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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서너 곱의 어려움에 직면한 체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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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19

[세계 교회는 지금] 서너 곱의 어려움에 직면한 체코 교회

 

 

부트바이저와 필스의 고향

 

체코 공화국은 동유럽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다. 이 지리적 특징, 곧 ‘동유럽의 가장 서쪽’이란 것이 이 나라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부트바이저(미국에 건너가서 유명해진 영어 이름은 버드와이저이다.)와 필스(흔히 맥주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독일 맥주는 원래 탁하고 맛이 진하다. 필스는 세계인이 흔히 마시는 맑은 맥주를 일컫는데, 바로 체코의 필제너 지방이 원산지다.)의 고향 체코 민족은 중세에 보헤미안 왕국을 일궈 찬란한 역사를 자랑했다.

 

하지만 이 보헤미안 왕국은 얼마 되지 않아 신성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 이후, 체코 민족은 고유한 문화와 역사와 언어를 지녔음에도 오랫동안 게르만 민족 치하에서 살아왔다. 수백 년 동안 나라의 공식언어는 독일어였고, 모든 행정이 독일어로 이루어졌다. 나랏일의 크고 작은 결정은 프라하에서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이루어졌다. 체코를 대표하는 프라하의 칼스 대학은, 1945년까지 독일어로 강의하는 학부와 체코어로 강의하는 학부가 나뉘어있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라는 나라로 꿈에 이루던 독립을 쟁취했지만, 딱 20년 만에 히틀러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만다. 2차 대전 뒤에 이룬 독립도 잠시, 1950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서 ‘체코슬로바키아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어 러시아의 영향에 들어갔다. 1990년에 사회주의 정권은 붕괴했지만, 1993년에는 슬로바키아가 독립해서 이제는 ‘체코 공화국’으로 남았다. 수십 년에 걸친 정치적 격변은 그에 따른 민중의 고단한 삶과 한숨을 낳았다.

 

 

동유럽의 파리

 

동유럽에 위치한 체코의 종교와 문화는 흔히 서유럽적 특성을 띤다고 한다. 몇 가지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동유럽 나라들은 대개 국민의 다수가 정교회를 믿지만, 전통적으로 체코는 가톨릭 신자가 다수였다. ‘동유럽의 파리’라는 별명을 지닌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관광객을 끄는 문화유적도 서유럽처럼 대부분 가톨릭 교회와 관련된 유산들이다. 체코는 종교개혁 시기에 루터와 성공회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 후스의 개혁으로, 마치 영국의 성공회처럼 민족적인 개신교회도 갖고 있다. 사회주의 정권에 대항한 민중봉기, 이른바 ‘프라하의 봄’도 서유럽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열망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체코인들은 스스로를 동유럽인이 아니라 중부유럽인(또는 중앙유럽인)이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체코는 이웃 폴란드와 함께 동으로는 러시아, 서로는 게르만에 저항한 역사를 갖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슬라브 민족이면서 역사가 오래되고 강한 가톨릭 교회가 있고, 언어도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마치 이탈리아와 스페인 사람들처럼, 이 두 나라 사람들은 통역이 없이도 서로 대강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수십 년의 사회주의 경험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웃 폴란드 교회와 체코 교회는 현재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폴란드 민족은 신심이 세계 최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깊고, 역사적으로도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난국을 돌파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과거 사회주의 정권 치하에서 미사도 비교적 자유로웠고, 성소자도 양성할 수 있었다. 주교는 신자들을 믿고 사회주의 정권과 대립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는 교회가 사회의 정신적 구심체 노릇을 했고, 현재 성소자도 풍부하고, 교회에 대한 관심도 각별하다.

 

 

체코식 신학은 희망

 

하지만 체코 민족은 이웃 폴란드만큼 열렬한 신심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게다가 그리스도교는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등으로 분열되어 있었기에, 사회주의 정권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당시 사회주의 정권의 교회부 장관이 신부들의 급료를 지급하는 정책은 교회를 길들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 결과 가톨릭 교회는 40년 동안 지속된 사회주의 정권 치하에서 실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 가톨릭 교회를 접할 기회는 조직적으로 차단당했다.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교회는 한때 인기를 모았지만, 이내 시들해졌다. 90년대 초반에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전체 국민의 약 70%, 가톨릭 신자는 약 30% 정도였지만, 현재 미사에 나오는 사람들은 9% 미만일 것으로 추정한다. 성소자도 격감했다.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였던 슬로바키아족이 분리독립한 이후 교회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도 동부 메르헨 주의 교회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수도 프라하가 있는 보헤미안 주는 모든 수치가 마치 세속화가 한참 진행된 서유럽의 한 나라를 보는 듯하다.

 

체코의 젊은이들도 서구의 가치와 문화를 좇기에 바쁘다. 게다가 현재 체코는 유럽연합의 정식 후보국으로서, 2005년까지 정식 회원국이 되려고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서유럽적 기준으로 개조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몇 년 뒤면 사회 모든 부문이 전면적으로 개방되어야 하고, 서유럽의 물질주의와 세속화의 사조는 이제 고삐 풀린 성난 말처럼 제멋대로 내달릴 것만 같다.

 

교회 일각에서는 이런 세상의 바람을 막아내고 교회를 더 발전시키려면 체코식의 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가톨릭 교회의 소장 연구자들은 발전된 서구의 신학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체코식으로 이해하고 소화해야 한다는 이런 흐름에서 꽤 큰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힘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 게 옳겠다.

 

 

아직 탈출구는 멀다

 

세속화와 물질주의에 대해 오랜 세월 견뎌낸 서유럽의 교회는 이제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조직과 자금면에서도 서유럽의 교회는 안정적이고 사회적 영향력도 크다. 이웃 폴란드 교회는, 살림살이는 조금 부족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강한 믿음과 사회적 관심과 특히 폭발적인 성소를 밑천으로 삼아 재도약할 수 있는 소망을 기도 드리고 있다.

 

하지만 체코 교회는 현재 이도 저도 아니다. 개신교와 가톨릭과 정교회의 갈등까지 겹쳐서 더욱 어렵다. 세상의 거친 풍랑에 맞설 수 있는 충분한 힘과 경험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신자들의 통일된 뒷받침도 부족하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어려움을 다 모아놓은 듯, 서너 곱의 어려움 속에 서있는 교회다. 프라하 교구는 1996년에 교구설정 1000년을 기념하는 희년을 맞았지만, 아직 탈출구는 누구에게도 멀게만 보인다.

 

* 주원준 토마스 데 아퀴노 -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2년 4월호, 주원준 토마스 데 아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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