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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제활동과 세금, 그리고 국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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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3 ㅣ No.1183

[복음살이] 경제활동과 세금, 그리고 국가의 역할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을 당시 사회적 화두는 ‘경제 살리기’였고 구체적으로 드러난 정부 정책은 ‘규제 철폐’와 ‘세금 감면’이었습니다.

즉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하여 대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게 하고, 법인세, 종합소득세, 종부세, 상속 및 증여세 등 여러 세금을 감면해 그만큼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런 정책들이 대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비난이 거셌고, 미국발 경제 위기로 인해 국제 경제의 불안과 소비 위축으로 감세를 하더라도 대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우선 출자총액제한제는 대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마구 확대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법인세 인하는 법인세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대기업에게, 상속 및 증여세 완화는 부자들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종합소득세률 인하도 현재 전체 근로자의 절반 이하가 면세점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그 혜택이 주로 고소득층에게 돌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데다 감세를 통한 내수 진작 등 성장우선정책은 그 효과가 미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으로 국가발전을 위한 재정 능력을 떨어뜨리고, 국가의 복지정책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우려와 비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2009년 3월 결국 출자총액제한제가 폐지되자 대기업이 제빵 등 외식사업과 MRO(소모성자재구매대행) 등 중소기업 영역까지 침범하여 대기업 계열사들의 일감을 사실상 독과점하는 폐해를 드러냈습니다. 국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세금 공제감면액 비율은 2008년 66.7% 대 33.3%에서 2011년 75% 대 25%로 바뀌었습니다.

감세혜택이 대부분 대기업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개인 감세율 역시 기업과 비슷한 추이를 보였는데 종합소득세 신고자 중 소득금액 1억 원 이상인 개인의 종합소득세 감세 비율은 51%에서 67%로 급등하였습니다. 또한 2008년부터 2011년 사이에 4년간 총 8조6000억 원의 감세가 있었는데 소득 상위 19%에게 절반이상의 혜택이 몰린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감세로 공공정책에 들어갈 자산 줄여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결국 대기업과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대폭 깎아주었지만 기대했던 투자 효과는 별로 거두지 못했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세수가 줄어듦으로써 세금을 통해 국가가 담당해야 할 사회복지 등 공공정책에 들어가야 할 자산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국내총생산 대비 조세의 비율)은 2004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다 2007년 21%이 되었지만 2008년(20.7%)부터 감소하여 2010년에 19.3%로 떨어졌습니다. 이는 스웨덴(34.3%), 영국(28.4%)보다는 낮고 미국(18.3%), 일본(15.9%)보다는 높은 편이며, OECD 34개 회원국 평균은 24.6%입니다.

조세부담률이 낮다는 것은 세율이 낮거나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내총생산에서 정부재정이 차지하는 비중도 낮아서, 국가가 공적영역에서 해야 할 일을 많은 부분 사적영역과 시장에 맡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2012년 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국가재정에서 가장 좁은 의미의 복지 관련 예산을 의미하는 ‘사회보호’ 지출의 비중은 2009년 9.6%로 서른 개 회원국 가운데 8.2%인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고, 선진국들(프랑스 32.1%, 덴마크 30.2%)의 삼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핵가족을 지원하는 가족급여지출 비중이 GDP의 0.8%에 불과,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에 머물렀고, 전체 복지지출 내 노령인구에 대한 지출 비중 역시 OECD 평균(40%)을 크게 밑도는 25% 수준입니다.


국가는 공동선 위해 적절한 제도와 법 만들어야

사회복지를 통한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는 일은 가난한 이들 뿐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결코 낭떠러지에 추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지지가 있을 때 사회 구성원들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은 사적 영역이나 시장에만 맡겨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에 정부는 세금을 제대로 걷고 이를 활용하여 통합적인 복지 정책을 펼침으로써 가난한 이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공동선의 원리에 따라 가난한 이들을 포함한 모든 이가 제외됨 없이 자기완성에 이르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며, 국가는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연대성의 원리에 따라 구성원들의 조화로운 발전을 추구하는 다양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특히 “세수(稅收)와 공공 지출...이 추구하는 목표는 공공 재정이 그 자체로 발전과 연대의 도구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공정하고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공공 재정은...고용 성장을 촉진하고, 기업 활동과 비영리 활동을 지원하며, 무엇보다도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 보장 보호 제도를 보장하는 국가의 신뢰성을 증대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경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55항). 


따라서 국가는 공동선을 위해 적절한 제도와 법을 만들고, 시장 활동에는 부당한 간섭으로 연루되지 않으면서도 공정하고 균형 있게 경제 정책들과 사회 정책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교회는 국가가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하되, “시장이 목적한 효율성을 이룰 수 없는 경우와 재분배의 원칙의 실천과 관련된 경우에, 정말 필요한 기간 동안만 직접 개입”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54항). 

한편 요한바오로 2세는 회칙 <사회적 관심>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선택’ 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이라는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전통을 언급하면서 정치 지도자들은 정치와 경제의 분야에서 어떤 결정을 세울 때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리는 결단은 당연히 저 무수하게 많은 굶주린 사람들, 곤궁한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이 같은 현실을 무시한다는 것은 저 ‘부자’가 거지 라자로가 자기 집 문간에 누워 있음을 모르는 체하는 바와 다를 것 없다(루카 16,19-31참조)”(42항).


정부는 사회보호 지출 비중 확장해야

한편 교회는 경제제도 공공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가 뿐 아니라 민간 활동 역시 중요합니다. 국가는 공공의 활동을 하는 중간 단체들이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지원하고 협력함으로써 공동선을 달성하고 경제 민주주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이들 단체들의 본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그 다양한 특성들과 기능을 적절히 활용해야 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56-357항 참조).

최근 외국의 조세회피지역에 페이퍼컴퍼니(유령 기업)을 세워 편법으로 세금을 회피하거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기업인들과 유력 인사들이 적발된 사건이 보도되어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세금은 회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구성원들이 공공 지출에 동참하는 연대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13장에서 “합법적인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따른 것”이므로 “시민의 납세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80항).


정부 역시 적극적인 조세 정책으로 음성적인 자금들을 찾아내어 과세하고, 세금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사용함으로써 국민들이 기꺼이 세금을 내겠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는 부자들에 대한 과세와 정부의 조세부담률을 늘리고 사회보호 지출 비중을 확장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전 정부의 과오에 대한 반성으로 ‘국민 통합’과 ‘경제민주화’ 그리고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겠다는 구호를 내세우며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진정으로 부자와 가난한 이들이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과감한 정책을 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7월호,
박정우 후고(신부, 서울 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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