 위해, 전쟁에 승리한 10월 7일을 ‘승리의 모후 기념일’로 정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7월호, 박상운 토마스 신부(전주교구 여산성지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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