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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남미 원주민들의 축제 속에 녹아든 가톨릭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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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25

[세계 교회는 지금] 남미 원주민들의 축제 속에 녹아든 가톨릭 신앙

 

 

남미의 나라들에는 유난히 축제가 많다. 그 가운데 여기서 말하고 싶은 원주민은 아이마라(퀘추아족도 포함) 원주민 공동체이다. 이들은 페루의 고원지대이면서 잉카 제국의 시조가 나왔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 주변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대대로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과 생활 방식을 보존해 오고 있다.

 

이곳에서 행해지는 크고 작은 많은 축제들은 가톨릭의 신앙과 전통이 원주민들의 농경 사회적인 전통문화에 통합되면서 지금의 축제로 자리잡았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세상과 고립된 지역에서 자급자족하면서 하느님께 의존하고, 역사와 전통과 생활의 터전인 땅을 소중히 여기며 공동체를 보존해 나아가는 모습을 모든 축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발 4000미터 정도의 고원지역에는 공기 중 산소의 양이 약 11%에 지나지 않는다. 평지의 산소량이 22% 정도인데 비하면 절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지역 사람이 이곳에 정착해 사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관광을 오는 경우에도 지독한 두통과 설사, 호흡곤란 등의 고산병 증세로 고생하거나 심하면 이 땅을 밟자마자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물론 이 지역 원주민들은 외부 사람들이 겪는 고산병 같은 것은 겪지 않는다. 그러나 땅은 매우 척박하며 일교차가 심하고 홍수나 가뭄 그리고 우박과 같은 자연 재해가 심한 곳이다.

 

이곳 원주민들은 주로 감자 농사를 짓고 약간의 밀과 ‘퀴누아’라는 곡식을 재배하며 집집마다 몇 마리씩이라도 양과 소 그리고 ‘알파카’라는 동물을 키운다. 그리고 이들 동물에서 얻은 털로 실을 만들고 이 실로 스웨터나 담요 따위를 직접 만들어 쓴다. 농사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화학비료나 농약 같은 것은 쓰지 않는다.

 

이들은 땅을 소중히 여기며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믿고 있다. 원주민들의 땅은 사고 팔 수가 없으며 더구나 투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한 농지에 같은 곡식을 연달아 심지 않으며 몇 년에 한두 해 정도는 아무것도 심지 않고 땅을 쉬게 한다. 이런 방식으로 토양의 질을 보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수백 년 동안 이와 같은 방법으로 땅을 보존해 올 수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땅에서 농사를 계속해서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농약과 화학비료의 과용으로 토질이 나빠지고 주위의 수질 또한 오염되어 위험한 지경에 놓여있고, 대량 생산을 하려고 개량된 종자나 수입 종자를 이용하는 세계 추세에 비하면, 원주민들이 이른바 유기농법을 고수하고 토종 종자를 대대로 지켜온 것은 길고 멀리 볼 때 땅을 위해서나 또 주위 환경과 인간을 위해서나 올바른 선택이라 하겠다.

 

이들은 다른 세상과는 고립되어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 아직 많으며 수돗물도 없고, 설사 이런 공공 서비스가 제공된 지역이 있다 할지라도 감자 한 가마니 팔아도 한 달 전기료가 모자랄 정도로 요금이 비싸다.

 

이들은 태어나 걸어다닐 수 있을 때부터 죽어서 관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휴일도 없이 일을 한다. 코흘리개 때부터 양떼를 몰고 멀리까지 나가서 하루 종일 친구도 없이 혼자 외로이 양떼를 지키고, 성인이 되어 가정을 새로 꾸미면 얼마 안되는 토지를 물려받아 주로 감자농사로 가족을 부양하고 동물들을 키워 여러 가지 대소사 비용을 마련한다.

 

결혼식을 하려면 몇 날 며칠에 걸쳐 하는 혼례 비용이 적지 않게 들기 때문에 우선 몇 년, 적어도 5년에서 10년 또는 그 이상 혼례를 올리지 않고 산다. 그뒤 여건이 마련되면 결혼식(교회와 사회식)을 올리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있다. 자식들이 결혼하면 땅을 떼어주고 분가를 시키기 때문에 노부부나 혼자 살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 이들은 몸이 아파 누워있을 정도가 아니면 무엇이든 해서 생계를 이어야 한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노인이 되어서까지 쉴새 없이 일을 하는데, 축제가 있을 때만은 만사를 제쳐놓고 축제를 즐긴다.

 

 

축제에 담긴 종교 의식

 

이들의 축제에는 종교 의식과 문화 의식, 공동체 의식, 그리고 개인의 휴식이라는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마을마다 수호성인이 있고 이 성인의 축일을 기념하여 축제가 행해지며 그 기간은 3, 4일에서 일주일 정도 계속된다. 지금의 축제들은 수호성인의 축일을 기념하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원래는 농경사회에서 행해지던 절기 행사들이 가톨릭을 받아들이면서 성인 성녀의 축일로 바뀐 것이다.

 

티티카카 호수 주변 여러 알티플라노(고원지대)의 중심도시라고 할 수 있는 푸노의 축제날에는 각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 춤과 음악 경연대회, 퍼레이드를 하면서 10일 정도 축제가 이어진다. 다른 축제와 마찬가지로 미사로 시작하여, 미사를 마친 뒤에 수호성인의 모습을 실물 크기의 형상으로 꾸며 그것을 둘러메고 광장을 거쳐 주요 거리를 행진한다. 이때는 미사를 집전한 성직자들이 가마 위에 안치된 성인 형상을 지고 가는 사람들을 뒤따르며 때때로 멈추어 서서 간단한 축복의 기도와 향을 올린다.

 

그런 뒤에 각종 문화 행사, 특히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춤이나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경연대회가 벌어진다. 이 축제는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거리에서 행해진다. 참가 단체들은 멀리서부터 춤을 추거나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광장까지 와서 성당 앞에 멈춰 간단한 기도나 경의를 표한 뒤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전통 춤이나 음악은 원주민들의 실생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내용과 차림과 율동으로 어우러져 있다. 주로 농사와 관련된 내용과 티티카카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지고 간혹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도 있다. 그 옛날 아프리카에서 잡혀왔던 노예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기도 하다.

 

축제에 드는 비용은 한 가정씩 돌아가면서 비용을 대게 되는데 상당한 금액이므로 대부분 소를 팔아 축제 비용을 마련한다. 이 지역에 땅이나 집이 있으면서 다른 지역으로 나가 사는 사람일지라도 이렇게 돌아가면서 이루어지는 축제 지원자의 의무는 지켜야 한다. 이런 축제로 인하여 공동체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를 행하며 전통문화의 계승과 종교의식을 통한 신앙을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를 뺀다면 그 축제는 이 원주민들의 축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축제를 통해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하며 땅의 선물에 대한 감사와 지속적인 생산을 염원하고 인간 공동체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축제는 일상을 벗어나 휴식과 춤과 노래를 즐기며 재충전을 하는 때이기도 하다.

 

* 장영옥 필로메나 - 페루에서 선교사로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경향잡지, 2002년 11월호, 장영옥 필로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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