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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18: 4세기 (5)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신비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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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03 ㅣ No.917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8) 4세기 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신비 사상


갈망과 열망으로 사랑한다면 신비체험도 가능

 

 

카파도키아의 3대 교부 중 한 분이며 바실리우스의 친동생이었던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yssenus, 335/40~394 이후)는 수도 생활 신학뿐 아니라, 신비 생활 신학 정립에 탁월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오리게네스의 제자로서 오리게네스 예찬자였지만 4세기 삼위일체 교리 형성 과정에서 신 플라톤 사상의 영향으로 불거진 이단 논쟁을 극복하는 가운데 오리게네스와 닮은 듯하면서도 닮지 않은 신비 신학을 구축했습니다. 오히려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교리 논쟁의 영향으로 필론 및 중기 플라톤 사상과 닮은 부정신학의 관점에서 신비 신학을 전개했습니다.

 

-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수도 생활에 대한 권고

 

친형님이었던 바실리우스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결혼 생활을 하는 친동생 그레고리우스에게 동정 생활을 주제로 한 작품 저술을 부탁했습니다. 따라서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동정론(De Virginitate)」에서 하느님께서 정욕 없이 당신의 모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창조 신학의 관점으로 동정의 가치를 조명했습니다. 특히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신비가 동정 생활의 기초 원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마크리나의 생애(Vita Macrinae)」에서 큰누이 마크리나를 완덕에 다다른 완벽한 수도자의 모델로 소개하면서 수도자가 완덕에 다다르기 위한 통합적인 영적 여정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수도 생활을 후원하던 바실리우스 사망 이후에 그레고리우스는 수도자를 돌보고 후원하는 일을 도맡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히포티포시스(Hypotyposis)」에서 수도자의 영적 여정 및 수도 공동체의 올바른 생활을 언급했습니다. 특히 그레고리우스는 수도 공동체가 신비 생활로 나아갈 것을 격려했습니다.

 

 

상승의 여정으로서의 신비체험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그레고리우스가 오리게네스 신비 사상의 부족한 점을 극복하고 자신의 신비 사상을 펼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먼저 니케아 공의회가 재확인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본질이 같아서 합일할 수 있다고 주장한 오리게네스의 신비 사상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인간 영혼도 피조물이기에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서는 저절로 일치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창조주께서는 피조물 세상으로 건너오실 수 있으며, 강생의 신비가 신비체험의 열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 영혼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한편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사이에서 지속됐던 삼위일체 교리 논쟁은 그레고리우스가 자신의 신비 사상을 전개할 방향을 정립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아리우스주의(Arianism)는 성부만 유일하게 신의 본질을 지녔고, 성자는 신과 동일한 본질을 지니지 못한 피조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에우노미우스주의(Eunomianism)도 태어난 적이 없는 성부의 본질과 태어난 성자의 본질은 같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아리우스주의에 동조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에우노미우스 논박(Contra Eunomium)」에서 에우노미우스(Eunomius, 325?~394)가 성자와 성령의 존재를 거부하는 은유법을 사용할 뿐 아니라 성경과 공의회의 전통적인 용어를 포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삼위일체 논쟁이 거듭될수록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신비는 적극적인 설명보다는 우회하는 설명이 더 적절하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의 신비 사상에서 초월적 존재인 ‘하나’로 수렴하는 신 플라톤 사상의 영향으로 상승의 여정을 전개했으며, 삼위일체 신비를 통한 하느님 인식의 문제를 부정신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했습니다.

 

 

부정신학적 신비체험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모세의 생애(De vita Moysis)」와 「아가 강해(In Canticum canticorum homiliae)」에서 그리스도인의 완덕과 영혼의 영적 상승을 묘사하면서 자신의 신비 사상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그레고리우스는 「아가 강해」에서 솔로몬의 지혜서로 불리는 세 권의 성경인 「잠언」, 「코헬렛」 및 「아가」를 인간의 성장 시기와 대조하여 유년기, 청년기, 성숙기에 적용하여 인간 영혼이 걷는 상승의 세 단계로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세 번째 단계는 최종 목적지인 관상의 상태가 아니라 이제야 본격적으로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신비체험의 시작점이라는 것입니다. 즉 끊임없이 나아가도 인간 영혼은 하느님을 만날 수 없지만, 하느님의 활동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조금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그레고리우스는 「아가 강해」를 통해 하느님을 찾는 여정에서 인간 영혼이 빛, 구름, 및 어둠의 세 길을 걸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생애」에선 이 세 개의 길을 모세의 중요 생애와 비교,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 빛의 단계는 불타는 떨기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에 관한 일화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인간 영혼에게 비춰진 신비스러운 진리의 빛은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구름의 단계는 홍해를 건넌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일화를 통해 설명합니다. 구름에 휩싸인 산을 오른다는 것은 하느님을 관상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어둠의 단계는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으로 설명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시기에 인간 영혼은 가시적인 모든 것을 버려야만 어둠 속에 하느님을 뵐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레고리우스의 부정신학적 신비 사상은 처음부터 불가지성(不可知性, 지성으로는 알 수 없음)만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하느님께서 알려주시는 빛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어둠으로 옮겨갔습니다. 또한 영혼의 거울, 영적 감각, 내재하시는 말씀의 세 가지 측면을 통한 체험을 언급하면서 가지성(可知性)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습니다. 결국 인간의 지적 활동으로 인식할 수 없는 하느님이시라도 인간 영혼이 갈망과 열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하느님과 일치하는 신비체험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교리 논쟁에서 인간의 이성이 하느님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목격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인간이 안다는 것을 포기할 때 오히려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부정신학적인 방법론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 영적 여정을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레고리우스의 부정신학적 신비 사상은 훗날 여러 세기를 걸쳐 많은 영성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침으로써 ‘부정-신비 신학’의 계보를 만들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4월 2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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