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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성경 속 생명 이야기8: 하느님 의식과 인간 의식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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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3-30 ㅣ No.1135

[성경 속 생명 이야기] (8) 하느님 의식과 인간 의식의 실종


"창조주가 없으면 피조물도 없다"

 

 

사도 바오로는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한다"(로마 7,22)고 했고, 그리스도교 영성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존재의 기반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분리나 거리를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없이 사는 삶을 추구하는 사회 문화 풍조 안에서 하느님 의식이 실종될 때 인간 의식 곧 인간 존엄성과 생명 의식도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생명의 복음」 21항 참조). 


카인이 아우를 죽인 사건으로 되돌아가 봅시다. 하느님의 저주를 들은 카인은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합니다"(창세 4,14) 하고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카인의 이런 의식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고 주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신을 만들어냅니다. 그가 만들어낸 자기는 "하느님 앞에 몸을 숨겨야 한다"고 했으니 진짜가 아니라 가짜 곧 거짓 자기인 것입니다.

카인은 몸을 숨김으로써 하느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몸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환상입니다. 어린 아이가 자기 부모에게 안 보이게 하려고 눈을 감는다고 합시다. 스스로는 그렇게 하고 부모에게서 떨어져 있다고 믿겠지만 착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는 아이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면서 사랑을 계속할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하느님 의식이 사라지면 인간 의식도 위협받고 훼손된다는 사실을 이렇게 천명합니다. "창조주가 없으면 피조물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느님을 잊어버리면 피조물 자체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사목헌장」 36항). 이렇게 되면 인간은 생명을 더 이상 하느님의 빛나는 선물로, 자신의 책임에 맡겨진 따라서 사랑으로 보살피고 존중해야 할 신성한 어떤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생명 자체가 단순히 사물이 되고 맙니다(「생명의 복음」 22항 참조).

하느님 의식의 실종과 인간 생명 의식의 실종에는 사회의 책임도 있습니다. 사회가 생명에 반하는 행위들을 용인하고 조장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생명을 거스르는 실제적 '죄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죽음의 문화'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현대 세계의 대부분은 사도 바오로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묘사하고 있듯,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1,18)로 이뤄져 있으며, 하느님을 부인하고 하느님 없이 스스로 지상의 도시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1,21). 또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할 뿐만 아니라 그 같은 짓을 저지르는 자들을 두둔하기까지 합니다"(1,32). 양심이라는 영혼의 밝은 등불이(마태 6,22-23 참조) "좋은 것을 나쁘다 하고, 나쁜 것을 좋다"(이사 5,20)고 할 때 가장 위험한 부패의 길로 접어든 것이며, 가장 어두운 도덕적 맹목의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생명의 복음」 24항 참조).

어떻게 거짓 나를 깨우치고 참 나로서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을까요? 카인은 하느님이 주신 형벌에 대해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창세 4,13) 하고 말합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하느님의 공정한 심판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죄를 인정하고 그 죄가 지닌 중대성을 완전히 깨닫는 것은 진정 주님 앞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생명의 복음」 21항 참조).

이는 다윗(시편 51,5-6 참조)과 돌아온 탕자(루카 15,11-32 참조)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카인과 다윗과 탕자는 하느님을,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결코 카인과 다윗과 작은아들을 떠나지 않으셨으며, 그들이 당신의 자녀가 아니라고 여기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로부터 멀리 떠난 자녀들을 단죄하거나 당신과 분리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떠난 이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비현실적인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참 자기로 돌아오는 것밖에는 생명을 회복할 다른 길이 없습니다.

[평화신문, 2014년 3월 30일,
이명기 수녀(가톨릭대 ELP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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