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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교리: 어린이들에게 놀 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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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8-22 ㅣ No.859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어린이들에게 놀 권리를!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놀던 어린 시절

 

어린 시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어린 나에게 너무나도 크고 먼 세상이었다. 내가 살던 집은 학교와 먼 거리에 있었는데, 어린이의 걸음으로 30분가량 걸렸다. 학교까지 가려면 큰길을 두 번이나 건너야 했고 작은 언덕길과 골목길들을 지나야 했다.

 

아침에 졸린 눈을 부비고 일어나 등교하는 시간은 참으로 힘들었지만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다는 생각에 학교는 꼭 가고 싶은 곳 가운데 한 곳이었다.

 

수업시간에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신나는 일은 방과 후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들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주변은 택지개발로 빈 공터가 많았는데, 수업이 모두 끝난 뒤 우리들은 이곳저곳에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할 수 있었다. 축구공 하나만 있으면 하루 종일 뛰어놀 수 있었고, 가끔 특별한 날에는 야구 경기를 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함께 놀 수 있는 반 친구들이 많았고 매일같이 학교 뒷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았다.

 

집에 일찍 돌아오는 날에도 동네 친구들이 함께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했다. 술래잡기, 딱지치기, 비석치기, 땅따먹기, 오징어, 제기차기, 말뚝박기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놀이들이 있었다. 조그마한 공터만 있으면 돌멩이 하나 주워 금을 긋고 함께 뛰어놀았다. 노는 데에 돈이 필요하거나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다 보면 해가 지는 줄 몰랐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이면 집집마다 어머니들이 나와 저녁밥을 먹으라며 아이들을 불렀다. 조금 더 놀고 싶었지만 혼이 나기 싫어서 집에 들어갔고,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놀았기에 저녁이면 금방 곯아떨어지곤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9시 뉴스 전에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린 영상이 나왔는데, 나는 그 이전에 보통 잠이 든 것 같다. 학교에서나 집에 돌아와서나 산이며, 들이며, 공터며, 골목길이 모두 다 놀이터였기에 매일처럼 뛰어놀다 보니 몹시 피곤했던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놀 아이가 없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삼십여 년이 지나 과거에 다녔던 초등학교에 가본 적이 있다. 승용차로 막내 조카의 학교 등교를 도와준 일이 있는데 어린 시절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학교가 무척 가까웠다. 집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 넓던 운동장은 그야말로 콧구멍만 했다. 해마다 전교생이 모여 운동회도 하고 체육시간에 뛰어놀던 운동장은 어무나도 좁아보였다. 심지어 운동장 한편은 교직원 주차장으로 변해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싶어도 마음껏 뛰어놀 수 없는 너무 좁아진 운동장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보다 삶의 편리를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어른들의 생각 때문에 아이들이 더 이상 마음껏 뛰어놀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생활이 윤택해지고 편안해졌지만 점점 아이들의 놀이공간마저 빼앗는 어른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놀 권리는 점점 박탈되고 있다.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게 되면서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없게 되자 아이들은 방과 후에도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미래에 성공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 환경을 마련해 주려는 명목으로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낸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학원비를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일하며, 그러한 목적 때문에 부모들의 부재를 느끼는 아이들은 행복해 하지 않는다.

 

초등학생인 막내 조카는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학교에서 돌아오면 함께 놀 친구들이 없단다. 친구들이 수업이 끝나면 모두 학원에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친구랑 놀려고 학원에 간단다. 학교에서나 집에 돌아와서나 더 이상 함께 놀 친구들이 없는 각박한 세상, 그래서 조카는 주로 집에서 혼자 놀거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 조카의 가장 친한 친구는 바로 할머니이다.

 

가끔 일이 있어서 집에 가면 조카는 신이 나서 삼촌 신부를 반긴다. 함께 놀 사람이 생겼다는 데서 오는 기쁨이랄까? 나에게도 장난감 총을 쥐어주면서 총싸움을 하자고 하고,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보여주면서 자기 놀이에 끌어들이려고 한다. 조카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 어른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인 성장으로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이러한 외적인 발전과 더불어 진정한 인간 발전이 이루어졌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곳은?

 

지난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초등학생 5, 6학년 1,4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린이 생활실태와 생활의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방과 후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부분은 학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요인도 학원이다. 통계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활동은 학원, 텔레비전 시청, 친구와 놀거나 운동하기, 컴퓨터 사용 순이었다.

 

학원은 이처럼 방과 후 어린이들의 생활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라는 문항에서도 학원은 무려 44.8%로 불명예스럽게 1위를 차지했다. 학원에 이어 어린이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은 학업 · 성적 41.4%, 따돌림 19.8% 순으로 나타났다. 방과 후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원이지만 그 학원에서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이 가장 크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부모들은 어린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것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마련해 주려고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미래의 성공보다는 지금 이 순간 더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어린아이 시절부터 학원과 공부, 성적으로 내몰림을 당하고 있고 성공을 위해 길들여지는 수동적인 아이들로 성장해 간다. 무한한 경재 사회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배워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경쟁상대로 생각하고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대상자로 배워 나가는 현실이 정말 가슴 아프다.

 

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하여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더불어 사는 것보다 나 홀로의 삶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철저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물질 만능주의와 결합되어 공동체가 부여해 주는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들이 점차 사회 밖으로 밀려나는 판국이 된 것이다.

 

 

어린이들이 행복할 권리, ‘아동권리협약’

 

가톨릭교회는 어린이들의 권리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교회는 사회교리에서 어린이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실질적인 구속력을 지니고 있는 국제적인 법률문서가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간추린 사회교리” 245항). 이는 1989년 11월 20일 국제연합에서 채택된 ‘아동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CRC)’인데, 1990년 10월 2일에 그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2010년 5월 5일 현재 미국과 소말리아를 제외한 전 세계 193개국이 비준한 국제 협약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에 가입했으며, 교황청 역시 비준한 협약이다.

 

‘아동권리협약’은 전문과 함께 54개의 조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동들이 지니고 있는 권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협약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존엄성과 가치를 가지고 태어나며, 성별, 국적, 피부색, 언어, 신분, 종교 등에 상관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데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천명하면서, 어린이 역시 양육과 훈육의 대상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기본적인 권리를 가진 주체적 존재임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동의 권리는 어린이가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나 자유와 함께 시기적 특수성에 입각해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말한다.

 

어린이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발달단계에 있기 때문에 어른과는 달리 적절한 법적 보호를 포함한 특별한 보호와 배려가 필요하고, 기본적인 인권에 더하여 국가와 사회, 그리고 부모와 어른들이 지켜주어야 하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안전하고, 행복하며 충족된 환경에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라고 제정된 ‘아동권리협약’은 다른 국제법들이 명시하고 있는 어린들의 권리뿐 아니라, 어린이의 특수성과 필요에 맞춘 기준들을 담고 있다.

 

이 협약은 지구촌에 살아가는 모든 어린이들의 권리를 지켜주고자 하는 국제사회의 약속이지만 아직도 수많은 나라에서는 보건과 음식의 부족, 최소한의 학교 교육을 전혀 또는 거의 받을 수 없는 처지, 부적합한 거주지 등 어린이들이 전인적으로 발전하는 데 최소한의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만족스러워 하지 않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해 어린이 인신매매, 어린이 노동,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 어린이 조혼, 무력분쟁에 동원되는 소년병, 성 착취나 소아 성애 등 갖가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들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어린이들의 권리를 수호하고자 국가적, 국제적 차원의 투쟁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범죄행위들에 대한 적절한 예방책과 처벌도구, 그리고 공권력을 통한 단호한 조치들을 통해 이러한 폭력이 효과적으로 퇴치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45항 참조).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학교 운동장, 골목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우선 어른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아이들을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그들은 그저 이익을 창출하는 도구나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곧 여름 방학이다. 아이들이 그냥 아이들일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 황창희 알베르토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1997년에 사제품을 받고, 로마 알폰소 신학원에서 석사,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에서 사회교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 인천가톨릭대학교 교학처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7월호, 황창희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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